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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Jun Dec 24. 2017

[동아시아면류학說]일본 교토역 殿田

분노의 타누키 우동 


일본에 일주일 동안 다녀왔습니다. 한동안 뜸했던 동아시아면류학說을 쓸 거리를 잔뜩 만들어 왔어요. 

(전략적으로 면식을 했다는 말씀!)

이번 일본 여정은 교토에서 3일, 가나자와에서 2일, 오사카에서 1일이었습니다. 

호쿠리쿠 지방은 처음이었어요. 

일단 오늘은 많은 분들이 아시는 교토의 면식부터 소개합니다. 


첫날 간사이 공항에서 하루카를 타고 바로 교토로 왔습니다. 

교토에서 다시 JR을 타고 비와호 근처로 이동하기 위해 역 근처에서 간단하게 요기를 하기로 합니다. 


저 엄청 고민했어요. 저에게는 한 끼 한 끼가 소중하단 말입니다. 

'오늘 점심은 다시 돌아오지 않아!' 매끼 이런 마음으로 열심히 먹어 나아가고 있어요.  

출발하기 전에 교토역 인근에서 먹을 것을 타베로그로 엄청 찾은 후, 최종적으로 가볍게 먹을 수 있고 교토역과도 가까운 식당을 선정하였습니다. 

하루카에서 내리자마자 식당을 찾아 탈탈 탈탈 캐리어를 끌고 교토역 뒤편으로 나왔습니다. 


 

관광객따윈 관심 없는 동네 밥집의 포스 


외관부터 외지인을 끌지 못합니다. 관광객 따윈 오든 말든. 나는 나의 길을 간다. 

내부라고 다를 건 없어요. 

음식 일본어 회화 실력을 테스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사진출처: https://kyotopi.jp/articles/EpnkI


메뉴판은 따로 없습니다. 그냥 벽에 붙은 거 보고 주문하시면 됩니다. 

모르겠으면... 그냥 아는 것 주문하시면 됩니다. 

오른쪽에서부터 덮밥류와 우동/소바류가 쭈욱 나열되어 있는데.... 아는 음식과 모르는 음식이 마음속에 뒤섞이기(모르는 음식이 내 마음을 도발하기 전에) 빨리 주문하였습니다. 


오야코동과 타누키 우동 주십시오. 


타베로그에서 이 집의 타누키우동과 오야코동에 대한 달큼한 리뷰가 있었거든요. 

다시 올 수 없는 가게라면 안전하게 가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은 교토의 첫 끼니까요. 

엉뚱한 치기로 우리의 빈 위장에 내상을 입힐 순 없습니다. 

오랫동안 이 가게에서 일하신 것 같은 할아버지께서 엽차를 내어주시고 주문을 받아가셨습니다.  


음식이 나올 동안 가게 구경을 좀 합니다. 

식사 시간이 지났는데도 사람이 꽤 많아서 사진을 많이 찍을 수 없었네요. 

특별출현. 내 손가락. 앞으로도 자주 나올 예정. 


그냥 진짜 밥집이에요. 뭐 다른 거 없어요. 

텔레비전 보는 사람들, 단단하고 네모난 의자, 약간 때가 탄 쿠션, 걱실 걱실 밥을 먹는 동네 사람들. 

캐리어를 끌고 온 여행자는 우리뿐입니다. 

엽차 한잔을 시켜 봐도 웬일인지 오지를 않네... 아 그만 불러야지. 


동글동글 고풍스러운 잔에 구수한 차를 담아 주십니다. 따뜻한 무기차(보리차)같습니다. 

어릴 때 엄마 따라서 동네 다방 갔을 때에는 같은 모양 갈색 줄무늬 잔이었는데. 


잠깐 기다리니 음식이 나왔습니다. 

타누키 우동. 


우동 위에 유부와 잘게 썰은 파, 간 생강이 한 스푼 올라와 있는 타누키 우동입니다. 

튀김 부스러기가 올라가 있는 타누키 우동이 아니라 간사이 풍으로 유부가 올라와 있는 우동이죠. 


 뽀얗다...뽀얗고 보드랍다...


면은 뽀얗고 보드랍습니다. 

탄력 있고 탱탱한 우동을 기대하셨다면 약간 실망하실 수 있겠습니다만, 입술로도 뭉개지는 부들부들한 면의 식감도 나쁘지 않아요. 전분기가 많은 끈적한 국물과는 역시 이런 부드러운 면이 잘 어울립니다. 


유부, 분노의 유부!


면위에 수북하게 유부를 올려줍니다. 

부들부들한 유부와 면을 함께 먹는 게 간사이의 타누키 우동 맛이지요. 

원래 타누키 우동하면 우동위에 올려주는 튀김(동글동글한 그거요)을 잔뜩 뿌려주는 우동을 말하지만, 

간사이 지방에서 타누키우동 하면 유부를 많이 올려주는 그런 우동을 준다고 합니다. 


생강이 약간 과하게 올라가 있는 것 같아 좀 걷어 내고 먹었어요. 

옛다. 오야코동... 니 사진도 한 번 올려준다. . 

자 리뷰는 여기까지. 

여기서부터는 분노의 성토. 


일행과 오야코동과 우동을 각각 반씩 먹고 바꿔먹기로 하였습니다. 

둘 다 밥도 먹고 싶고 면도 먹고 싶었거든요. 저는 얌전하게 오야코동 1/3을 모양을 흐트러트리지 않고 예쁘게 떠먹고 일행에게 그릇을 돌려주려고 딱 쳐다봤는데...

봤는데... 

일행이... 타누키 우동의 유부를 다 먹고 면만 반 절 남겨 놓은 걸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얼굴이 창백해지고 숨이 가빠져서 음식을 먹는 둥 마는 둥 

충격으로 흐느적거리며 계산을 마치고 가게를 빠져나와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부를.. 유부를 다 먹다니...

나는 너와 같이 무도한 자와 여행을 도모할 수 없다! 


동아시아면류학에 아무런 지식이 없는 이 자는 유부가 걸리적거려서 먹어버렸다는 둥, 면이 중요할 것 같아서 생각 없이 면만 남겼다는 둥 쓸데없는 개소리를 하길래 서울로 가면 너와 나는 의절이다!라고 외쳤습니다. 


물론 교토역 지하상가에서 타코야키를 사 먹고 마음이 풀어지긴 했지만 (...) 

면에 대한 지식이 하나도 없는, 즉 일면식一麵識도 없는 이 무도하고 부덕한 자를 어찌하면 좋을까요. 


면부터 꾸미, 국물, 그릇, 젓가락, 곁들임 음식까지 면은 총체적인 종합 예술이라고! 

이 일면식도 없는 자야!

쿠호! 화 그르르르


다음엔 본격적인 일본 면식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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