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땅에 헤딩

by 주명


최근에 좋아하는 언니 두 명을 만났다. 한 명은 초등학생 시절부터 알았고, 한 명은 대학생이 된 후로 만났다.

초등학생 시절에 알았던 언니는 피아노 개인 레슨을 하는 프리랜서고, 한 명은 대형카페 사장님이 된 지 두 달이 넘었다.


피아노를 전공했지만 영어유치원에서 부원장으로 일하며 급기야 갓난아이는 물론이고, 원장님이 데려온 리트리버 대소변까지 치우는 일에 현실을 자각하곤 전공이었던 피아노를 다시 하기 위해 레슨을 시작했다는 언니를 금요일에 만났다. 누구나 그렇듯 계획한 일을 시작하기란 어렵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일은 대범함도 필요하지만, 강인해져야 하는 만큼 마음이 애달아야 하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최초의 레슨생 한 명을 구하는 게 힘들었다고 했다. 그 막막함을 뚫고 이제는 가장 안정기에 들어섰다고 했다. 유치원에서 일하면서도 유치원생을 레슨 하기도 하고, 외부에서도 개인 레슨을 진행했지만 4년간 영어유치원의 생활은 피아노와 떨어질 수밖에는 삶이었다. 사랑하는 일에 완벽히 집중할 수 없을 땐 발목을 붙잡는 현실을 차버리고 대담히 뒤돌아서야 한다.


사장님이 된 언니는 내가 20대 초반이었을 때 만났는데 내 주변 사람 중 가장 힙했다. 그래서 언니가 좋았고 닮고 싶었다. 작은 소품 하나도 남들과 다른 걸 썼고, 옷도 또래와 다르게 입었고 해외에도 자주 나갔었다. 그러나 내 기억 속 언니의 첫 직장은 대기업이었다.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일하기도 했고, 호텔에서 베이커리 카페 매니저를 하기도 했다. 언니는 오랫동안 카페를 열기 위해 한 걸음씩 오래도록 걸어왔다. 그리곤 2년여간의 준비로 세종에 대형카페를 세웠고 이미 그 지역에선 사람들이 알만큼 아는 카페가 됐다. 피아노 언니를 만난 다음 날인 토요일에 동생과 함께 다녀왔다. 감각을 일깨워 주는 공간을 좋아하는 우리 자매는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마음을 빼앗겼다. 카페는 또 다른 언니의 모습이었다. 공간, 소품, 판매하는 굿즈, 유리창까지도 언니를 보여주고 있었다. 집과 가까운 곳이라면 자주 오고 싶은 카페였다. 아직은 매장을 벗어나는 게 걱정되어 바삐 움직이는 언니를 몰래몰래 찍어두었다.


두 언니를 연달아 만나며 떠오른 표현이 있다.

“맨땅에 헤딩”.


무작정 들이대는 정신이라기보단 아무런 지식과 경험도 없는 상황이라도 한 걸음을 떼고 보는 용기라 말하고 싶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길을 걷는 건 쉽고 편하다. 길을 만들어 걸어야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노력이 필요하고, 시간을 들여야 하고, 구체적인 계획과 창의적 접근이 필요하다. 각자가 원하는 지점에 도착하기 위해 적게는 4년을, 또 10년 이상의 시간을 들였다. 꿈은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가만히 앉아 기도한다고 되지 않으며 갑자기 조력자가 하늘에서 떨어지지도 않는다. 재능이 한순간에 큰 힘을 발휘하지도 못하고, 자고 일어나면 통장에 거금이 입금되어 있지도 않다.

어디로 어떻게 길을 내야 하는지 정도만 잊지 않고 기억하며 매일을 나서야 꿈으로 걸어갈 수 있다. 꿈은 설계 도면이 만들어져 있지 않고 하루하루 부딪히며 직접 그려야 한다.


언니들을 보며 내가 쌓아온 것은 무엇인지 돌아본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해맑게 웃으며 ‘언젠가는 하겠지’하며 넋을 놓고 있다. 자꾸 어떤 사람이 길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며(내라며) 다독인다.(협박한다). 그 사람의 표현을 빌리자면 ‘주책이라는 핀잔을 듣고서라도, 주접도 이제 식상하고 지겨우니 세상에 결론을 내놓으라’ 한다.


몇 번 그 말을 듣고 나니 올해의 끝에 “결국 해버리고 말았다.”라는 문장 한 줄을 써내야만 하는 숙제를 받은 학생이 됐다. 짐을 짊어졌지만 젊어졌다. 자꾸 같은 소리를 하는 걸 보면, 그 사람도 그 사람이지만 다른 누군가가 내게 보내는 신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거창하고 원대한 마음은 없다. 시작해서 결론을 완성하는 자체가 내게 고작 한 걸음이니까.


켜켜이 쌓아두고 들춰보지 않았던 조각들을 꺼내야 봐야겠다. 그림 실력이 젬병이니 설계도를 그릴 순 없을 테고 이어 붙이기 정도는 해볼 만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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