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정도 쓰고 싶은 글을 쓰지 않고, 써야만 하는 글을 쓰고 살았다. 불의를 보면 불 같아지는 아빠와 동생을 볼 때마다 왜 이리 흥분하냐며 침착하라 했던 나 자신을 떠올린다. 그리고 끄덕이게 된다. ‘아, 나도 같은 성씨를 공유하는 사람이구나‘하고.
사람은 모두 다 자기가 선택한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본다. 흔히들 세계관이라 부르는 자신만의 관점으로 눈에 보이는 것을 인식하고 판단한다.
한동안 분노했다. 그 이유는 분명 같은 세계관을 선택했지만 세계관의 주인공이 되지 않고 누가 봐도 빌런인 역할을 자처하고 있길래 처단하고 싶었다. 웃기지 나도. 무슨 영웅이라도 된 마냥.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최선을 다해 연신 글로 휘두르고 다녔다.
당신은 눈앞에 상대가 나를 찌르러 뛰어오고 있는데 가만히 있을 건가? 도망을 가든, 맞서 싸우든 움직이겠지. 가만히 서 있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처음엔 내가 선택한 세계관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희한하게 보일까 눈치도 보였다. 광신도처럼 여길까 생각했지만 쓰다 보니 내가 선택한 세계관의 본질은 그 누가 보아도 ‘선’이라 부끄러울 것이 없었다. 상식으로 생각해도 어불성설인 것에 대해 비판하는 건 창피한 일이 아님을 확신했기에. 내가 봐도 완벽주의라 여기는 나는 확신이 없으면 잘 행동하지 않는 편이다. 다른 세계관의 사람들이 어떻게 판단하든, 같은 세계관의 사람들 모두가 공유하는 '상식'에 대한 어긋남이라 움직였다. 신념이 아니고. 모든 악은 그릇된 믿음에서 나온다.
선은 올바름이다. 세상은 자꾸 올바른 일을 희롱한다. 바름을 부끄러움으로 치환시켜 말하지 못하게 만들고, 세상을 어긋나게 만든다. 악의 공식을 들이밀어 선으로 답을 내지 못하게 하는 세상.
내가 선택한 이 세계관에도 악이 여전히 존재함을 또 보게 되었다. 그게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느낌표를 머리 위에 띄운다. 영웅은 악이 있어야만 선이 된다. 아무런 악도 없는 세상에 서 있는 영웅은 선이 될 수 없다.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선이라지만, 현실은 자꾸 비교하길 좋아하니까.
그래서 이 세상이 악하다. 그리고 악해야 한다. 악해야만 선이 드러난다. 사람들은 영화의 주인공과 빌런은 기억하지만 지나가는 엑스트라에 대해선 기억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도 영화를 구성하는 중요한 존재다. 지나가는 그들의 평안한 삶을 위해서라도 선은 계속 악과 싸워야 한다. 세상이라는 영화가 그렇다.
보이는 세계를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 또한 조금은 더 볼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보이지 않아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알 수 없으면 알려주는 게 더 많은 눈을 가진 사람의 숙제다. 괜히 더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 풀어내 알려야 하지 않을까. 나는 세상을 일깨우는 선지자도, 변혁을 이끄는 혁명가도 아니다. 그냥 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연신 힘을 주어 말했던 이유는 내가 살고 있는 이 일상을 살아내기 위해서였다. 내 주변만큼은 정오의 해 같이 빛나게 하고 싶었다. 밝게 살고 싶었다. 그리고 다른 곳을 둘러보니 나와 같은 세계관을 살고 있는 사람들도 노력해서 주위를 빛내고 있는 걸 보았다.
애써서 빛이 되려 수고하는 사람들을 보는 요즘이다. 신기한 건 빛 비스무리한 소리를 내니, 숨어 있던 빛들이 인사를 건네왔다.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고 지내왔던 사람들이 연락을 해온다. 그렇게 빛으로 모여 조금씩 어두움을 몰아 내고 있다.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은 볼 수 없다 해도,
보이는 숫자가 말해주고 있지 않나.
그래서 난 적어도 내가 선택한 세계관이
절대 무너지게 하고 싶지 않다.
나아가 더 확장되길 소망한다.
그게 우릴 선택해 각자의 자리로 부르신 이유다.
부르신 이가 말씀하셨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세상의 소금이니라”
#STOPTHESTE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