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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콜라 Aug 12. 2020

꽃들의 전쟁

네일샾이야기


학기 중에는 네일샾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다가 긴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부터는 풀타임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발톱소제와 발바닥의 굳은살을 제거해주고 부드럽게 로션마사지를 해주고 난 후 손님이 고른 매니큐어까지 칠해주고 원하면 꽃이나 나비 등등을 그려 넣고 보석을 붙여주는 나름 창의적이면서 예술적인 일이었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남의 발을 만지는 것이 내키지는 않았으나 그녀들이 행복해하는 것을 보면 따라서 기분이 좋아졌다. 주립대학이 근처에 있는 바람에 바비인형처럼 예쁘고 늘씬한 학생들이 삼삼오오 들어오기도 하여 젊은 그녀들의 보드랍고 예쁜 하얀 손과 발을 다듬어 주는 즐거움도 있었다. 유명한 관광도시이기도 하여 유럽과 아라비아, 아시아 각국에서 여행객들과 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을 보러 타주에서 온 부모들도 종종 들러 그들이 사는 곳과 사는 이야기를 듣는 것도 재미있었다. 맛사지 기능이 있는 의자 아래쪽에 부착된 족 욕조엔 냉온수 급배수 시설이 되어있어 그 의자에 앉기만 하면 만족도가 갑인 이 페디큐어 의자는 70년대 초에 ‘존 아무개’ 에 의해 발명되었다고 한다. 존 에프 케네디, 존 덴버, 엉클 존, 존 문 등등 수많은 존들은 각계에서 이름을 높였다. 이 발명품은 참으로 미국인다운 것이 자신의 발 손질을 손수 하는 것이 얼마나 귀찮았으면 그런 물건을 고안해 냈을까 싶다. 써볼수록 잘 고안된 물건이라 감탄이 절로 나온다. 특히 죽었다가 깨어나도 자신의 발에 손이 안 닿는 배불뚝이들을 위해서 최고다. 더러 살롱에 손님이 일찍 끊어진 날이나 안 바쁜 날에 경음악을 들으며 맛사지를 받으며 더운 물에 발을 담그고 눈을 감고 있으면 고산지대의 고질적인 두통도 사라지고 더부룩하고 뭔가 걸려있는 듯했던 체기도 뚫리고 몸의 한기가 사라져 긴장이 풀려 좋았다. 당시 같이 일했던 한국여인들은 네일 샾들 가운데 하버드라 할 정도로 나잘난 여인들이 많았다. 낮 동안 한국 테레비 연속극을 뒤져가면서 보다가 더 이상 볼 것도 없던 참에 주변 누군가의 권유로 호기심에 발을 들인 여인들이 대부분이었다. 딱히 돈을 벌어야하진 않았지만 심심하던 참에 집에 있느니 일주일에 며칠 나와서 일 같지도 않은 일을 배우고 손님 발부터 잡고 시작하지만 하다보면 쉬우면서 나름 재미도 있고 한국아줌마들과 수다 떨며 하하깔깔 거리는 즐거움까지 있어 외국생활의 외로움과 고국에 대한 향수가 달래어지기도 했다. 일이니까 물론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지만 새로운 스트레스로 오랜 스트레스가 풀렸다. 여인 예닐곱 명이 같이 일하니 얼마나 말이 많고 시끄러웠겠는가. 오픈 초기라 오너 둘 사이의 의견 차이와 둘이 오너 각자가 종업원들에게 하는 지시사항이 다를 때도 있었는데 그것을 전달 받은 여인들은 또 각자 자기네들 식으로 해석해서 일을 하거나 전달에 전달을 하니 아주 많이 시끄러웠다. 게다가 여인들 간에 편이 갈리었는데 어제는 이편이었다가 오늘은 저편으로 줄 갈아타기는 노상 있는 일이었고 누군가는 이쪽에다가는 저 말을 하고 저쪽에다가는 이 말을 하여 싸움을 붙이기도 하였다. 의도적으로 그러는 사람이 있는 반면 표현력과 어휘력부족으로 이 말이 나가야하는데 저 말이 나가서 괜히 욕먹는 여인도 있었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었으며 오늘의 적이 내일의 동지가 되기도 했고 한입으로 두말 세말 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으며 자신은 한입으로 한말만 하는 사람이라고 굳은 의지로 살아온 사람도 몇 번 당해보고는 어디 그럼 나도 해보자 하고 따라 배워 두말 세말 보태어 완전 난리도 아닌 그야말로 궁중비화 ‘꽃들의 전쟁’ 이었다. 처음엔 사소한 일로도 분위기가 심각해지기도 하였으나 차츰 적응이 되어 샆에서 연출되는 상황들을 즐기게까지 되었다. 뭐가 잘못 되었다며 말다툼하고 따지며 왁자지껄 열을 올리다가도 손님들 서넛이 샾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바로 흩어져 페티큐어의자 끄트머리에 사람들의 발을 하나씩 붙잡고 얌전히 앉으면 상황종료였다. 손님 두어 명을 연이어 해주고 나면 기운이 빠지고 배가 고파져 아까 일로 다시 언쟁할 여력도 없어 우선 뭔가를 먹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웃고 깔깔 거리는 한국여인들의 일터이자 놀이터가 네일샾이었다. 여자들이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남자들이었다면 아마 다시는 말도 안 섞고 안 봤을 것이다. 그래서 여자들은 나이 들어갈수록 친구가 많아지는 반면 남자들은 늙어갈수록 친구가 없는 게 아닌가싶다. 그것도 사람 나름이겠지만 모든 것이 다 맘에 들어야 친구관계를 이어간다면 갈수록 외로워질 수밖에 없다. 싫다 좋다 정해둠 없이 매순간 그때 같이 있는 사람에게 소탈하고 진솔하고 친절하다면 계속 친구를 만들 수 있다. 못난 사람도 잘난 사람도 없으며 우리 각자는 모두 귀하고 귀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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