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여름, 완주>를 읽고
내 인생에 완주의 투명한 여름빛을 포개둔다.
그것만으로도 내 여름은 빛날 수 있겠다.
내가 좋아하는 여름이
누구에겐 슬픔의 기억이 될 수 있겠구나.
그럼에도 그들은 각자의 생을 천천히 완주하기로 했다.
+)책을 다 읽고 난 뒤 예술에 대해 생각했다.
난 예술은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는 작업이라 생각한다.
지금의 예술은 시각적인 것은 물론이고 정서적, 정신적 폭력을 가한다. 언제부터 아름다움은 거들떠 보고 싶지 않은 것이 되었나.
괴이하고 음습해야 예술의 본질이라 생각하는 이상한 시대. 죽음은 게임에 뛰어든 패배자의 결과고, 폭력은 정의가 되었다. 금지된 사랑은 세기의 사랑이고, 왜곡된 사상은 다양성이 되었다. 옳음은 작품의 언저리에 두며 잠시 지나가는 엑스트라쯤 되었다.
권위 있는 상을 받은 근래의 예술 작품 중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작품은 드물다. 예술이어서 수상한 것이 아니고 예술이라 강요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예술이라 착각할 테니.세상은 예술로 때론 어두워진다. 사람을 어둡게 하기 위해 예술을 사용하기까지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파괴는 예술이 아니다.
미안하지만, 원래 예술은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인간의 활동을 뜻한다.
예술은 상실 속에서도 사랑을 발견하는 노력이고, 인간의 상상력이 더해진 허구의 결과라도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진리여야 한다는 게 내 주관이다.
다시 들춰 보고파야 한다.
당신도 그런 아름다운 예술을 좋아하지 않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기도 인생은 짧다.
마지막으로 읽은 소설은 <첫 여름, 완주>를 기점으로 18번째 전 책일 만큼 소설을 잘 읽지 않는 나는 오직 지은이와 펴낸이의 유명세, 제목에 여름이 들어갔다는 이유로 이 책을 선택했다.
소설은 때론 내가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마치 내가 겪었던 과거의 일처럼 만들어 온 마음을 뒤집는다.
오랜만에 마음이 꿀렁였다. 희망 비슷한 물결로.
상(prize)이 아니라
마음에 맺혀지는 상(image)이
내 마음을 흔들 때 예술이 된다.
예술의 끝엔 이전보다 나은 사람이 된 듯한 감정이라도 일어야 한다. 그래서 더 좋은 사람이 되고픈 소망이 남아 있어야 한다.
아니, 쉽게 말해 기분이 좋아야 하지 않나.
예술이 사람이라면
밝은 사람보다, 어두운 사람이 곁에 있길 바라나?
어두운 사람이길 바란다면 할 말은 없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