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콜라 Sep 12. 2022

가슴이 물렁해지는 순간

분별함을 사라지게 하는 것

이름이 뭐냐고 물으니 그 청년은 타일러라고 했다. 두어 차례 그의 머리를 깎아주긴 했었지만 한 번도 그의 이름을 물어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과 같이 왔었는데 청년은 조금 멍해 보이는 눈빛에 아무 말이 없었고 나이든 남자가 청년의 머리를 이렇게 저렇게 해달라고 했었기에 그에게 지적장애가 있나보다 생각했다. 며칠을 안 감았는지 아니면 감았는데도 그런 건지 머리에는 언제나 비듬과 먼지로 덮여 있었으며 꾀죄죄한 셔츠에서는 땀에 쪄든 냄새가 났다. 어딘가 일을 하러 다니는 것 같긴 했다. 이곳은 신체적 장애인은 물론 정신지체장애인도 본인이 원하면 얼마든지 취직하여 일을 할 수 있다. 각자의 능력에 맞을 만한 일자리를 주고 시일이 좀 오래 걸려도 그 작업에 관한 교육과 실습을 친절하게 꼼꼼히 가르쳐주면서 제대로 해낼 때까지 기다려준다. 물론 실습기간 중에도 시간당 급료는 준다. 모두 먹고 살아야하니까.

청년은 이발을 받는 내내 무표정이었고 머리손질을 다 마치고 거울을 보여줘도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계산대에 서면 남자가 시키는 대로 자신의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어 이발 비를 지불했다. 어리고 늙었어도, 그리고 장애가 있어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은 가능한 한 본인이 직접 해야 하는 사회라서 더러 오래 걸려도 모두 기꺼이 기다려준다.

지난 금요일 오후는 노동절 연휴를 앞둔 지라 특히나  바빴다. 손님을 보내고 ‘다음 ~ ’ 하면서 순서를 기다리는 손님들을 둘러보니  청년이 나와 눈을 마주 치며 미미한 신호를 보냈다. 그를 이발의자에 앉히고 ‘오늘은 혼자  거야? 아버지는?’ 하고 물었더니 ‘그분은  삼촌이에요.’ 라고 말했다. 역시 나의 혼자 생각은 사실과 다를 때가 대부분이다. ‘당신의 생각이 당신을 속이고 있다 멘토의 말이  맞았다. 엄마 손에 키워지기는 했을까 싶어 와락 연민의 감정이 들었다. 그때부터는 청년의 머리카락  시리얼 부스러기 같은 비듬도 숨을 멈추게 하는 그의 체취도  이상 거슬리지가 않았다. 내가 나서서 이렇게 저렇게 해주랴 물어보니 끄덕거리기에 작업에 들어갔다. 이곳 콜로라도의 청년들 대부분이 좋아하는 스킨 타이트 페이드 스타일로 갔다. 관자노리 부분을 돌려  아래로는 스킨 헤드, 그리고 윗머리부분은 손가락두께보다 약간 길게 남기고 양옆은 그라데이션. 위와 아래를 연결하는 중간 부분을 매끄럽게 연결하는 것이 관건인데 깔끔하면서 남성다운 매력이 물씬 풍겨나는 헤어스타일인데  자신이 스스로도 자랑스러울 만치  한다. 클리퍼(바리깡) 트리머(아기 바리깡) 정교한 흑백 산수화를 그리는 느낌으로 미세한 부분까지 다듬는  난이도의 기술이 필수이다. 클리퍼를 붓이나 연필처럼 다루면서 명암을 멋지게 만들어내야 하므로 여기서 이발사의 실력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경력이 오래  이발사들도 흠잡을  없이 완성하려면  시간이상씩 걸리기도 한다. 허나 한국인인 나는 타고난 눈썰미와  감각으로 정성을 다하면서도 짧은 시간에 매끄럽게 완성을 시켜주니 손님들의 만족도가  높다.

머리카락을 벗겨놓고 보면 적나라하게 드러난 머리통의 모양은 사람마다 죄 다르다. 두개골의 여기저기가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것은 기본이고 두피가 두세 겹으로 접혀 늘어져 있기도 하고, 반점으로 얼룩덜룩 하고 사고나 수술로 크고 작은 흉터도 있고 사마귀가 곳곳에 솟아있거나 두피에 여드름이 나있는 사람도 많다. 머리카락의 색깔과 굵기와 질감 또한 각자 다르다. 이십 여분 동안 자세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주는 손님들도 있지만 자꾸 고개를 떨어뜨리며 밑에만 본다든가 뒤로 계속 과하게 제쳐 올리거나 좌나 우로 삐딱하니 열시 방향을 고수하거나 여기 저기 계속 두리번거리는 손님들도 많다. 거기다가 뻗대며 우렁차게 쉬지 않고 울어대는 힘이 장사인 아기들에 엄마나 아빠한테 억지로 끌려와 짜증과 불만으로 가득한 표정으로 머리카락 길이를 같고 신경전을 벌이는 십대들. 마음공부를 몰랐던 예전에는 이발소에 뭐 하러 왔는지를 잊은 손님들 때문에 짜증이 났었다. 헌데 이제는 고개를 숙이건 재끼건 누구처럼 도리도리를 하건 달달 떨어대건 악을 쓰고 울어대건 이 존재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 그리고 각자 모두 영원불멸의 부처라는 경외심이 절로 들어 가위나 바리깡을 든 손에 정성이 담긴다.

그 날, 타일러를 좌우로 돌려가며 멋지게 완성하여 젤을 약간 발라 스타일을 낸 후 거울을 보여주었다. 거울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을 본 그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그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환한 미소가 떠올라 나는 정말 기뻤다. 청년은 팁을 포함해 20달러를 건네고는 고맙다며 떠났고 나는 바닥의 머리카락들을 빗자루로 치우기 시작했다. 미국사람들이 쓰는 빗자루는 아주 기다랗기 때문에 재빨리 사사삭 쓸어 댈 수가 없다. 게으름뱅이들을 위한 빗자루 같다. 성에 차지 않아 벼르고 벼르던 어느 날, 한국마켓에서 빗살의 폭이 넓고 자루는 짧달막한 중국산인 한국식 싸리 빗자루를 사가지고 왔다. 드디어 빠릿빠릿하게 머리카락들을 한방에 깔끔히 쓸어 모을 수 있어 속이 시원했다. 헌데 보스인 제리여사가 살다 살다 이렇게 짧은 빗자루는 첨 본다면서 자기는 집어들 수도 없어 안 되겠다며 며칠 만에 도로 기다란 빗자루로 바꿔버렸다. 큰 몸집을 구부리려니 허리도 아프고 숨도 찼나보다. 빗자루 질은 리차드와 내가 도맡아 해오고 있는데 저건 또 뭔 소린가 싶었다. 그렇다고 카리스마가 넘쳐나는 보스한테 생각이 나는 대로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게으른 빗자루로 머리카락을 쓸어 모으고 있는데 타일러가 이발소 문을 열고 다시 돌아왔다. 뭔 일이냐고 물었더니 팁을 주려고 왔다는 것이었다. 너는 이미 팁을 줬다고 했더니만 팁을 더 주고 싶다며 지갑을 꺼내는 것이었다. 그걸로 충분하니 됐다고 사양을 했지만 카운터에 8불을 더 꺼내놓았다. 나야말로 이발 비를 안 받고 싶었으나 주인이 아니라서 할 수없이 받았는데 팁을 더 주고 싶어 돌아 왔다고 하니 나의 가슴속 한 켠이 물렁해졌다. 손 사레를 쳤으나 완강한 그의 눈빛에 져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그렇게 핸섬해 보인 적이 처음 이었나 보다. 그에게로 가까이 다가가 포근하게 안아주니 내 가슴속에 행복감이 차올랐다.


     

작가의 이전글 설산동자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