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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Jun Aug 27. 2024

이게 '혜택'이야?

[서비스 용어 1] 현실 vs 서비스 언어 사이의 간극, 의미 인플레이션

어쩌면 자승자박이 될지라도, 한 번은 말하고 싶었어요


이 주제로 글을 쓸까 말까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단순히 UX 라이팅뿐만 아니라 마케팅, 카피라이팅 영역에도 관련이 있는 이야기니까요. 하지만 역시 쓰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너무 무감각하게 답습하고 있어서, 한 번은 짚고 가고 싶었습니다. 물론 '남들이 그렇게 쓰니까 나도 그렇게 쓴다'는 식의 영혼 놓은 라이팅도 거친 현생을 살아가는 방법 중에 하나겠지만, 막상 쓰고 나서 동공이 공허해지는 그런 글쓰기를 권할 순 없죠. 내가 쓴 텍스트가 무슨 의미로 읽히게 되는지, 서비스에 어떤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한번은 생각해봐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2편에 걸쳐서 많은 실무진이 화면에 할 말이 없을 때 영혼 없이 쓰는 단어, 안 쓰면 어쩐지 사용자가 안 봐줄 것 같아서 일단 쓰고 보는 (무늬만) 매직 워드 두 개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어떤 어휘를 사용할 때 왜 적확한 의미로 적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 또 현실 언어와 서비스 언어 사이의 간극이 커지는 것, 즉 의미 인플레이션이 왜 좋지 않은지, 이런 일이 왜 생기는지, 그것이 만들어낸 업계의 부작용은 무엇인지와 같은, 흥미롭지만 다소 무거운 주제를 최대한 가볍게 다뤄보겠습니다. 

이번 글에선 그 중 첫 번째 단어 혜택(惠澤)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지요.


'혜택'이란 말의 의미 

단어의 사전적 정의부터 밝히며 포문을 여는 스타일은 약간 구태의연한 전개 방식이라서 별로 하고 싶지 않지만 뭐, 그래도 합시다. 오늘은 어휘가 중요하니까요. 


혜택(惠澤)
명사. 은혜와 덕택을 아울러 이르는 말
유의어: 덕, 덕분, 덕분
예) 세금 혜택. 문명의 혜택, 학생 혜택


사전적 의미는 거창하지만, 사실 혜택을 영어로 말하면 그냥 Benefit입니다. 그야말로 이익을 얻는다는 말이죠. 본능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에 자신의 이익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저는 호리지성 (好利之性)이야말로 인류를 번영케 한 단 하나의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혜택이라는 단어의 핵심 의미에 대해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혜택은 의식적 행위 없이도 자연스럽게 부여받는 이익입니다. 바꿔 말하면 수혜자가 별도의 노력이나 노동을 하지 않아도 단순히 그가 어떤 존재이거나 자격이 있기 때문에 공으로 받을 수 있는 이익만이 바로 혜택이라는 것이지요.


현실 세계에서 '혜택'이란 단어가 어떻게 쓰이는지를 떠올려 보세요. '나 임산부 혜택 받았어', '이게 문명의 혜택이지', '세입자라면 연말정산 때 세액 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어'와 같은 표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우리는 받는 이의 존재와 상황만으로 노력없이 이익을 얻을 수 있을 때에만 혜택이라는 표현을 쓰곤 합니다. 그 사람이 굳이 애쓰지 않아도 임산부라서, 문명사회의 일원이라서, 세입자라서 제공되는 확실하고 온전한 이익이 있어야 '혜택'이란 말을 쓸 수 있는 거죠. 만약 노력을 해서 이익을 얻으면 그때는 혜택이 아니고 '상응하는 대가', '보수', '보상'이라고 부르죠. 


참고로 멤버십 가입 혜택일정 부분 가입에 대한 '대가'나 '보상', '교환', '거래'의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적은 노력이나 비용을 들여 멤버의 지위를 획득해서, 들인 노력보다 더 큰 이익을 얻으려는 상황이기 때문에, 어쩌면 온전하게 혜택이라고 부르기는 어려울 수 있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입 노력에 비해서 받게 되는 혜택 이익이 초라했다는 걸 알게되는 경우 '이게 혜택이야?'라는 퉁명스러운 질문이 사용자 쪽에서 나오게 됩니다. 등가 이상의 상당한 보상을 기대하고 가입했으니까요.


기억을 더듬어 보면 다들 그런 경험이 있지 않으신가요? 허허, 그럴 때의 빈정상함은 말도 못하죠. 멤버십 혜택의 경우 지위를 쟁취한 초기 노력이 있기 때문에, 보상적 혜택이 크게 작용하지 않으면 상당한 저항감이 생길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일단 내가 이 지위까지 에너지를 써서 와줬으니(가입해 줬으니) 이 지위에 걸맞는 혜택을 어서 내어놓아라! 이런 사용자의 목소리를 떠올려 주세요.


위 내용을 요약해서 UI에서 사용되는 혜택의 정의를 내려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혜택(惠澤)
받는 사람의 존재, 위치, 자격 등으로 인해 받게 되는 실질적이고, 확정적이며, 의미 있는 이익. 
별다른 노력, 노동, 행위, 대가의 지불 없이 부여되는 이익, 또는 적은 노력을 들인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이익을 얻었을 때 사용할 수 있다.


저희 광고 문자를 받을 수 있는(?) 혜택을 드릴게요.


문제는 UI, UX 분야에서 마케팅, 커머스 분야에서 이 '혜택'이란 단어가 무슨 공기와 물처럼 아무 때나 쓰이고 있다는 거죠. 정말 이익이 아닌 것에도, 심지어 사용자의 이익과는 하등 상관이 없고 오로지 서비스의 이익하고만 관련이 있는 상황에서도 거리낌 없이 '혜택을 받으세요'라고 하는 경우도 눈에 띕니다. 


'혜택'이란 말을 하도 많이 봐가지고 이거는 뭐 감각이 없어


제가 건너 전해 들은 이야기를 하나 소개해 볼까요. 

때는 바야흐로 2010년대 중반, 한 대형 IT회사 서비스에서 이런 식의 문구가 (거의) 처음 등장했다고 합니다.

혜택 알림 설정
OO앱의 기능 업데이트와 이벤트 소식을 받아볼 수 있습니다.


혹시 이 설정 메뉴 문구를 보고 마음이 너무 동해서 막 누르고 싶어진 분... 있으신가요? 또는 이 문구에서 이상한 점을 느낀 예민한 분이 있나요? 어쩌면 여러분들은 이런 류의 문구를 너무 많이 봐서 장기하처럼 '이제 감각이 없으실 수'도 있겠습니다. 


이 설정 타이틀과 디스크립션은 사실 '광고 정보 수신 동의'용으로 제공되었다고 합니다. 광고 정보 수신 동의를 혜택이란 말로 바꿔 쓴 거의 첫 사례라고 들었어요. 10년도 더 전인 그 당시, '광고 정보 수신'이라는 말을 '혜택 알림'이라는 단어로 바꾸자 동의율이 20% 정도 올랐다는 이야기도요. 당시 사람들은 서비스에서 '혜택'이라니까, 정말 서비스가 주는 혜택다운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을 테고, 그러니 많이들 동의를 했겠죠. 그리고 그 후로 너도 나도 광고 수신 동의에 이런 식의 '혜택'이란 단어를 남용하기 시작했고요. 


저는 이런 걸 분식(粉飾) UX 라이팅이라고 부릅니다. 

'광고'를 '혜택 알림'이라고 부르는 것이야 말로 UX 라이팅의 분식회계 같은 거 아닌가요?


제가 기억하는 바로는 당시 이런 '혜택'아닌 것을 '혜택'이라고 불러대는 UX 라이팅 모럴 해저드(moral hazard)가 업계에 퍼지면서 그에 따른 반작용으로 두 가지 상황이 발생했는데, 첫 번째는 2015년에 광고 문자의 '(광고)' 표기와 앱 푸시(App Push) 수신 동의의 표기 의무 준수사항이 3000만 원 빡센 벌금과 함께 규정되었습니다. 다들 꼼수를 쓰니까 한국인터넷진흥원(KISA)과 방통위에서 고삐를 조인 거죠. 


두 번째는 사용자들이 '혜택'이라는 단어에 급격하게 둔감해졌습니다. 정말 혜택인 줄 알고 눌러봤더니 엉뚱한 광고로 가득 찬 화면을 몇 번 보게 되었고, 그 다음부터 더 이상 속지 않게 된 거죠. 슬프게도 단순히 어떤 한 두 서비스에만 실망하고 불신한 게 아니라, 한국 IT 서비스 전반에서 쓰이는 '혜택'이란 단어에 대한 불신으로 번졌습니다. 이제 사용자는 더 이상 '혜택'이란 글자를 봐도 반응하지 않게 된 거죠. 


요약하면, 드물게 완전한 긍정성을 지니고 있던 현실 언어 '혜택'과 서비스 언어 '혜택' 사이에 의미적 간극이 발생했고, 부정적인 측면에서 '의미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는 겁니다. 


물론 현실 언어와 서비스 언어가 항상 의미적으로 일치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현실 언어가 서비스 언어를 포괄하는 상황이 가장 좋다는 건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현실 언어의 단단한 의미 토대 위에서 서비스 언어가 활용되는게 그 서비스에게도 가장 좋거든요. 사용자가 현실 세계에서 이미 습득한 어휘 의미를 통해 서비스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더 빠르고 쉽게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예를 들면 '혜택' 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 '혜택'의 현실 언어의 의미를 알고 있는 사용자가 '혜택? 혜택은 좋은거 잖아. 그럼 이 서비스가 혜택이라고까지 말했으니 뭔가 좋은 게 나오겠구나! 그래, 한 번 눌러보자!'라는 마음으로 버튼을 클릭해서 지표가 높아질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혜택이 아닌 광고만 줄줄 나오면 사용자는 실망하고 더 이상 서비스가 말하는 혜택의 의미를 신뢰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런 의미적 간극이 생겨버리면, 서비스 언어에 대한 신뢰도가 급격하게 낮아지면서 궁극적으로 서비스 전체, 업계 전체를 신뢰하지 못하게 되어버릴 수 있습니다.


실제와 호칭이 일치할 경우:
혜택? 혜택은 나에게 흠없이 좋은 거잖아? -> 오 바로 큰 할인이 되네. 이거 좋은데?

실제와 호칭이 불일치할 경우:
혜택? 혜택은 나에게 흠없이 좋은 거잖아? -> 뭐야 혜택이라고해서 눌렀는데 무리한 조건만 잔뜩 있는 고작 2% 할인 광고잖아. 이게 혜택이야? 에잉 낚였네 이제 안 믿어! 이 서비스는 양아치야 뭐야?


'광고 보고 3원 받기'를 감히 혜택이라고 부르는 그런 패기는 사양할게요. 뭐래 진짜



디지털 폐지를 주우면 3원을 받을 수 있는 혜택(?)을 드릴게요.


위에서 말한 혜택의 정의에 위배되는 활용에 대해서 하나 더 이야기해 볼까요. 요즘 MAU를 늘리기 위해 앱 체류나 클릭 시에 돈을 주는 보상형 미션을 하는 서비스가 많은데, 이런 기능을 '혜택'이라고 부르는 곳들이 종종 눈에 띕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짠테크, 앱테크, 디지털 폐지 줍기라고 불리는 행위를 하지 않고 좋아하지도 않으며, 이런 식으로 MAU를 돈으로 사서 서비스를 키운다는 방향에 대해서도 내심 의문을 갖고 있지만(이게 정말 건강하고 의미있는 성장인가?), 짠테크 행위 자체에 대해 사용자 개개인 별로 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는 남는 시간에 10원, 3원을 모으는 걸 쏠쏠한 이익이라고 생각할수도 있고, 무심히 흘려보내는 시간이나 걸음을 몇 원, 몇 십원으로 전환하는 데에서 큰 성취감을 느끼는 사람도 분명 있을겁니다. '땅을 파봐라 십 원 한 장 나오나' 라는 옛 어른들의 말씀에 '보십시오. 광고를 봤더니 3원이 나왔습니다! 시대가 바뀌었다고요' 라고 말대답하는 쾌감도 있겠죠. 


하지만, 보상형 미션으로 주어지는 재화에 대해서는 위에서 이야기 했듯 용자가 상당한 노력나 의식적인 행위를 수행해서 이익을 얻은 것이므로 반드시 혜택이 아닌 '상응하는 대가', '보수', '보상','리워드'라고 불러야 합니다. 그리고 해당 행위는 '미션 수행', '이벤트 참여' 등으로 부르는 게 맞습니다. 그걸 '혜택'의 카테고리에 넣어서는 곤란합니다. 사용자의 능동적인 노력/노동이 들어간 테크, 짠테크, 디지털 폐지 줍기라는 행위에 대해 감히 서비스가 '혜택' 운운하는 건 오만한 겁니다. 10원 한 장을 얻기 위해 땅을 파는(?) 행위도, 광고를 보는 행위도, 앱을 켜는 행위 모두 사용자의 노동이 들어간 것이니까요. 


요컨대사용자 노력이 담긴 행위에 대해 보상을 주는 기능을 혜택이라 지칭하지 않도록 유의해 주세요. 여기서 용어를 제대로 쓰지 않고 스탠스를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사용자를 거지 취급하게 됩니다. 대단한 은혜를 베푸는 양 느껴지기 때문에, 빈정이 상하는 것은 물론 서비스 이미지에도 좋지 않죠. 보상 금액이 매우 적을 시에는 더더욱 빈정이 크게 상합니다.


왜냐면 이제 사용자들도 이것이 방문을 돈으로 사는 일종의 마케팅 비용인 것을 잘 알고 있고, 자신의 시간과 노력, 노동력, 때로는 개인정보를 제공하고 서비스로부터 대가를 받는 것을 너무나 잘 인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재화와 노동력을 교환하는 관계는 한쪽이 다른 쪽으로 시혜를 베푸는 게 아니라는 걸 사용자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죠. 그걸 알고 지금 이벤트에 참여한 것이니까요. 


특히 광고를 보는 것(사용자의 시간과 주의력을 소비하는 것)이 돈이 된다는 것을 오랜 시간동안 여러 서비스에서 체화한 사용자는 앱테크 기능을 "혜택'이라고 부르는 서비스에 대해서 큰 불쾌감을 느낍니다.


고물상 주인: 김씨, 폐지 1키로를 주워오면 132원을 받을 수 있는 혜택을 자네에게 특별히 주지.
유튜브: 광고를 10초 보면 클릭한 동영상을 볼 수 있는 큰 혜택을 드릴게요. 
보상형 미션 서비스: 저희 라이브 커머스 방송을 1분 동안 보면 30원 받을 수 있는 혜택을 놓치지 마세요.


다함께 위 문장을 읽으며 서비스의 시혜적 태도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불낙'에 대한 허재 감독의 존재론적 질의처럼 저도 묻고 싶네요. '이게 혜택이야? 이게 혜택이냐고?'



여기서 무엇은 혜택이라고 부를 수 있고, 무엇은 혜택이라고 부를 수 없을까요? 그런데 왜 모두 혜택이란 카테고리 하위에 분류되어 있는 것일까요? 


위 화면에서 혜택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과 부를 수 있는 것은 무엇일지, 또 '혜택'이란 바텀 내비게이션 메뉴명에 혜택이 아닌 것들이 섞이게 되는 실무단의 이유는 무엇일지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다음 글에서는 이에 대한 이야기를 마저하고, 나머지 오용되고 있는 매직 워드 한 개에 대해서도 다뤄보겠습니다.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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