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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콜라 Jul 19. 2020

한국 묘지는 너무 무서워

한국에서 시골길을 지나가다가 보면 우연찮게 무덤을 만나게 된다. 낮엔 별로 무섭지 않아도 밤길에 만나면 무섭다. 거기다가 산을 뒤덮은 공동묘지는 하물며 벌건 대낮에도 무섭다. 드문드문 뜯긴 잔디나 잡풀을 머리에 달고 있는 흙무더기라 불쑥불쑥 솟아오른 딱 사람 키만큼의 지름인 반구들이 꽉 들어찬 죽은 자들만의 거처는 한국에서는 산자들의 도시를 한참 벗어나야 나온다. 일본 후쿠오카에서 살던 시절 작은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다니던 가라데 도장은 절의 경내에 있었는데 절집 입구에서부터 도장 입구까지 양쪽으로 비석이 쭉 늘어서 있었다. 집 주변에서 가장 가까운 도장을 찾다가 그곳에 등록을 하고 다니게 했는데 아이를 데리러 비 오는 저녁에 우산을 쓰고 비석들을 지나칠 때에는 도장 입구까지 가는 동안도 뭔가 써늘했다. 일본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라서 출퇴근 시와 장 보러 갈 때도 많이 타고 다녔다. 당시가 1998년 즈음인데도 보행자도로 턱을 애초부터 경사로 만들어 놓아 자전거 타기가 좋아서 이런저런 볼일이나 이삼십 분은 걸리는 거리는 자전거를 즐겨 타고 다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켓에 들렀다가 세일 품목에 혹해서 예정에 전혀 없던 쌀자루, 간장 같은 무거운 것까지 용감하게 덥석 집어 들어 뒷자리에 동여매고 앞의 바구니에 가득 담고 자전거 핸들 좌우에 비닐 봉투의 무게를 되도록 균등히 하여 걸었다. 중심을 잡아가며 집을 향하여 페달을 밟으며 출발을 했는데 무게를 이기지 못한 비닐 봉지가 튿어지는 바람에 간장병을 선두로 식재료들이 길바닥 위 쏟아져 사방으로 뒹구는 바람에 당황스러웠던 일이 생각난다. 기세는 드높았으나 철이 없어 사서 고생을 하느라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설 때엔 구름 끼고 괜찮았었는데 집으로 돌아올 때엔 비가 내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 아이들이 다니던 국제 학교를 가고 오는 골목길을 지나다 보면 꽤 오래되 보이는 절이 있었다. 절 마당에는 커다란 고목들이 몇 그루 있었고 촘촘히 비석들이 세워져 있었다. 절집 안 지하실에는 낮이나 밤이나 항시 전등불이 켜져 있었는데 해가 떨어지면 지하실의 비석들이 지하 창문을 통해 밖에서 다 보였었다. 어느 날 비가 후둑후둑 떨어지기 시작하는 어둑어둑한 저녁에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가 고개가 절로 그리 돌아갔다.  안보고 싶었던 지하실의 비석들이 또 확실히 보이는 바람에 흠칫했다. 큰아이 말마따나 그야말로 한꺼번에 죽어서 거기에 몰아다 묻었는지 모르겠으나 모골이 송연해지면서 머리털이 쭈뼛 섰다. 그 후로는 아무리 급해도 지름길인 그 골목은 피했다. 일본에서는 죽은 가족의 영혼을 잘 달래어 천도시키는 일은 절간의 스님들에게 맡겼고 결혼식은 예배당에서 했다. 어ㄴ 날 해안도시의 쇼핑가를 구경하면서 산책하다가 예쁘장한 작은 예배당을 만났다. 호기심에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아담하면서 고급스런 장식이 깔끔했는데 그곳이 바로 교회 웨딩하우스였다. 결혼은 교회에서 하고 죽은 뒤엔 절에 묻힌다더니 편리하긴 했겠다. 유골 항아리를 자신의 집안으로 모셔와 차려놓은 불단이나 신단에다 올려놓고 혼령을 위로하고 집안의 안녕을 기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우리처럼 죽음을 터부시 하여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는 문화는 아닌 듯싶었다. 유교가 성했던 조선시대에는 부모가 돌아가시면 크게 곡소리를 내어 하늘이 무너진 슬픔을 표현해야 했고 망자를 모셔놓은 산소 근처에 허술하게 거처를 짓고 삼 년 동안 그 곁을 지켜야 효자 소리를 들었다. 그러다가 몸과 마음에 깊은 병이 들어 앓다 죽기도 했다. 허술한 옷에 부실한 음식, 불편한 잠자리에 더위와 추위를 겪어내면서 허구 헌 날 죽은 부모를 생각하며 슬퍼해야 했으니 외로움과 공포, 불안증에 신경과민, 거기다가 우울증까지 와도 아주 깊게 왔을 성싶다. 미국에는 도시 내에 공원묘지가 있다.  오래 전에 모여 살다면서 사람이 죽으면 그 곳에 묻기 시작했을 터이다.  세월이 갈수록 인구는 점점 늘어나고 죽는 사람도 늘어났고. 그러다가 크고 작은 건물들이 계속 들어서고 도시가 된 것이다. 공원묘지 바로 옆에 상가건물이 지어지고 공원묘지 건너편으로 주택단지가 들어서는 일은 우리나라에선 절대로 있을 수가 없다.  대대적으로 파내어 이장을 시켜서라도 산 자들로 부터 죽음을 멀리 떨어뜨려 놓았기 때문에 생활권내에는 묘지가 없 다.  아무리 눈앞에서 치워버려도 삶에서 죽음을 떼어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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