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보드 배우면서 돌아보는 내 어설펐던 '첫' 순간들
오늘 생전 처음으로 롱보드라는 걸 배워봤다. 생각보다 거대한 보드 크기에, 봄날이라고 사람들로 가득 찬 올림픽 공원, 쉽게 슝슝 배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한 번은 엉덩방아를 찧었고, 앞에 가던 모르는 행인에게 내가 타던 보드를 발사해버리기도 했다(연신 죄송하다는 고갯짓에 내 목이 남아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초보 롱보드 강습 영상을 유튜브에서 찾아보다 문득, 지난 세월 내가 만났던 모든 일들의 '첫' 순간이 떠올랐다.
뭔갈 처음 시작하면 곧잘 따라 하는 편은 아니다. 눈에 띄게 더딘 구석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나를 가르치면 곧장 열을 외는 천재는 아닌 것 같다. 학창 시절 공부도 그랬고, 마케터라는 직업도 그렇고, 작년에 처음 배운 서핑도 그렇고, 이번 롱보드도 그렇다. 처음 시작은 모두 어딘가 어설펐다.
고등학교 때 내가 가고 싶었던 대학교에는 가지 못했다. 다른 애들처럼 새벽까지 공부해보려고 커피도 마시고 뺨도 때려보면서 공부했는데, 나는 그네들처럼 점수가 좋지 않았다. 그럭저럭 나온 점수로 재수를 했고 조금 나아진 점수로 대학을 갔다. 대학에서는 좋아하는 수업만 골라 들을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 덕분에 지금 당장 쪽지 시험, 중간고사, 내일 기말고사를 위해 싫은 걸 외워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좀 더 멀찍이서 공부라는 행위 자체를 바라볼 수 있었다. 정보를 습득하고 이를 소화하는 과정은, 단순히 이름을 외우는 데 있지 않고 전체 맥락과 흐름을 머릿속에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때문에 내가 어느 부분을 이해하고 있고, 어느 지점을 잘 모르는지를 파악하는 게, 닥치고 외우는 것보다도 우선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 점을 깨우치고 나니 장학금을 받았다.
마케터라는 직업을 갖게 된 첫 순간에도 좌절을 맛보았다. 6개월 동안의 수습 기간 동안 당장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어린 신입에게 으레 원하는 생생 튀는 아이디어를 원하는 것 같은데, 도무지 그게 뭔지 모르겠더랬다. 요즘 유행도 잘 모르겠고, 트렌드는 더더욱 깜깜했다. 아이디어 회의 때는 괜스레 나만 못난 것 같아 주눅이 들었고 입을 다물게 되었다. 그러다 여차저차 정규직이 온전히 되었고, 수습이라는 부담이 없어졌다.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멀어지니, 어설픈 내 모습을 자연스레 받아드리게 되었다. 예전엔 몰라서 죄송하다고 연신 외쳐댔지만, 강박이 없어지니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처음인데 모르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모르니까 주변에 마구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고, 사람들과 친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회의 때 그때만큼 쫄지는 않는다(오히려 허무맹랑한 말을 자꾸 던져서 문제일지도.)
작년에 처음 만난 서핑도 마찬가지다. 처음 강습을 받기 전, 물이랑 친한 성격 탓에 서핑 보드에 발을 대자마자 멋지게 탈 것만 같은 상상에 젖어들었다. 결과는? 예상하다시피 풍덩이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보드 위에 서 있지도 못했고, 그날 소금물이란 소금물은 몽땅 들이마셨다. 너무 무력했던 첫날을 뒤로하고 둘째 날 또다시 수업을 들었는데, 그때 강사님이 외친 "멀리 보라"는 말이 귀에 꽂혔다. 넘어질 것 같으니까 처음 보드 위에 서면 강박적으로 자기 발가락만 보게 되는데, 그러면 십중팔구 물에 빠지게 된다. 저 먼 해안을 바라보고 몸에 힘을 빼야 물 위를 스르륵 타볼 수 있다고 했다. '처음인데 뭐, 당연히 물에 빠지겠지'라는 마음으로 미친 척 그의 말을 들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그날 서서 파도를 탔다.
이제 네 번째로 맞이하는 어설픈 첫 순간이 찾아왔다. 바로 롱보드. 오늘 나는 지난날의 나처럼 주눅이 들었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도 다리는 후덜거렸고, 지나가는 누군가를 혹시라도 칠까 봐 전전긍긍했고, 강사님이 답답해할까 봐 걱정했다(이놈의 죄송합니다병...). 아직 잠이 오지 않는 새벽, 잘하고 싶은 마음에 롱보드 입문 영상을 찾아보며 생각을 정리해본다. 처음이니까 넘어질 수도 있지 뭐. 다음에는 넘어질 거 안 무서워하고, 누구 칠까 봐 전전긍긍하지도 않아야지. 그런데 일단은 사람 없는 데로 연습 장소를 잘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