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덮는 사람(All over the map)

by 주명


몇 년을 걸쳐 쌓아 올린 취향은 때론 도피처가 된다. 켜켜이 쌓아 올린 시간을 통해 온전히 숨어들 곳을 마련한다. 그래서 취미는 자아의 안식처가 되기도 한다. 시간의 누적이 이뤄낸 도피성.


마음이 이끄는 곳을 따라가는 일은, 나만을 위한 치유를 모색하는 무의식적인 방법이다. 내 스트레스를 받아낸다는 이유로 몰입했던 관심의 영역, 특히 내게 글쓰기라는 취미는 완벽한 주치의였을 것이다. 내 생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생각의 염증 크기를 줄여주는 유일한 방도였달까.


감성이 ‘돈’이었다면 나는 이미 부자 소리를 듣는 사람이 되었을까. 보이지 않은 감성은 물성으로 환원할 수가 없다. 책을 만들고 사진을 찍어 ‘기록’이라는 단어로 슬쩍 대치하려 하지만, 무언가를 생산하는 내 시도가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편편한 글자와 이미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을까. 그걸 창조적 자세라는 ‘허울’로 시답잖은 내 취미를 꾸미고 있는 건 아닐까. 나만의 만족을 위해 내 안에서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는 내 취향과 감성이 과연 내 삶에 실질적 도움이 될까? 기록이 자본이 될까?


이 회의적인 물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결국은 나를 위한 자산이 되길 바라는 창과 방패를 둘러메고, 오늘도 살아간다. 내 자취가 내게 이익을 가져다주길 바라는 걸 보니, 난 완벽히 감성적인 사람은 아닌가 보다. 욕망의 주머니를 늘어뜨리면서 누구보다 순수하게 비치기 원하는 나는 참 종잡을 수 없는 인간이다.


‘종잡을 수 없다’는 말의 어원을 검색해 보니 “all over the map”이라는 영문 표현이 나온다. ‘일관성 없는, 중구난방으로 정리가 안된 생각’, ‘산만하고, 혼란스러운’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 나는 온 지구를 덮고도 남을 만큼의 범지구적 인간이다.


이 세상을 다 덮고도 남을 사유를 하는 사람. 사색의 지도를 펼쳐가는 사람. 너무나 거대해서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려나.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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