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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콜라 Aug 18. 2020

몸뚱이가 화폭이냐구

문신살인사건


 서른 한 살의 애니는 내가 일하는 바버샾의 매니저이다. 그녀는 사시사철 소매가 없는 티셔츠에 숏 팬츠를 입는다. 덕분에 통통하고 실한 어깨와 팔과 등에 도배된 문신이 다 드러난다. 몸뚱이에다가 저런 걸 왜 했을까. 하려거든 작은 거 한 두 개정도나 새길 일이지, 원 세상에. 볼 때마다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었으나 이년 반을 넘게 청년들의 머리손질을 해주며 목덜미와 팔뚝, 그리고 머리통에 까지 새겨놓은 온갖 문신들을 봐오다 보니 이제는 그런가 보다 싶어졌다. 이발 학교에 다니던 시절. 우리보다 한 학기 전에 시작한 클래스에 있던 한 흑인 청년이 어느 날 복도에서 내게 중국인이냐고 물었다. 한국인인데 왜 그러느냐고 했더니 한자를 아는지 물어보려고 했다기에 나도 좀 안다고 했더니만 자신의 오른 팔뚝에 새겨진 글자를 보여주며 아느냐고 물었다. 너무도 쉬운 기초문자 아비 ‘부’ 였고 왼 팔뚝에는 어미 ‘모’ 자가 새겨져 있기에 파더와 마더구나. 헌데 너는 이게 왜 파더이고 저건 왜 마더인지 아느냐고 했더니 그건 모른다며 가르쳐 달라고 하였다. 아비 ‘부’는 농사도구를 그려놓은 것이라 아버지는 열심히 농사를 지어 식구들을 먹여살려야한다는 의미고 어미 ‘모’는 생명의 젖줄인 가슴의 모양을 그려놓은 것이라 아기를 양육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해 줬더니만 동공이 커지며 눈빛이 약간 깊어졌다. 그러더니 자신의 짧고 두툼한 뒷목에 새겨진 글자를 마저 보여주었다. 검을 ‘흑’ 이었다. ‘블랙’이구나 했더니 웃으며 엄지 척을 하고는 자기 교실로 들어갔는데 그 당시 미국 대통령이 오바마여서 흑인이라는 것에 무척이나 긍지를 갖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문신, 하면 떠오르는 ‘문신살인사건’이라는 일본 추리 소설이 있다. 1946년 여름 어느 날, 의사겐조는 우연히 문신 대회의 초대장을 얻게 된다. 문신 수집가인 헤이시로 박사와 함께 문신 대회에 참석하고 그곳에서 친구 히사시와 재회하게 된다. 히사시는 범죄 조직의 수장인 형 다케조와 같이 왔는데 형수인 기누에가 대회 참가자이기 때문이었다. 명망 높은 문신사 호리야스의 딸이자 등을 뒤덮은 거대한 뱀 문신으로 유명한 기누에는 문신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고 겐조는 아름다운 기누에와 그 기묘한 문신에 마음을 빼앗긴다. 기누에와 다시 만나게 된 겐죠는 그녀로부터 자신에게 오빠와 여동생이 있었는데 오빠에게는 개구리 문신이, 동생에게는 민달팽이 문신이 새겨져 있었는데 오빠와 여동생이 전쟁의 와중에 죽었으니 뱀 문신을 새긴 자신도 곧 죽을 거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삼자견제라고 불리는 이 문신들은 문신사들 사이에서는 결코 같이 새겨서는 안 될 문신으로 알려져 있다고 했다. 며칠 뒤 기누에의 연락을 받고 그녀를 만나러 간 겐조는 욕실에서 잔인하게 살해된 기누에의 시체를 발견한다. 머리와 팔 다리만 남은 시체는 놀랍게도 몸통이 사라진 상태였다. 살인자가 몸통을 가져간 게 분명한데 욕실은 밀실이었다. 풀기어렵다는 바로 그 밀실 살인 사건이라 수사는 미궁으로 빠진다...
뜨거운 여름날이 계속 되고 있다. 이럴 때엔 집에서 에어컨을 켜놓고 소파에 비스듬히 앉은 듯이 드러누워 고구마과자나 소라과자 같은 것을 우물거리면서 추리, 미스터리 소설책을 읽는 것이 최고이다. 전자책 서점에서 사서 읽은 책들이 꽤 많아졌지만 추리 소설이라는 것이 몇 번씩이나 다시 읽을 책은 아니라 사놓고 한번 읽고 태블릿에 보관만 하고 있는 것이 아까워 캐나다에 사는 친구부부에게 아이디와 비번을 주고 함께 공유하고 있다. 이 전자서점은 때맞추어 대여이벤트를 하기 시작했고 기회는 이때다 싶어 저렴한 값에 신나게 대여해가며 추리소설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지내고 있다. 이십대 삼십대 시절에는 밤 두세 시까지 책을 읽다가 잠들고 해가 중천에 뜬 뒤에 하루를 시작하기도 했었으나 미국에서 살다보니 해가 떨어지면 집밖을 나갈 일이 없는데다가 다음날엔 일을 가야하기 때문이기도 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게 되었는데 오십 줄에 들어서니 저절로 초저녁잠이 늘고 새벽잠이 줄어들기도 하여 아홉시에 잠들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게 되었다. 헌데 요새 밤 한두 시까지 책을 읽느라 깨어있다 보니 다시 이십대 시절로 돌아간 느낌에 새롭다. 나는 요즘 나오는 살인자체가 목적인 연쇄살인 사이코패스 스릴러 보다 고전 추리 소설이 좋다. 클래식한 배경에 템포가 느리며 그들 중에 범인이 있어 으스스한 느낌을 주는 이유가 있는 살인사건은 뜨거운 여름 더위를 잊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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