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후기 : 파마머리 컬링이 리드미컬해요

by 주명


뽀글거리는 파마를 했다. 누가 보면 히스테리컬한 스타일이라고 하려나? 뽀글거림이 맘에 들어서 자연적으로 마르게 방치해뒀다가 차가운 바람이 나오는 드라이어로 말리고 컬크림까지 열심히 바른다. 저녁에 머리를 감는 나는 아침에는 웻오일까지 발라준다. 머리칼을 아래에서 위로 꽉 쥐어잡고 컬이 쳐지지 않도록 한다. 손가락을 머리카락 사이에 넣고 머리를 돌돌 만다. 뜨거운 바람으로 빨리 말리고 쉬기 좋아하는 게으른 나는 스타일과 컬링을 유지하기 위해 정성을 다해 머리를 모시고 있다.


나의 단발 역사는 15년이 넘었다. 대학생 시절 미용실 원장님과 소통이 잘못돼서 내가 원했던 길이보다 짧아졌는데 이게 웬걸- 잘 어울렸다. 내 또래들은 여고생이면 모두가 긴 머리를 했고, 스무 살이 되면 그 긴 머리에 파마를 했다. 어울리든 말든 긴 머리 파마는 3월에 대학생이 되는 여자의 신분증이었다. 파마를 하진 않았지만 나도 긴 머리를 고수했다. 어울리는 게 뭔지 모르고 다들 그렇게 했으니까.


그 우연한 헤어컷이 내 정체성이 되었다. 짧을수록, 조금 빠글거릴수록 나를 잘 드러낸다. 목이 짧아서인지 얼굴이 커서인지 목뒤로 머리카락이 보이지 않을수록 예쁘다. 청순한 여성과는 거리가 멀어졌지만 나와 가까워진다. 걸을 때마다 통통 튀는 컬. 덕분에 마음도 통통 튄다. 나도 리드미컬하게 살고 싶다.


인생에 리듬감이 생기면 겨울 찬바람도 그저 움츠리게 만드는 한기가 아니라, 상쾌함으로 바뀐다.


감기가 4주째 떨어지지 않아 기침을 달고 산다. 독감도 코로나도 아닌데 지독히도 안 떨어진다. 토요일마다 집 앞 병원에 간다. 오늘도 원장님이 토요일에 또 왔다고 웃었다. 평일에 병원 가기란 직장인에겐 쉽지 않은걸요. 어차피 집 앞 병원이라 가지 못한다. 그런데 이 병원은 매일 오후 1시에 문을 닫는다. 그럼 동네 사람들은 어느 병원을 가야 하나요.


입을 아- 하고 벌린다. 이제 목도 빨갛게 부어있지 않고 감기도 아닌 거 같다 하셨다. 기침은 왜 자꾸 나죠 선생님?


병원이 코앞이라 5분도 안 걸리는 그 짧은 거리를 이른 아침에 걸어갈 때마다 추위는 늘 내게 상쾌하다. 주말 아침에 걸으면 묘하게 기분이 들뜬다. 아파서 가는 병원인데도 뿌듯하기까지 하다.


아무도 만나지 않을 건데 아침부터 헤어 에센스와 웻오일을 발랐다. 통통 튀는 머리를 하고선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녀왔다. 주말이다. 그리고 흔하지 않은 긴 명절 연휴의 시작이다. 가려던 해외여행은 취소됐고, 당했다 하자. 국내 여행도 기차표와 버스표는 다 매진이다. 한국에서 살아남기란 쉽지 않다.


자극적인 삶을 잠시 내려놓고 차분히, 집중하며 요즘의 나를 앞으로의 나를 들여다보기로 한다.


기차표는 매진이라도, 나는 계속 달려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