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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Jun Sep 16. 2021

UX 복화술사를 위하여

UX writing 개노답삼형제(3):눈치 없는 '해요체'버튼

지난 시간에 살펴본 하십시오체에 이어, 오늘은 드디어 한국어 개노답 삼형제의 막내 해요체 버튼에 대해 이야기해 봅니다. 


해요체 버튼의 어려움: 길이, 정중성, 높임, 친밀도, 권력 위계까지 생각한다.


저는 버튼에 해요체를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아주 드물게 분위기를 띄워야 하는 상황, 예를 들면 화면 분위기가 슈퍼 하이퍼 상태인 마케팅용 화면이나, 신나서 난리부르스 추는 잔칫집 프로모션 콘텐츠일 때에만 가끔 써요. '디즈니랜드에서 너 혼자서 심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 이런 요구 사항이 들어오면 그때는 씁니다. 제가 해요체 버튼을 잘 쓰지 않는 이유는 해요체 버튼에는 여러 가지 다루기 힘든 문제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첫째, 해요체는 버튼의 길이를 길게 만듭니다.

한국어는 용언의 어간에 어미가 붙어 활용되는 언어인데, 이 어미의 길이라는 게 짧지 않습니다. 하십시오체나 해요체를 버튼에 쓸 경우 모두 서술성 명사에 비해 적게는 2자, 많게는 5-6자 이상 길어질 수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버튼을 대화체로 쓰려면 '장차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 스스로의 의사를 나타내거나 상대편의 의사를 묻는 데 쓰이는 종결 어미' 즉 commitment를 나타내는 -ㄹ래, -ㄹ게에 두루 높임을 의미하는 -요가 붙어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길이가 길어집니다. 또 해요체는 앞쪽에 '지금', '바로' 같은 부사를 붙이려들곤 하는데, 이럴 경우 버튼이 더 길어지게 됩니다.(지금 구매할게요, 그래도 해지할래요, 나중에 다시 볼게요.) 

'구매'라는 버튼을 예로 들어봅니다.


구매
구매하기
구매할래요
구매할게요

지금 구매할래요

바로 구매할게요


이렇게 길이가 길어지면 가로로 병렬 배치되는 2 버튼 디자인에 부담을 줍니다. 특히 다국어를 제공하는 글로벌 서비스인 경우 번역하면 길이가 1.5 - 3배까지 늘어나는 경우가 있어서(러시아어, 독일어 등) 텍스트가 줄줄이 잘려서 나올 게 뻔하죠. 그래서 길이가 충분히 확보되는 세로 배치형 텍스트 링크 버튼이 아니면, 웬만해서는 대화체 버튼을 잘 시도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런 텍스트 잘림 문제 이전에, 근본적으로 사용자가 빠르게 결정을 해야 하는 일반적인 플로우(삭제, 저장, 이동 등)에서는 굳이 몇 글자를 더 붙여서 사용자의 결정을 지연시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둘째, 사용자 의사와는 상관없이 말투를 고정시키기 때문에 일부 사용자가 이질감이나 불편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용자의 연령, 성별, 언어, 문화, 상황은 천차만별로 다를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해요체를 본인의 보이스로 쓰는 사람이 있겠지만, 누군가는 해요체를 전혀 쓰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죠.


조금 극단적인 예를 들어봅시다. 우리의 소중한 앱을 하필이면 범죄 도시의 장첸과 그의 친구들(!)이 다운로드했다고 생각해 볼까요. 해요체로 범벅된 앱이 그분들(...)에게 챡챡 이질감 없이 잘 먹히는 문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장첸과 친구들이 '지금 구매하고 싶어요!' 같은 버튼을 봤을 때, '지금 구매' 버튼을 봤을 때보다 이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딴 놈들, 이질감 느끼거나 말거나 이러지 마시고 상상만 한번 해보세요.) 


진실의 방으로 갈래요!


한국어처럼 어미가 발달하고 그에 따른 뉘앙스가 세분화된 언어에서 사용자의 보이스 문체를 고정하면 반드시 불편해하는 사용자가 발생합니다. 앞서 말했지만 해요체는 다소 어린이 같고, 비전문적이고, 감정적이고, 부드러운 느낌이므로 이 같은 어투를 본인의 목소리로 선호하지 않는 사용자가 분명 있을 수 있습니다


만약 사용자 세그먼트가 좁고 굉장히 세밀하게 타게팅된 앱이라면(예를 들어 우리 앱은 한국어를 쓰는 어린이 사용자만 쓴다는 경우), 그에 맞게 버튼에 독특한 보이스나 문체를 시도해볼 수 있겠지만, 사용자층이 넓어서 구체적인 사용자 페르소나를 특정해서 텍스트를 작성할 수 없다면, 서비스 내 모든 버튼 보이스를 해요체로 고정하는 것은 좋은 라이팅 전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특히 서비스 규모가 커서 타깃 유저의 폭의 넓은 경우, 예를 들면 메신저, 쇼핑, 금융, 공공 서비스 앱과 같이 다양한 사용자가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에는 이 부분을 더 신경 쓰는 게 좋습니다. 섣불리 다정다감한 사용자인 척 흉내 내다가는 '뭐야... 왜 이래'같은 반응을 받을 수 있어요. 


셋째, 해요체를 쓰면 서비스와 사용자 사이의 관계와 상황, 권력이 미묘하게 조정됩니다. 

보통 서비스와 사용자의 앱 내 권력 위계는 두 존재가 동등하거나 사용자가 약간 우위에 있습니다. 서비스는 항상 존댓말을 하고, 사용자에게 부탁하고, 설득하려고 합니다. 아쉬운 쪽은 서비스인 거죠. 사용자는 어디까지나 그 제안을 듣고 수락할지 말지를 도도하고 냉정하게 선택하는 존재, 그야말로 칼자루를 쥔 쪽입니다.


그런데 버튼에 해요체를 쓰면 사용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둘 사이의 거리가 가깝게 재정의되고, 둘의 권력관계도 평등하거나, 오히려 사용자가 약간 아래쪽에 놓이게 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우리가 해요체로 누군가에게 말할 때는 보통은 상대방이 사적인 관계에서 연장자이거나, 친근하지만 적당히 불편하고,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경우이거든요. 

그러나 지금 우리는 사용자가 그렇게까지 권력을 내려놓고 서비스와 평등해지고 가까워지고 싶은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사용자는 구매자로서 이성적인 상태를 유지하면서 서비스를 빠르게 탐색하고 싶어 합니다. '나랑 너는 공적으로 만났고, 서비스와 이용자, 판매자와 구매자로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싶어. 왜 갑자기 내가 너에게 다정하게 존댓말을 써서 높여줘야 하지?' 이런 불편한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해요체를 쓰는 이유: 당신과 내가 가까웠으면, 당신이 내게 다정했으면


그럼 기획자, 디자이너들은 왜 해요체 버튼을 쓰고 싶어 할까요?

어떤 기획자는 'UX란 서비스와 사용자의 대화'니까 그러니까 대화체 버튼을 쓰는 게 더 자연스럽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서비스 메인 문체로 해요체를 쭉 고수해 왔기 때문에 사용자도 해요체를 쓰는 게 더 어울린다고 하기도 합니다. 우리 서비스는 해요체를 쓰니까 카운터 파트너인 사용자 너도 대답을 해요체로 해야 한다라는 논리죠. (내가 존댓말 했으니까 사용자 너도 나한테 존댓말 해 이런 것일지도)


이에 대한 제 생각을 간단하게 말하면 'UX는 서비스와 사용자의 대화'라는 의미는 문자 그대로 서로 대화체로 말하라는 게 아니라, 서비스가 살아있는 인물처럼 사용자에게 리액션하고, 사용자가 어떤 의사 표시를 했을 때 매끄럽게 반응한다라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일종의 동네 고수들이 하는 탁구에 가깝습니다. 긴장감이 이어지지만 공은 떨어지지 않고, 내가 이렇게 했을 때 저쪽에서 적절하게 받아주고, 그렇게 한없이 이어지는 탁구 경기 말이죠. 사용자가 서비스 설명을 읽고 서술성 명사 버튼을 누르면, 그에 맞는 적절한 반응을 보여주고, 사용자가 화면을 이동하면, 기대하는 만큼의 정보를 제공하고... 

이런 '리액션으로 만들어진 대화'는 사용자 버튼에 하십시오체를 쓰냐, 합쇼체를 쓰냐는 것과는 아무 상관없는 겁니다. 서술성 명사로 버튼을 써도 대화는 끝없이 이어질 수 있어요. '삭제할래요'보다 '삭제'라는 버튼을 사용하면 오히려 불필요한 감정 소모 없이 더 평온하고 속도감 있게 대화가 지속될 수 있을 겁니다.


아무튼, 다시 돌아와서 그래서 왜  기획자와 디자이너들은 해요체 버튼을 쓰려고 할까요?

일단 해요체 버튼을 쓰면 기획자는 어쩐지 서로가 친근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앞선 글에서 설명했듯이 해요체는 감정적이고, 따뜻하고, 부드럽고, 친근하고, 사적이고, 상대와 거리를 좁히려고 하고, 사적으로 만나 알게 된 사이에서 쓸 것 같은 그런 문체거든요. 

기획자는 사용자가 자신, 즉 서비스를 친한 사이라고 느끼길 바라고 있습니다. 페이지 상단에서, 혹은 본문에서 실컷 자기 하고 싶은 말을 한 서비스는 그에 대한 사용자의 대답을 친근하고 따뜻한 형태로 받고 싶어 합니다. 화면 위쪽에서 미주알고주알, 이런저런 말로 실컷 설명하고 유혹했는데, 사용자가 '취소' '거절' '나중에' 이렇게 냉정하게 띡! 답을 준다고 생각하니까 좀 정 없는 느낌이긴 하죠. 

이건 어쩌면 편의점 알바가 카드만 딱! 내미는 손님이 아닌, '이걸로 결제해 주세요~' '다음에 다시 올게요~'처럼 말하는 예의 바른 손님이 왔으면 좋겠어...라고 소망하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여기에서 조금 더 들여다보면 사적인 느낌의 해요체를 통해 서비스와 사용자 사이에 엄연히 존재하는 냉정하고 공적인 관계(판매자와 잠재적 구매자, 또는 계약 관계)의 긴장감을 다소간 누그러트리고 싶은 욕망도 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일로 만난 사이지만 너무 정색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런 느낌? 


그렇지만 그건 역시 서비스의 욕망이 만들어낸 사용자 피그말리온일 뿐입니다. 실제 사용자는 그렇게까지 해줄 생각은 없고 그렇게 서비스에게 다정하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어요. 그냥 걸리적거리는 거 없이 스무스하게 선택하고, 어려움 없이 빠르게 다음 플로우로 넘어가고 싶을 뿐입니다. 


개노답 삼형제 셋째: 중요한 순간에 등장해서 허튼 수작하는 해요체


제가 가장 문제적이라고 생각하는 해요체 사용례는 사용자의 이익과 관련된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버튼의 톤 앤 보이스를 조정해서 뭔가를 얻어보려는 시도입니다. 특히 저는 서비스가 수세에 몰리는 상황에서 해요체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케이스에 대해서 좀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전까지는 삭제, 삭제하기 이런 서술성 명사 형태를 쓰다가, 갑자기 중대한 선택의 순간에 버튼이 '~할래요', '그래도 ~할래요'와 같은 해요체나 대화체로 바뀌는 그런 케이스 말이죠.


일단 미국 사례부터 봅시다. 영어에 해요체는 없지만 대화체에 주목해서 보면 됩니다.


나 나쁜 사람이었어? 나 가난하게 사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었어? 내 입으로 내가 그런 말을 했어?


컨펌 쉐이밍 막장 패턴에 대화체가 붙으면 얼마나 강력해지는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첫 번째 예시는 사용자가 Ad blocker를 쓰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광고 좀 때릴 테니까 Ad blocker 해제하시오'라는 제안 팝업에다가 글쎄 떡하니 거절 버튼으로 '나는 나쁜 사람이에요.'를 적은 것입니다.

대화체로 적지 않았으면 ' Ad blocker 유지', '나중에' 정도의 버튼이 되었을 텐데, 대화체로 하니까 더 화납니다. 사용자 일부는 이 버튼을 누르고 싶지 않아서(이렇게 말하고 싶지 않아서) 억지로 Turn off Ad Blocker 버튼을 눌렀을 수 있습니다. 이 버튼에 대화체로 안 쓰고 컨펌 쉐이밍만 했으면 '나쁜 사람 되기'인데, 대화체가 아니라서 현장감이 좀 떨어집니다. 

 

두 번째 예시에서는 금융 컨설팅 서비스 메일링에 주소를 안 넣겠다는 거절용 N 버튼에 '싫어요! 나는 가난하게 사는 게 좋다고요!'라고 대화체로 써넣었습니다. 이렇게 마치 사용자가 말하는 것처럼 대화형으로 네거티브 버튼을 작성하면 사용자가 순간적으로 본인이 직접 발화한 것처럼 느껴서, 부정적인 감정을 회피하기 위해 포지티브 버튼을 선택하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화체를 안 쓰면 '부자로 살기' '가난하게 살기'인데 역시 자기 발화 효과 없어서 긴장감이 다소간 약해집니다. 역시 컨펌 쉐이밍과 대화체/해요체의 결합은 무시무시하네요. 

둘째형 컨펌 쉐이밍 하고 셋째 해요체는 만나지 말고 따로 놀아라.


미국 사례만 보지 말고 한국 사례도 좀 봅시다. 

우리는 눈치 없는 해요체를 탈퇴, 해지 프로세스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용자는 계약 해지를 요구하고 있는데 버튼이 이게 뭐야...


몇 개 서비스의 최종 서비스 해지, 탈퇴 버튼들을 모아봤습니다. 

그래도 해지할래요, 혜택 포기할래요, 나중에 인상된 가격으로 구매할래요(?!) 등 구어체 어미 '-ㄹ래'+해요체를 결합시켜서 기묘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비격식 높임말인 '해요체' 때문에 발화자인 사용자의 연령이 약간 낮아지는 느낌이 들고, 서비스와 사용자 간의 권력 위계 관계도 미묘하게 뒤틀립니다. 서비스 이용 내내 두 존재의 위상은 평등했거나 사용자가 약간 높았는데, 탈퇴의 순간 사용자가 존댓말을 쓰면서 미묘하게 서비스가 우위에 가 있는 느낌이 되었네요. 뜻은 다르지만 음가는 같은 어미 '-래요'가 어린이 말이라고 정의되어 있는 만큼, 이 버튼들을 통해서 사용자의 서비스 내 위치가 어리고, 사적인 대상으로 조정받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헤어지는 이 마당에 갑자기 '-래요'처럼 미성숙한 보이스로 존대를 하고, 설득을 듣지 않고 고집부리는 듯 '그래도'라고 말하는 이 요상한 상황. 여기에 '혜택 포기할래요' '나중에 인상된 가격으로 구매할래요'처럼 컨펌 쉐이밍과 결합까지. (둘째, 셋째 너네 같이 붙어있지 말라고...) 

사용자는 이런 버튼을 보면서 미묘하게 불쾌해지거나, 감정적으로 언짢을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순간적으로 그 버튼을 안 누르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도, 실제로 다음 액션이 위축될 수도 있습니다.


요컨대 탈퇴처럼 사용자의 이익과 의견이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는 화면에서 해요체는 참 어울리지 않습니다. 계약을 해지하는 다분히 공적인 상황에서 사적인 해요체를 써서 분위기를 느슨하게 만들거나, 사용자를 불편하게 만들어 진정한 의사 결정 방향에 영향을 주려고 하는 의도가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만약 서비스 화면 내내 계속해서 버튼에 해요체를 썼다고 해도, 이런 심각하고 중대한 상황에선 해요체를 빼는 게 낫습니다. 


잠시 이 페이지에 도달한 사람의 감정을 상상해 봅시다. 예상하셨다시피 이 사용자는 정말 탈퇴, 해지하려고 마음먹은 사람입니다. 뭔가 사정이 있거나, 서비스에 불만이 있거나 해서 관계를 단절하려고 숨겨진 메뉴 동굴을 파고 파고, 열고, 또 열고 해서 인디애나 존스처럼 이 깊숙한 화면까지 도달했는데... 그런 사람에게 이런 버튼을 보여줬을 때, 그들은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까요. 


지금 서비스와 사용자 사이의 계약이 해지되냐 마냐는 냉정하고 공적인 상황인데 눈치도 없이 그동안 잘 쓰지도 않던 해요체를 쓰며 사용자의 판단과 의사를 흔들려고 하는 시도를 마주했을 때, 여기에 버튼 크기, 순서(왼쪽 오른쪽 버튼 순서 바꾸기), 컬러까지 총동원해서 사용자의 의사결정을 혼란스럽게 하려고 할 때, 과연 사용자는 서비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게 될까요? 

다시 이용하고 싶은 서비스라고 생각할까요?



우리... 헤어질 때 위트 있거나 단정했으면 좋겠어.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서비스 탈퇴 화면 두 개를 공유하면서 이 단락을 마무리 지어볼까 합니다.


앞쪽은 스포티파이의 탈퇴 화면입니다. 별 다른 이야기하지 않고 쿨하게 보내주면서 플레이 리스트에 담긴 곡 제목으로 하고 싶은 말을 적었네요. If you leave us now , you'll take away the biggest part of us. 참 귀엽고 센스 있고 안 질척거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위트는 서비스 보이스(플레이 리스트)에서만 보여주고, 버튼에 다른 수작은 하지 않습니다.


뒤쪽은 마켓컬리 탈퇴 페이지입니다. 화면 상단에서 사용자가 탈퇴를 결심하게 만든 본 서비스의 부족함을 겸허하게 반성하고, 하단에 '탈퇴하기' 버튼을 제공했습니다. 차분한 서비스 목소리로 헤어짐에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는 인정하고, 지금까지 앱을 여행한 사용자의 의사를 온전히 존중하는 서술성 명사로 버튼을 썼습니다. 헤어지는 순간에 버튼에 허튼 수작하지 않고, 컨펌 쉐이밍도 안 쓰고, '그래도 탈퇴할래요'라고 되바라지게 사용자 보이스를 흉내 내지도 않았어요. 단정하고 쿨하네요. 마켓컬리 톤 앤 보이스가 굉장히 단정한 스타일이라서 탈퇴 페이지도 동일하게 작성된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사용자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순간엔 버튼은 그냥 내버려 두세요.



누가 한국인이 화가 많다고 했는가. 여기 생불이 계시다.



UX 복화술사를 위하여: 사용자 목소리를 다룰 때 그에 대한 내 태도가 드러난다.



https://www.youtube.com/watch?v=G0ZuPjha-c8

노련한 빌리 플린 역을 하는 최재림 씨의 연기를 보면서 UX 복화술사를 생각합니다. 


글이 많이 길었으니, 잠깐 뮤지컬 시카고 한 번 보시면 어떨까요? 

저는 최재림 씨의 미친 복화술 연기에 그만 넋을 놓아버리고 말습니다. 

닳고 닳은 변호사 빌리 플린은 어리숙한 의뢰인 록시 하트를 마리오네트처럼 움직이며 그녀의 목소리를 흉내 내 대신 기자회견을 합니다. 그는 복화술로 그녀를 조종해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언론을 움직일 수 있다고 믿고, 실제로 그렇게 되죠.


사실 그동안 우리는 UX writing을 통해 사용자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CTA 레이블을 어떻게 쓰면 지표가 올라간다, 어떤 말로 어그로를 끌면 클릭률이 높아진다, 이런 것들에 열중했죠. 버튼에는 급박한 부사(지금, 바로)를 써라, 버튼을 누르면 나오는 다음 플로우를 지시하지 말고 먼 훗날에 받게 될 잠재적인 이익을 당장 얻을 것처럼 쓰라(다음 페이지에서 배신감을 느끼겠지만 알게 뭐야 내가 원하는 건 지표인걸) 이런 CTA 작성 기술을 당당하게 UX writing 꿀팁으로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컨펌 쉐이밍도 그런 시도 중에 하나였죠? 그런 게 정말 UX writing일까요?


저는 버튼에 대화체를 쓸 때 종종 UX 복화술사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내게 동의해준 적 없는 사용자의 목소리를 허락 없이 흉내 내고 있는 듯한 기분이거든요. 

저는 그럴 때 사용자를 좀 더 두려워하려고 합니다. 내가 흉내 내는 보이스가 사용자에게 무례하게 들리지는 않을지, 불쾌하진 않을지, 이 화면에 이렇게 말하는 것을 어색하게 느끼지 않을지 고민합니다. 

이 버튼 문체가, 이 어투가 사용자의 중요한 의사 결정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닌지, 우리 서비스에 대한 나쁜 인상을 주지는 않을지, 지금 이 상황에서 이런 사용자 복화술을 하는 게 맞는지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사용자 목소리를 흉내 내서 버튼 텍스트를 쓸 때, 

내가 사용자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어떤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는지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사용자를 소중한 고객으로 존중하고 있는지, 아니면 뭔가를 뽑아먹을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는 

버튼 텍스트를 다르게 써보려고 할 때 작성자 스스로가 깨닫게 되거든요. 



오늘의 요약


버튼에 해요체를 쓸 때에는 여러 가지 조건을 고려해야 합니다. 부사까지 추가해서 길이가 너무 길어지진 않을지, 해요체라는 특정 보이스에 이질감이나 불편함을 느끼는 사용자들은 없을지, 해요체를 써서 서비스와 사용자 간의 권력 위계가 전복되는 느낌을 주진 않을지 여러모로 잘 살펴봐야 합니다. 

해요체를 쓰면 어쩐지 사용자가 나(기획자)에게 다정하게 대답해주는 것 같지만, 그건 우리가 만들어낸 이상적인 사용자 이미지일 뿐입니다. 우리는 사용자를 모르기 때문에 섣불리 그를 흉내 낼 수 없습니다.

결제. 해지, 탈퇴 등 사용자 이익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중대하고 공적인 상황에서는 해요체를 쓰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사용자가 중요한 의사 결정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도록, 가급적 버튼에는 어떤 장치도 배제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특히 컨펌 쉐이밍과의 해요체의 결합은 지양해야 합니다. 읽다 보면 능욕당하는 기분이 들어요.

버튼 텍스트를 쓸 때 내가 사용자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가 드러납니다. 사용자가 본인의 원 뜻대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런 마음으로 버튼 텍스트를 작성해 주세요. 분위기 파악 못하고 아무 때나 UX 복화술 하지 맙시다.



 


지난 글에서 말한 키워드 정답 발표: 개노답 삼형제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는 바로 '버튼'입니다. 


사실 저는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들이 어떤 정보를, 어떤 톤 앤 보이스로, 어떤 플로우로 제공하든 다 괜찮다고 생각해요. 만듦새가 좋은 서비스가 있고, 좀 부족한 서비스가 있을 수 있겠지만, 다르게 보면 각자의 개성이라고도 할 수 있거든요. UX writing은 자유도가 매우 높은 작업입니다. 흰 종이에 만년필로 글을 쓰듯 뭐든 해볼 수 있으니, 겁내지 말고 일단 써보시라고 권해 드리고 싶어요. 앱에 쌍욕만 안 쓰시면 됩니다.


다만 사용자의 영역인 버튼에 약치는(?) 행위에 대해서는 저는 굉장히 부정적입니다.

반복해서 말씀드리지만, 그건 사용자를 기만하는 행위로 쉽게 이어질 수 있습니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UX writier로 일하면서 결국 심각한 문제는 대부분 버튼 텍스트에서 발생한다는 걸 알게 되었고, 이에 한국어 UX writing 개노답 삼형제에 대한 글을 써서 제 경험과 생각을 공유드렸습니다.

 

누군가에겐 별 거 아닌 문제겠지만, 제게는 참 어렵고 중요한 문제였거든요.

 

잘 가라 이 자식들아. 둘째 셋째는 같이 몰려다니지 말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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