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아직까지 롱패딩을 입은 적이 없다. 강경 얼죽코주의자도 아니다. 다만 열이 많아진 것 같다. 사람들이 춥지 않냐고 물을 때마다 말한다. “오늘 그렇게 춥지 않은 거 같은데”. 그리고 사족 하나가 붙는다. “역류성 식도염이 있어서 그런가 봐”. 이 말도 안 되는 희한한 상관관계는 매우 밀접하게 붙어있다. 한 달 전 과식을 한 이후로 오랜만에 역류성 식도염으로 지금까지 고생 중이다. 역류성 식도염이 생기면 가슴 부분이 타들어갈 것 같다.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잔잔한 미열이 남아있다. 카페인이 들어가면 증세가 조금 심해진다. 그 미열 덕에 심지어 덥다. 버스에서도 혼자 더워서 힘든 적이 몇 년 전엔 자주 있었다.
이 성가신 증상이 겨울에 나타나니 적당히 체온을 보존시켜 준다. 오늘은 한 정거장 전에 내려 집에 걸어왔다. ‘생각보다 안 춥네. 역류성 식도염이 장점도 있구먼!’하면서. 내게 이번 겨울은 덜 춥다. 내일 한파에도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당장 롱패딩을 꺼내 병원에 가는 나를 떠올린다. “아, 역시 롱패딩만 한 게 없어”.
영원히 나쁜 게 없다.
불편함을 주는 식도염에 이점도 있다니.
물론 불편하지.
뭐- 내 인생도 그렇지 않겠어? 영원히 이대로 일리가 없잖아. 늘 보던 것도 새로워 보일 수 있지.
매일을 똑같이 살아가고 있지만 어떤 상황을 맞닥뜨리냐에 따라 생각도 못했던 세계가 열릴 수도 있겠지.
체제의 혁명을 일으키는 체 게베라는 아니어도 매일 잘 체하는 나는 만약 어떤 세계가 내게로 밀려들 때
잘 소화해 낼 수 있을까. 익숙함에서도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을까. 미열을 만드는 불편함을 새롭게 감각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