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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를 꺾으면 안 되나요?

자연과 조경, 그 사이에서

by 지예

아이 둘이서 똥강아지처럼 뛰어다니기 바쁘다. 여기저기 웃자라 몽실몽실한 구름을 달고 있는 민들레를 찾기 위해서다. "어! 여깄다!"라면서 서로를 불러들이고 입과 손으로, 심지어 발을 이용해서 꽃씨를 날리느라 여념이 없다. 철쭉 사이로 고개를 내민 민들레는 해를 보려 무척 애를 썼을 테다. 어찌나 꽃대가 통통한지, 괜스레 위협적으로 보일 때가 있다. 그늘진 곳에 자리를 잡은 씨앗도 볕을 가까이 끌어오기 위해 고개를 한껏 뻗어 꽃을 피웠다.


민들레만 쫓지 않는다. 녹지공간 곳곳에 피어난 꽃의 이름이 궁금해서 계속된 관찰만 이어갔었다. 그러다 제대로 이름을 불러보겠다며 손바닥만 한 식물도감을 마련했다. 엉겅퀴와 지칭개를 구별할 수 있게 되었고 냉이꽃과 꽃다지도, 철쭉과 영산홍도 구별한다. 개미 뒤를 쫓다가 낮은 곳에 피어 있던 자그마한 꽃을 발견하고는 한참을 쪼그려 앉아서 이름을 찾았다. 꽃마리. 너무나 작아서 가까이 얼굴을 가져가서야 희고 연보랏빛의 꽃 색을 알 수 있다. 하나하나 소중하지 않은 경험이 없다. 아이도 나도 이름을 알고 부를 수 있다는 사실에 들떠 더위를 이겨내며 즐겁게 하원길을 맞이했다.


큰 아이 때의 민들레 사건이 기억났다. 흩어져 날아가는 민들레 씨는 꽃대를 꺾어 손에 쥐고 입으로 불어야 장관이다. 도심 사방에 널린 민들레가 눈에 띄면 함께 꽃대를 꺾어 씨를 날려 보냈다. 멀리 가서 예쁜 꽃으로 만나자는 인사와 함께. 하루는 지나가시던 나이 지긋한 어른이 애 교육을 잘못 시킨다며 한 말씀하셨다. "거, 꽃을 함부로 꺾으면 된다고 가르치면 돼요? 그냥 눈으로 보게 해야 옳은 가르침이지." 당시에는 그 말씀이 옳다 해서 알겠다 대답하고는 아이에게 말해주었다.


나는 들판에 피어난 꽃은 좋아하지만 꽃집에 놓인 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꽃집 출입은 드물다. 물을 갈아주고 돌본다 해도 시들어 떨어지는 꽃잎에 처량함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꽃 도감을 아이들과 보다가 큰 아이 때의 일을 이야기했다. 그러다 문득, '민들레는 꺾으면 안 되고, 판매용 꽃은 줄기를 잘라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아이도 "왜 꽃을 꺾어다 파는 건 되고 공원에 널린 풀꽃은 안 돼?"라고 한다. 사실, 우리가 꺾은 건 번식 초기 곤충을 불러들이던 꽃의 상태가 아니었다. 적당한 바람을 타고 씨를 날릴 준비를 하고 있던 민들레였다. 지금 생각하니 좀 억울하다.


여기저기 피어난 풀꽃들이 예초작업으로 제거되는 날이었다. 아이들이 창가에 붙어서 울상이다. "꽃마리 있는데 스쳐갔어." "저기에 김의풀이 자라는데." "저기는 뱀딸기가 자라는 곳인데. 아직 뱀딸기 못 봤는데..." "이럴 거면 민들레 꺾어볼 걸..." 잡초라고 불리는 것을 거부하는 아이들에게 왜 풀들을 제거해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보기 좋게 심어놓은 꽃나무와 큰 나무를 위해서 제거는 해줘야 한다는 말에 아이들은 심드렁하다. 뽑아내고 잘라내는 것도 식물이고 예쁘게 핀 꽃인데 왜 무시하느냐는 둘째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큰 아이가 아파트의 풀들이 제거되는 걸 보고는 학교 가는 길에 있는 꽃도 다 없애는 거냐고 놀란 눈으로 묻는다. 풀이 너무 무성해져서 지저분해 보이기 전에 작업이 될 거라 말했다.


세상의 많은 요소들이 어른들의 시각으로 판단, 평가된다. 잘 정돈된 화단에는 보기 좋게 심어 놓은 것 이외의 것이 자리 잡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때에 맞춰 화학약품을 처리하며 화단을 관리하는 것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한다. 우리에게 해가 되는 것은 정작, 너무나 반듯한 화단과 관리를 위한 화학약품들이며 정해진대로 심어진 심심한 식물들을 보는 일이다. 봄을 수놓는 들꽃은 추운 겨울을 잘 이겨낸 멋진 로제트 식물이 대부분이다. 나물로 먹겠다고 인간이 죄다 뽑아내는 순간도 버텨냈다. 번식을 위해 있는 힘을 다해 결실을 맺고 화려함을 뽐낸다. 그들은 한 계절만 머물다 간다. 자연을 해치지도 않고 어울리면서 조용하지만 강하게 살다 간다.


이른 더위 속에서 줄기가 잎을 관통하며 자라는 듯한 고들빼기가 노란 꽃밭을 연출한다. 잔디와 함께 꽃마리가 빼곡하게 그 사이를 메운다. 회양목도 열매를 맺었고 이팝나무는 흐드러지게 흰 꽃을 피워 벚꽃과 느낌이 다른 화려함을 자랑한다. 식물들은 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보여주다. 그 덕에 생태계 속 인간의 존재성과 가치 있는 행동을 아이들과 대화한다. 판매되기 위해 하우스에서 키워지는 꽃과 들판에 자유롭게 피어난 꽃을 '꺾는다'는 의미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아이들과 이야기해보아야겠다. 아이들이 꽃대를 꺽지 않고 흩날린 민들레씨들이 미움받지 않고 잘 정착해서 내년에 만날 수 있길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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