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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타국에서 살았어

by 주명



한동안 정치를 빼곤 말할 수 없는 ‘신앙과 세계관’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사람들은 그저 정치 이야기하는 줄 안다.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길 소망하고 기도하면서 왜 유독 정치만은 예외로 두는지 조금 이해되지 않는다. 아니, 많이.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가자면서, 하나님 나라의 현실인 대한민국을 다스리는 정치에 대해선 침묵하는 신앙. 많은 목회자들의 어둠을 마주하게 됐다.


그러니 이럴 수밖에. 이 대한민국에 태어난 게 우리에게 그저 랜덤의 결과냐 묻고 싶다. 이건 무작위가 아니고 나 하나를 지목하신 하나님의 부르심이다.

정교분리의 원칙을 이야기하던데 정치가 신앙에 개입할 수 없다는 뜻이다. 반대가 아니고. 자꾸 비겁하게 숨으려는 자들이 많다. 사실, 알고도 숨는게 아니라 모르는 자들이 더 많다.


세상의 비열함과 부조리가 나 한 사람의 자유를 건들 수 없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우리를 한 사람, 한 사람 교회로 부르셨다. 한동안 그 영역을 들여다보니 꽤 영의 세계라는 걸 느꼈다. 사상과 체제로 이어지는 종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할 말이야 많지만 쓰다 보면 또 흥분되기 마련이다. 동생이 왜 자꾸 흥분하냐는데 엄마가 그랬다.

“나도 그랬어. 흥분할 수밖에 없는 시기를 거쳐야 해”.

세상의 악함이 분명 악의 세력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드러났어도 세상이 떠들썩하지 않다는 사실에 허탈하고 어이없다. 아름다운 세상은 분열되어 있다. 나는 이런 혼란 속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이 혼란은 알곡과 가라지를 가르는

하나님의 허락이다.

왜 자꾸 세상이 반대로 가고 있는지를 애써서 보지 않는 자와, 너무 많은 부조리가 보이지 않는 자들과 함께 사는 이곳이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세상이다. 자유에 무임 승차하려는 사람들이 싫다는 사람들의 글을 보며 나 또한 무지로 인해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어준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분노의 이유를 이제 정확히 알겠다.

이 사태에서 ‘믿음’으로 구원받기에 하나님을 믿는다는 확신만 있으면 이 땅에서 어떤 신념으로 살든 구원받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그들이 미웠다. 싫었다. 그러나 그 믿음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착각’이며, 만들어낸 믿음이라면 구원이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 또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

늘 깨어있어야 한다.

동생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결론에 이른다.

누구도 믿지 말자. 의심하자.

그리고 오직 우리의 영원한 답인

‘하나님’만을 의지하자.

공의의 하나님을 떠올린다. 사랑의 하나님을 떠올린다.

공의가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고,

사랑이 없는 공의는 공의가 아니다.

온전하고 영원한 답이신 하나님 한 분을

더 경외해야 함을 깨닫는다.

변치 않는 진리.

나 하나의 개성과 자유가 중요하다고 여겨왔던 난데 그 자유가 나라가 어지러워지면 보장받을 수 없음을, 개인의 삶이 국가의 보호 아래 있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날 위해서도 잘 기도하지 않던 나는 요즘 눈을 뜨면 나라를 위한 기도를 하고 하루를 시작한다.

믿음이라 생각해 오던 내 믿음도 하나님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기 전에 더욱 깨어나, 애써 세상과 더욱 반대로 걸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나의 두려움에 엄마가 이런 말을 했다.


요셉도, 다니엘도 다 타국에서 살았어.

열심히.

믿음 안에서.

오케이?


나의 삶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것을 늘 기억하는 내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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