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내 마음 조각

by 주명


지극히 평범하고 평범한 어떤 이들의 일상이 내게는 없는 조각과도 같아서 마치 마음먹고 영화관에 가서 봐야 하는 영화의 명장면처럼 느껴진다. 너무나 무난해서 고개 돌리면 바로 보여 넷플릭스에 차고 넘치는 흔한 장면 같을지라도.

내 인생엔 분명 연출될 수 없는 장면들이 있을까. 내게는 절대 들어오지 않을 배역이 있을까. 아무리 너라는 사람이 왜 연애를 안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을 자주 들어와도, 그건 분명 어떤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이유를 알 것 같기도,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기도. 늘 혼자인 삶의 바다에 젖어들어 수면 밖의 목소리를 듣고 있지 못하는 걸까. 에라이 몰라.

크리스마스 점심 식사를 하는데 하얀 눈이 내렸다. 큰 덩어리의 눈송이는 온 세상을 휘젓다가 내리쬐는 빛에 사라졌다. 화창한 오후의 하늘을 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도로를 떼 지어 뒹구는 낙엽을 보았다. 갈색 낙엽은 마치 거대한 메뚜기 같아 보여 나는 재난 영화의 한 장면을 통과하는 기분이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날씨와 계절감을 느끼게 하는 장면을 보며 인생도 언제나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걸 신은 내게 보여주었다. 돌이켜 보면 삶의 관람객인 순간이 참 많겠다.

가끔 AI에게 내 문장이 어떠냐고 물어볼 때가 있는데 논리적 전개가 부족하거나, 연결이 느슨하다고 평할 때가 있다. 그러면 부족한 부분을 다듬어 다시 물어보곤 한다. 완벽한 문장 전개는 될 수 있으나 그럴 때마다 생각하는 것은, “니가 뭔데”. 어차피 내가 쓰는 글은 나만 알면 되는 거 아닌가. 실상은 모두에게 보이는 글이지만, 나만이 읽고, 나만이 유추하는 여백이 있어야 ‘내 글’ 아닌가. 타인은 전혀 읽을 수 없는 투명한 글자가 내 눈에는 보이고, 내 마음에 새겨진다.

제목을 나중에 정하는 나는, 오늘 이런 제목을 먼저 쓰고 싶었다. AI가 평하듯 연결성이 약해 이 산을, 저 산을 넘나드는 글처럼 보인다면 이 글은 긴 호흡으로 읽혀야 하는 문장이 아니고 조각으로 칭해버리면 되니까. 크리스마스에 나는 글을 쓰고 싶지 않았고, 조각을 새기고 싶었다.

영화는 각본의 흐름대로 촬영하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을 먼저 찍을 때가 있고, 첫 장면을 나중에 찍을 때가 있다. 신의 순서가 뒤죽박죽이라 찍는 배우조차 어떤 장면일지 예상하지 못할 때가 있지 않은가. 결국, 모든 편집에서 영화가 완성된다. 끝에 가서야 정리가 된다.

내 생각이, 내가 써 내려가는 글이, 내가 살아가는 인생이 누가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장면이거나, 앞뒤 순서가 맞지 않거나, 공백이 많아도 상관이 없겠다. 흐름이 이어지지 않아도 괜찮겠다. 그러나 가장 마지막에 모든 장면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하나. 가장 마지막에 가서야 완결될 테니.

내일이 바람이 어디로 불지 아무도 모른다.

조각난 내 마음이 어디에 가서 붙어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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