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과 50의 대화>
<0과 50의 대화>
0 : 안녕하세요. 저는 신의 손길과 호흡 그리고 두 사람의 만남으로 이제 막 탄생의 준비를 시작하려는 ‘0’입니다.
50 : 반갑습니다. 저는 더 많은 인생을 누리지 못하고 하늘의 부름을 받아 이 곳에 온 ‘50’입니다.
0 : 저는 지금까지는 없다가 사람으로 존재하려니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모든 게 새로워요. 모든 0에게는 인생의 절반 정도를 살고 이 곳으로 오신 50들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50 : 이렇게 늙고, 세상에도 없는 제가 새로운 0에게 답을 드리는 게 혹시나 인생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건 아닌지 조심스러운 마음이 생기지만 이 시간 동안 저와의 대화에서 부디 작은 깨달음이라도 얻어 가실 수 있다면 부족하지만 가장 좋은 대답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0 : '가족'이란 무엇인가요? 제가 두 사람이 만나서 탄생하고 그들과 함께 산다고 들었습니다.
50 : '가족'이란 함께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을 나누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완벽에 가까운 사랑을 배울 수 있는 당신의 울타리죠. 당신이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나게 되면 아마 기쁨이 무엇인지 가장 먼저 알 수 있을 겁니다. 당신의 배냇짓 한 번에도 박수를 치지요. 가족은 서로의 호흡만으로도 기뻐합니다. 세계 최고의 첼리스트가 되지 않아도, 수 천 명의 목숨을 구하는 의사가 되지 않아도 그저 서로가 서로의 곁에 그들 자신으로 있는 것만으로도 기쁨입니다. 아침마다 눈을 뜨고 서로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언제나 행복하지요.
당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것들이 사라질 때 가족은 슬퍼합니다. 소중함에는 크고 작음이 없지요. 당신이 가장 아꼈던 인형을 잃어버려 울 때에도, 당신이 연인과 이별했을 때에도, 당신이 건강을 잃었을 때에도 가족은 슬퍼합니다. 소중함에는 차이가 없다 말씀드렸지만 저처럼 가족 중 누군가 세상에서 사라졌을 때 가족은 가장 슬퍼할 겁니다. 복잡한 인생을 같이 걸어온 가족을 잃어버리는 것은 인생이란 여행에서 지도를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나이의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가족은 서로에게 지혜이자 의지입니다.
즐거움과 노여움도 기쁨과 슬픔처럼 결이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요. 모두 다 설명해 드리기엔 살면서 깨닫는 재미와 아픔이 있어야 사람은 성장하니 0의 성장을 제 대답으로 가로막고 싶진 않습니다. 참! 가끔 다른 0들이 왜 가족을 선택할 수 없냐 묻기도 하는데 제가 신이 아니라 정확한 대답을 드리긴 어렵지만 그것이 사람이 세상에서 사랑을 깨닫는 가장 완벽한 형태이기 때문은 아닐까 조심스레 답해봅니다. 물론 가족을 이루게 하는 배우자는 선택할 수 있지만요. 배우자 선택은 정말 현명해야 해요. 정말! 꼭 기억해요!
0 : 감사합니다. 제가 엄마의 뱃속에서 나가면 해주신 대답들을 다 기억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잘 기억해 볼게요. 가족 다음으로 '친구'라는 말들이 있던데 '친구'란 무엇인가요?
50 : '친구'란 가족 다음으로 가장 자신을 잘 이해해주고 스스럼없이 나 자신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하는 존재지요. 가족은 0이 태어난 순간부터 함께 하지만 친구는 인생을 살면서 만나게 되는 가족입니다. 친구는 가족 다음으로 가깝습니다. 아까 말했던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는 사이죠. 가족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이야기를 털어놓게 하는 상담자이기도 합니다. 서로를 가장 잘 아니까요.
물론 당신과 언제나 함께 하지 못하기에 당신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어 당신과 대화를 하다가 싸울 수도 있고, 화를 낼 수도 있습니다. 가족도 다 알지 못하는 당신을 친구라고 다 알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때론 가장 가까웠던 서로가 영영 안보는 사이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친구를 잃는 것은 나를 바로 보는 거울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나라는 사람은 거울이 없으면 나를 보지 못합니다. 친구가 있어야 지금 내가 어떤 모습인지 보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러니까 친구와는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세요. 내가 먼저 손 내밀고, 먼저 안아주세요. 친구를 잃는 사람들을 볼 때면 참 안타깝습니다.
0 : 친구는 또 다른 가족이란 말씀이신 것 같은데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도 또 가족이 있다는 게 참 신기하네요.
50 :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도 또 가족이 있다는 표현. 참 좋습니다. 저도 돌이켜 보니 친구를 가족과 같이 여겼던 것 같네요.
0 : 친구랑 같이 다니다 보면 서로가 가지고 싶은 것을 말한다고 들었어요. 한 글자였던 것 같은데, 흐음- 모양이 꽤나 특이했습니다. 음- 아! 꿈! '꿈'이었습니다. '꿈'이란 무엇인가요?
50 : 하하! '꿈'이란 글자 특이하게 생겼네요. 꿈이라는 게 모양만큼이나 참 특이하고 특별합니다. 꿈이라는 게 있어도 살 수 있고 없어도 살 수 있는 것이죠. 있으면 목표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으니 삶의 원동력이 됩니다. 하지만 없어도 살 수 있습니다. 삶이라는 것 자체가 살아야 한다는 큰 목표이자 도전이니까요. 그래서 꿈은 빨리 찾아도 되고 늦게 찾아도 됩니다. 숨겨진 보물을 빨리 찾으면 빨리 찾는 대로의 기쁨이 있고 늦게 찾으면 늦게 찾은 만큼 더 큰 희열이 있으니까요.
사람들은 꿈을 두 가지로 나눠서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나는 현실에서 이룰 수 있다 여기고 또 하나는 현실에서 이룰 수 없다 여기죠. 앞에 꿈은 달리면 달릴수록 가까워지기에 현실에서 분명 맞닥뜨릴 수 있는 것이라 말하고 뒤에 꿈은 현실에서 만날 가능성이 아주 적어 헛된 기대라고 손가락질하며 꿈을 가진 사람들을 무시하기도 합니다. 참 알쏭달쏭한 게 꿈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분명 기억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꿈을 뜬구름을 잡는 이야기라며 손가락질하고 혀를 찼지만 끝없이 달려가서 손을 뻗어 구름을 잡아 둥실둥실 자유롭게 뜬구름을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요. 그 사람들의 미소는 지금도 잊히지가 않네요. 눈 뜨고 꿈꾸고 침대에 누워 눈 감고도 꿈을 꿉니다. 이래도 꿈, 저래도 꿈입니다. 참 어렵죠? 꿈이 어려운 만큼 그것을 발견하는 과정 또한 재밌을 겁니다. 그런데 그 꿈이라는 게 직업처럼 세상에 어떤 형태로 존재해서 자신의 밖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꿈의 답, 꿈의 근원은 모두 자신 안에 있습니다. 자신을 잘 들여다보면 꿈이 보여요. 꿈이 없는 사람은 사실 없을 겁니다. 다들 숨기고, 못 찾았을 뿐이지.
0 : 으악! 꿈이라는 게 알면 알수록 복잡한 것 같아요. 지금은 알고 싶지 않아요. 전 그냥 살아가면서 찾을래요. 언제 찾아도 상관없다고 하셨으니까요.
50 : 미안해요. 혼란스럽게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사람들이 꿈 앞에서는 모두들 우왕좌왕하기도 하더라고요. 머리가 더 복잡해지기 전에 꿈 이야기는 이쯤에서도 접어두도록 하죠. 나중에 펼쳐도 충분합니다. 혹시 또 다른 궁금한 건 없나요?
0 : 50과 대화하려고 이 방에 들어오기 전에 다른 0이 떨어뜨리고 간 종이를 주웠는데요. 이 종이에 적힌 '인내'라는 게 뭔가요?
50 : '인내'라... 그게 참 쓴 것인데 또 먹을수록 달더군요. 이 오묘한 맛이 무엇인지는 나중에 알게 될 겁니다. 괴로움과 어려움을 참고 견디는 게 인내입니다. 살다 보면 고통스러운 고난의 순간들이 있을 겁니다. 아직은 괴로움, 어려움 이런 말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사람이 그 순간들을 견디면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더라고요. 훌쩍 커버립니다. 크기 위해서 버텨야 하는 시간이죠. 그런데 사람들이 이 버틴다는 것과 인내를 가끔은 착각해서 꿈쩍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아무것도 안 하기도 하더군요. 그런데 제가 생각하는, 제가 했던 인내는 조금 다릅니다.
예를 들어 아까 말했던 꿈에 빗대어 이야기해볼까요. 누군가가 꿈을 찾고 싶은데 그 꿈이 무엇인지 잘 몰라서 어려움을 겪습니다. 꿈을 찾기 위해 인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꿈이 어디서 뚝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무런 도전도 하지 않고 무얼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겁니다. 그냥 버티고만 있는 겁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더 고통스러울 겁니다. 사람에게 두 다리와 두 팔이 그리고 매 순간 뛰는 심장이 왜 있을까요. 움직이라고 있습니다. 사람은 움직여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이죠. 인내도 같아요.
계속 움직이는 겁니다. 어려운 순간이 와도. 복잡하고 괴로워서 걷기만 해도 아파서 가만히 있고 싶지만 그 아픔들을 지나다니다 보면 조금 덜 아픈 길이 어딘지도 알고 아픔을 덜 느끼는 방법도 알 겁니다. 그러다 보면 자신만의 방법을 찾게 될 거고, 그 여정을 견딘 수고로움도 하늘이 알게 될 겁니다. 인내를 인내했으니 반드시 선물이 주어질 겁니다. 그러니 괴롭고 힘든 순간에 잠시 멈출 수야 있겠지만 계속 걷는 것을 잊지 마세요. 인내는 분명 당신을 더 큰 사람으로 만들 겁니다.
0 : 인내하면서도 계속 움직여야 한다니 이야기만 들어도 피곤할 것 같아요. 아! 어려움, 괴로움, 힘듦. 이런 단어를 말씀하셨는데 이게 아까 말씀하신 '고난' 같은 건가요?
50 : 역시 신은 이 대화의 시간에는 지혜와 세상을 보는 시선을 잠시 열어주신다고 하셨는데 오늘도 역시나 그러셨군요. 네, '고난'은 아픔입니다. 이 고난과 아픔을 지금은 알지 못하겠지만 세상에 나가서 살다 보면 이유 없이 혼자 있고 싶거나, 누군가가 밉거나, 어떤 상황을 너무 피하고 싶거나 자고 일어나면 그냥 내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 드는 순간들이 올 겁니다. 그런데 이 고난을 아까 인내와 함께 보내면 축복이 되는 것을 전 자주 보았습니다. 고난의 순간에는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저도 그랬고요. 그런데 그 고난이 분명 나에게 어떤 모양이든 적어도 한 가지 답은 줍니다. 여러 답을 주기도 하지요. 그 답은 자기 자신만이 압니다. 꼭 답을 얻기 위해선 고난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고난은 미안해서라도 사람에게 답을 반드시 줍니다.
누군가는 쓰러지기에 고난은 모든 사람들에게 찾아갑니다. 누군가를 망가뜨리려는 괘씸한 녀석입니다. 하지만 그 녀석을 만나게 되면 이렇게 말하세요. ‘생각보다 나는 너의 크기보다 크다. 쥘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쥘 수 없을 테고, 모든 걸 엎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어느 한 부분이 조금 들뜨고 흔적이 남을 뿐 쉬이 나는 엎어지지 않는다. 나는 늘 그래 왔다.’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들 앞에서 고난은 무릎을 꿇습니다. 그리곤 당신을 괴롭힌 대가를 내놓을 겁니다. 그게 당신이 이전과는 다른 자존감을 가진 사람이 되든, 바라던 것의 성공을 주든. 분명 무언가를 내어놓을 겁니다. 그러니 고난으로 위장하고 오는 축복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괴로울 순 있으나 직접 눈 앞에서 보면 당신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0 : 네. 꼭 기억할게요. 다른 건 잊어도 이것만을 절대 잊지 않고 싶습니다.
딩- 딩- 딩-
0 : 이게 무슨 소리인가요?
50 : 우리의 대화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나팔소리입니다.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한 가지 질문'을 받을 수 있는 시간뿐일 것 같은데 혹시 물어볼게 더 남았나요?
0 : 음- 제가 물어볼 건 이 정도가 다 인 것 같습니다. 사실 너무 빨리 찾아오고 싶어서 물어볼 걸 제대로 정리하지 않고 와서요.
50 : 그렇다면 이쯤에서 대화를 정리하는 게…….
0 : 아! 잠시만요! 있어요! 50은 하늘의 부름을 받기 전에 무엇을 하셨나요? 그리고 하늘의 부름은 왜 받으신 거죠?
50 : 오- 그 어떤 0도 물어보지 않은 질문이네요. 시간이 없으니 짧게 이야기할게요. 처음 하는 이야기라 제가 잘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저는 부름을 받기 전에 트럭 운전수로 일했습니다. 하늘의 부름은 까만 밤이 조용할 때 있었죠. 달은 참 훤했습니다. 까맣고 까만 밤에 어느 할아버지 한 분이 리어카를 끌고 가시더군요. 밤도 어두운데 굽은 허리를 하시고 무거운 고철덩어리들을 실으시고 겨우겨우 걸음을 떼시면서요. 돌아가신 제 어머니께서 고물상을 하셨거든요. 그 고물상을 들락날락하시던 많은 다른 할아버지들이 생각났습니다. 그 삶의 짐을 지고 오셨다가 다 내려놓으시곤 몇 푼 안 되는 돈을 들고 다시 짐을 찾아 나서시던 할아버지들. 그냥 그런 할아버지들이 생각나서 도와드려야겠다 생각했습니다. 트럭에서 내려 뒤에서 천천히 리어카를 밀어드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날의 달은 어찌나 밝은 지 그 까만 밤에 꼭 누군가를 찾고 싶은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맞은편에서 제멋대로 움직이는 차 한 대가 너무나 빠른 속도로 달려오더군요. 저는 ‘어!’하는 외마디도 지를 새 없이 저 보다 앞에 계신 할아버지 앞으로 달려갔습니다. 할아버지를 보호해야 하니까요. 그렇게 할아버지를 온몸으로 막았고 그 날의 달은 저를 찾고 있었던 것인지 하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0’ 앞에 앉아있네요. 가끔 이 자리에 앉아서 다른 ‘0’들을 기다리면서 생각해봅니다.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길래 이렇게 귀하고 막중한 일들을 감당하고 있는지, 저보다 더 오래 사신 분들이 하셔야 할, 저보다 저 지혜 있는 분들이 하셔야 할 일을 왜 내가 하고 있는 건지. 다른 건 몰라도 제가 참 복이 많은 50입니다. 하! 하!
0 :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50. 저 갑자기 떠오른 건데요. 제 머리에 이런 단어 하나가 스쳐 지나갔어요. ‘죽음’. 뭔가 제가 앞으로 겪어야 할 삶과는 정반대에 있는 것 같은데, 그 모든 삶이 결국 어떤 죽음을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저 그렇게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50 : 아니 아직 세상에 있지도 않은 0인데 벌써 ‘죽음’이라니요. 너무 성급한 거 아닙니까? 하하! 절대 0을 나무라는 소리는 아닙니다. 칭찬입니다. 칭찬! 이런 0에게 나 같은 50은 너무 부족하네요. 그리고 미안합니다. 전 삶을 50까지 밖에 살지 않아서 새롭게 시작하는 0에게 50까지 제가 깨달은 작은 지혜 밖에 설명하지 못합니다. 우리 모든 50들이 늘 미안한 마음이죠. 더 많은 걸 알려주고 싶어도 그러지 못해요. 미안합니다.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오늘 0에게만 말해줄게요. 0의 50까지는 우리 50들이 알려준 지혜대로 그리고 삶에서 경험한 것들을 적절히 섞어 살 수 있어요. 그 50을 맞이하고 다시 새로운 50을 맞이하는 순간 그때부터는 0이 가진 그 이름 세 글자가 겪고 깨달은 지혜로 살아갈 겁니다. 그 누구도 아닌 당신만의 아름다운 지혜로요. 누가 알려주지도 않은 지혜. 세상에 내려가면 50은 ‘지천명(知天命)’이라 불립니다. ‘하늘의 명을 깨닫는다’는 뜻이죠. 당신의 지혜가 곧 하늘의 지혜, 하늘의 지혜가 곧 당신의 지혜가 될 겁니다.
제가 이 자리에 앉아서 보니 50이 둘로 나뉘더군요. 저같이 이 곳에 올라와 지혜를 알리는 자와 땅에서 지혜를 알리는 자로요. 그리고 여기에 있는 50은 땅에 있는 지혜로운 50들의 새로운 50년을 보고 이 곳을 찾아오는 ‘0’들에게 지혜를 알립니다. 세상에 나가서 꼭 전해주세요. 여기 있는 50들이 거기에 있는 50들에게 정말 고맙다고. 50에서 새롭게 다시 시작하며 살아갈 그 50년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고요. 당신들의 지혜를 존경한다고요. 당신들의 다시 시작된 50은 절대 낡은 것이 아닌 새로운 50이라고요.
딩-딩-딩-
0 : 왜 또 울리죠 50?
50 : 아, 이제 정말 가야 할 시간입니다. 제가 말이 너무 많았죠. 이런 질문을 한 0은 처음이라 너무 신나서 길게 말했어요. 이제 어서 가세요. 세상으로 가야 합니다. 어떤 두 사람 사이에 가야 하는지는 알고 있죠? 잊지 말고 잘 가서 꼭 그들의 기쁨이 되길 바라요. ‘0’, 당신의 삶이 참 궁금해집니다. 잘 가요- 그리고 꼭 나중에 다시 만나요. 당신을 꼭 만나고 싶어요.
0 : 네! 알겠습니다. 저도 꼭 다시 만나고 싶어요. 꼭 만나야 해요 우리! 전 그럼 이만 가볼게요! 안녕히 계세요!
0은 떠났고 모습이 점점 작아졌다. 멀어질수록 세상에서 점점 크게 보여질 것이다. 그런 0에게 50이 큰 소리로 말했다.
50 :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 사랑하세요! 그럼 분명 자유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