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

by 주명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읽으며 부산행 기차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있다. 의자에 기대서 모든 걸 뉘고 싶지만 기대서 하는 독서는 불편하다. 밑줄을 그어야 하니까.


가만히 앉아 구름의 이동을 본다. 구름의 이동보다 내가 더 빠르긴 하지만. 날씨 운이 유독 여행에서 빛을 발하지 못하는 나는 이번 여행만큼은 비가 오는 동네를 뒤로 한 채 지도의 아래로 내려올수록 화창한 하늘을 볼 수 있었다. 구름도 조금 더 입체적이다. 하늘이 낮아 보인다. 가을이 가까워진 줄 알았는데 나를 향해 허리를 숙인 하늘을 보니 높아진 하늘을 가진 가을은 이리로 올 채비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나는 여름을 좋아하니까. 좋아하는 게 멀리 사라지는 건 유쾌한 일은 아니잖아.


올해 처음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래서 설렌다. 설렘에 비해 딱히 정해진 계획은 없다. 많이 가본 도시라는 핑계와 사실은 설레면서도 그냥 그런 마음이었다는 이유로 계획을 크게 안 짰다.


차창 곁에 앉으면 오직 시골만 보인다. 회색도시는 편안하지만 시골은 평안하다. 펼쳐져 있는 초록을 보는 건 마음을 달래기에 가장 좋은 치료법이다. 산등성이 제각기 다른 높낮이는 풍경의 다채로움과 함께 자칫 끝없기만 한 하늘에 굴곡을 준다. 지루할 틈을 차단해버리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지나온 모든 풍경은 늘 새롭다.


여행은 언제나 새롭다. 즐겁다. 재미있다. 신난다. 그리고 때로 울컥한다. 별 눈물 나올 것 같지도 않은 문장에 순간 울컥했다. 여행은 종종 내게 잠들어 있는 눈물을 깨운다.


잠깐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작은 연못인지, 천인지 수면에 하늘이 비쳐 보였다. 멀리 있다고 느껴지는 것, 높이 있어서 가까이할 수 없다 느끼게 하는 것조차 어쩌면 가장 낮은 곳에 가까이 있는지 모른다.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면.


잠시 경주역에서 열차가 다른 역보다 긴 시간 정차했다. 시간이라 말하기엔 몇 초나 일 분 정도였지만. 플랫폼엔 다른 도시보다 외국인이 많았다. 가장 한국다움을 느낄 수 있는 도시. 동생에게 가을에는 경주에 가자는 메시지를 보냈다.


잠시 멈춘 열차는 다시 떠난다. 내가 가고 싶은 바다를 향해. 모든 결국은 다 도착점이 있고, 제자리가 있다.


세어보니 10번째 방문하는 부산인 듯하다. 첫날은 너른 바다를 한참 보겠다는 다짐은 없다. 너무 자주 가서 작은 동네를 가보기로 했으니까. 도착하기까지 16분 남았다. 어떤 기다림은 초조하지만 여행의 기다림은 언제나 마음이 간지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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