가만히 멈추어 있으면 어느 곳에도 닿을 수 없다.

by 지예

글에 진심을 담으면 통한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동안 노트북 폴터에 지루하게 잠들어 있던 글들을 펼쳤다. 필사 노트도 함께 들췄다. 책 문장과 구분하여 파란색으로 적어 둔 내 생각을 읽었다. 폴더 속 글에 살을 붙이고 다듬는 1차 작업을 마무리했다. 장황하게 늘여트린 글이 되지 않도록 다듬고 조금 더 살을 찌울 작업이 남았다.


레이 브레드리는 『화씨 451』파버를 통해 책의 질적 수준에 대해 말한다.

좋은 작가들은 진실한 삶의 이야기를 담지만, 그저 그런 작가들은 수박 겉핥기식으로 쓱 어루만지고 지나갈 뿐이오. 아주 형편없는 작가들은 삶의 이야기를 제멋대로 농락한 뒤에 파리똥이나 쌓이는 신세로 내팽개쳐 버리지요. (p137)


편집자, 작가, 마케터, 독자. 파버가 말하듯 평가하고 바라보는 시점에는 누가 서있는 걸까, 이렇게 평가되는 책임은 누가 가지는가 생각했다. 작가의 입장에서는 파버의 말이 아니 대문호 레이 브레드리의 말이 정말 날카롭다. 처음엔 엄청난 충격이었다가 도전 의욕이 일었다. '좋은 작가'가 되고 싶다는 욕심. 브레드리가 말한 좋은 작가의 끄트머리에라도 매달려 보는 꿈을 꾼다.


출간 작가가 되고 싶다. 나무에게 미안할 짓이 되지 않도록 진심을 담은 지류 출간 작가 말이다. 파리똥이나 쌓이는 신세로 내팽개쳐지지 않고 책장에 곱게 꽂혀 당당히 책 등을 뽐내면서, 독자의 간택을 받아 숨을 쉬는 유형물을 낳고 싶다.


이 나이에 임신이 될 확률과 출판 계약서에 도장 찍을 기회를 얻을 확률 중 후자가 가능성이 높다. 이 나이에 다리 사이에 끼인 커다란 수박을 싸고 싶은 욕구를 강하게 느끼며 아이를 낳는 순간까지를 인내하는 것보다, 정신적으로 에너지를 소모하며 인내하고 글을 배출하는 열 달이 더 수월하다. 이 나이에 애 하나 더 나아 '셋째 늙다리 엄마'가 되는 것보다 '작가 아무개'가 되는 게 자아실현에는 더없이 높은 가치가 있다.


이상하게도 아무것도 모른 채 첫애를 낳은 정신으로 뭐든 하겠다는 낯선 의욕이 마구 타올랐다. 될지 안 될지 겁부터 먹지 않고 실패에 닿더라도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멋진 일이기에 내 가능성을 시험해 보는 기회, 약 열흘 더 집중해서 도전하려 준비 중이다.


http://www.kpipa.or.kr/info/newsView.do?board_id=1&article_id=11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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