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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첫눈 내린 다음날

by 주명


남들 보기에 참하고 차분해 보일지 몰라도, 그들이 모르는 내가 있다. 사실 나는 조금, 아주 조금 정상에서 벗어나 있는 비정상까지는 아니지만 이상한 사람이다. 난 알아. 그게 내 정체성이다. 아닌 척하며 살지만 이상함이 나를 여기까지 끌고 왔으니 어느 정도 증명이 된 사실 아닐는지. 아 혹시 남들도 내가 이상한 걸 아는 건가? 이상함은 내 마음의 기민함이며, 예민함일 것이다. 신경질은 아니고. 사람들은 신경질 내는 걸 예민함으로 포장하더라고. 그건 그냥 예의가 없는 거다. 진짜 예민함은 숨죽이고 섬세하게 날을 다듬어 최후에 모든 걸 제압할 힘을 가졌다.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며, 누구나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힘. 그럼, 예민함이 아니고 예민힘인가.

버킷리스트라 여겼던 것을 난 전혀 해낼 줄 몰랐다. 희한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에 홀린 게 분명하다. 뭐 남들 보기엔 별거 아닌 일이겠지만 나를 내가 알잖나. 왜 했을까. 왜 해냈을까. 생각보다 소원을 빨리 이루니, 또 다른 계단을 탐색하고 있다. 마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 만난 꿈 앞에서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 굳이 계단을 찾는 판국이다. 또다시 근육을 키워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한다면 내가 목표한 것보다 2년이나 빨라진 성취가 있으니, 또다시 2년을 단축시킬 만한, 아니 더 빠른 시일 내에 무언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어쩌면 기다리지 않는지도 모른다. 기다리고 있다 믿으며 걸어가는 거지. 제 멋에 취해 사는 인생. 멋에 좀 취하면 어떤가. 제 멋이야말로 자신을 사랑하는 방편이 되기도 하니까. ​

누구보다 무탈하게 살길 원하지만 감각만은 무뎌지지 않고 싶은 게 내 열망이다. 뾰족하게 다듬어서 단번에 원하는 그라운드에 꽂아야지. 원하는 그라운드가 뭐냐고? 없다. 나도 몰라.

나도 모르는 내가 또 무언가 하고 있길 소망한다. 느려도 돼. 난 늘 느릿하게 끓으니까. 희미하고 잔잔하지만 나를 흔드는 직관을 조심스레 따라간다. 감각을 세운다. 날을 세운다.

꾸준히 하는 것 자체가 재능이라며? 나도 몰랐는데 난 꾸준히 쓰고 있었더라. 그걸 인지하며 살았던 것도, 엄청나게 욕심을 낸 던 것도 아닌데 조금씩 걸어갔더니 꿈을 이루게 해줄 재능이 된 것 같아. 나도 모르는 힘이 나를 이끌었고 밀어주었겠지. 아, 결국 내가 한 것은 없구나. 당신의 부르심 같은 일이었을까. 당신의 대답은 어떤 모양으로 내 삶에 펼쳐질지 궁금한 오늘은 첫눈 내린 다음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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