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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용회 Sep 06. 2024

촌것 한양 도성 길을 걷다 (1)

나는 촌놈이다. 2000년에 서울에 왔으니 서울 생활 24년 차이다. 중년에 인사이동으로 왔지만 그 동안 회사와 집 그리고 출퇴근길이 서울생활 거의 전부였었다. 서울은 나에게 늘 낯설었다. 회사와 집을 벗어나게 되면 내가 의존하는 것은 스마트폰 앱 길 찾기이다. 서울 길은 내 머리에 개념화된 디지털 정보뿐이다. 집을 나오게 되면 도로정체, 주차 등 돌발 변수로 운전에 자신이 없어 지하철에서의 최적 시간과 환승역 그리고 도착역 몇 번 출구에서 도보로 얼마 소요될 것인지 확인한다. 실공간 경험이 없는 정보는 잘 기억되지도 않아 같은 수고를 반복하고 있다.   

      

서울 첫걸음은 중2 학년 수학여행을 왔었다. 아침에 부산역에서 기차를 탔는데 저녁 시간에 서울역에 도착하여 처음 지하철을 타고 여관으로 갔었다. 올해가 서울지하철 50주년, 그 당시 막 개통한 지하철 1호선이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이렇게 기억함은 체험 충격이 꽤 크기 때문이었다. 


늦었고 촌스럽지만 한양 도성 길을 걸으면서 내가 사는 도시의 과거를 걷는 여행을 하였다. 한양 도성은 조선 왕조(1392~1910)의 도읍지인 한양을 외부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쌓았던 5~8m 높이 성벽이다. 경복궁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낙산, 인왕산, 목멱산(남산), 북악산 능선과 그 사이 평지를 연결하였다. 성벽 길이는 18.6 Km이며 근대 도시화 과정에서 일부 훼손되어 현재는 전체의 70%(약 13 Km) 구간이 남아 있다. 출입을 위해 성벽 사이에 사대문과 사소문, 모두 8개의 성문이 있다. 사대문은 흥인지문(동대문), 돈의문(서대문), 숭례문(남대문), 숙정문이고 사소문은 광희문, 서소문, 남소문, 창의문이다. 돈의문, 서소문, 남소문은 소실되었고 터만 남아 있다. 나는 혜화문을 출발하여 시계 방향으로 도성 길을 2번 나누어 걸었다. 한양 도성길 안내 지도에 4개의 산을 기준으로 각 구간의 거리, 소요 시간, 진입지점 교통편이 잘 정리되어 길치인 나도 헤매지 않았다.           


혜화문에서 출발하는 낙산구간은 흥인지문까지 1시간 남짓 소요되었다 성벽 바로 옆으로 걷는 길은 내가 도성 길을 걷고 있다는 흥분 속에서 낙산공원에 도착하였다. 여기서 도성 안쪽을 보면서 종묘, 창덕궁, 창경궁 등 문화유적 찾기를 한 후, 이화동 벽화마을의 옛 풍경을 즐기고 흥인지문에 도착하였다. 서울의 몽마르트르 언덕이라고 할 정도로 야간풍경이 좋다고 한다. 가을 저녁에 한 번 오르고 싶다.  

   

흥인지문(동대문)에서 출발하는 남산구간은 광희문을 지나 장충체육관 뒤 숲길을 오르기 전까지는 성벽이 훼손되어 중간 중간에 주택 벽에 흔적만 남아 있었다. 아쉽지만 그래도 이정표가 잘 되어 걷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남소문 터를 지나면 N타워까지 남산을 약간 가파르게 올라간다. 인증사진 남기기 좋은 봉수대 터와 잠두봉을 내려오면 한양 도성 유적전시관이 있다. 일제 강점기 조선신궁 배전터(1925)와 남산 분수대 등을 포괄하는 전시관 지역에는 조선시대 축성의 역사, 최근 발굴과 정비 과정을 볼 수 있었다.     

 

도성은 지속적인 보수를 통해 유지되었다. 성 돌을 보면 어느 때 성벽인지 구별이 될 수 있다. 태조(1396년) 때는 산성은 석성, 평지는 토성으로 성 돌은 자연석을 거칠게 다듬어 사용하였다. 세종(1422년) 때 재정비하였는 데, 이때 평지의 토성은 석성으로 고쳐쌓았다. 성 돌도 옥수수알 모양으로 다듬어 사용하였다. 숙종(1704년)은 무너진 구간을 여러 차례 새로 쌓았다. 성 돌 크기도 가로세로 45cm 내외로 규격화하였다. 순조(1800년) 때는 60cm 가량의 정방형 돌을 정교하게 다듬어 이전보다 견고하게 쌓아 올렸다. 축성과 관련된 글자를 새긴 성 돌을 각자성석이라 한다. 축성 구간 명칭 (14세기), 축성 담당 지방(15세기), 공사 관계자의 이름(17세기 이후) 등을 새겨 실명제로 부실 공사를 예방하였다. 성 돌에 대한 작은 지식은 성벽에 관심을 더 가지게 하였다.  (첫날 여행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다음편에서 이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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