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글 한 편 쓰는 데 걸리는 시간

글을 느리게 쓴다고 자책하지 마세요.

by 이준봉
글을 빠르게 못 쓰겠다고요?



글을 빠르게 읽고 쓰는 사람이 부러웠다. 원래부터 뇌의 정보처리능력이 타고난 건지, 노력해서 그렇게 된 건지는 자세히 모르겠으나, 그런 특징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나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생각해보라. 신속하게 무언가를 읽어내고, 창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시간이 절약되겠는가? 남은 여유로 하고 싶었던 일을 즐긴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았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지 3개월 정도 흘렀다. 처음에는 '이제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릴 수도 있지'라고 생각했다. 허나, 지금 역시 예전과 다를 바가 없다. 마음 같아서는 술술 타이핑해나가고 싶은데, 머리의 CPU는 이내 과열된다. 좀처럼 글이 써내려지지 않는다. 글을 쓸 주제와 대략적인 개요가 정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뼈에 살을 붙이는 작업은 낯설기만 하다. 그런데 과연 나만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일까?


내가 브런치 글 한 편을 쓰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이렇다. 일단 주제를 잡고 그에 걸맞은 제목과 부제를 생각해내기까지 15분이 걸린다. 그런 다음, 초고를 작성하는데 이때 소요되는 시간이 약 3시간 안팎이다. 다음에는 사진을 첨부한다. 글감에 어울리는 사진을 선별하고 편집하는 데엔 30분 정도 걸린다. 맞춤법 검사를 마치고 2~3번 정도 퇴고를 하면, 어느덧 5시간가량 흘러갔음을 알 수 있다.



그게 끝이 아니다. 지금까지 내가 쓴 글을 봐왔던 사람이라면 알 수 있겠지만, 나는 글이 완성되자마자 바로 발행하지 않는다. 약 한두 달이 지난 후에야 내놓는다. 그 이유는 열흘에 한 편씩 정기적으로 발행하겠다는 나와의 약속 때문임과 동시에 여러 번 읽으며 반복적으로 수정하기 위해서다. 이런 과정을 모두 거치면, 글 한 편에 투자하는 시간은 거의 7~8시간까지 이르게 된다.


이쯤 되면 나만 바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브런치 작가들이 글쓰기 라이프에 대해 쓴 글을 읽어보면, 평균 1시간, 길어야 2시간이면 글을 완성한다는데 말이다. 분명 글쓰기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나는 글을 오래 쓰는 걸까? 어떻게 보면 투자 대비 창출이 상당히 비효율적인 일인데 계속해도 되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이 문제를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겠다는 필요를 느꼈다.




고심 끝에 결론을 내렸다. 글을 오래 쓰는 행동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오히려 이로운 점을 가져다줄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글을 빨리 쓰는 사람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의도는 추호도 없다. 빠르게 잘 쓰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러나 글이 잘 안 써지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고, 빨리 글 쓰는 사람보다 느리게 글 쓰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 본다. 그렇다면 무슨 근거로 오래 글 쓰는 현상을 정상으로 보게 된 것일까?




1. 생각을 깊이 할 수 있다.


글을 느리게 쓴다는 건 글감을 오래 생각한다는 뜻이다. 어떤 주제를 어떻게 전개시킬지 끊임없이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의미다. 논리적으로 타당한 근거를 생각해낼 때도 있고, 빈약한 내용을 세우는 시행착오를 겪을 수도 있다. 그러한 과정은 곧 생각을 깊게 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오랫동안 글을 쓴 이후, 내가 쓴 글을 나중에 보면 깜짝 놀랄 때가 있다. '내가 이렇게까지 생각한 적이 있구나'. 오랜 시간 골몰하지 않았더라면 태어나지 못했을 글이 내게는 많다.



2. 문장을 많이 다듬게 된다.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글을 쓰면, 자연스럽게 문장을 많이 다듬게 된다. 맞춤법과 같은 단순한 오류에서부터 문장의 호응이나 단어 선택, 문체 등을 상세하게 캐치하고 다듬을 수 있다. 이 모든 건 퇴고와 연관되는데, 퇴고는 하면 할수록 글이 정제되고 간결해진다. 결국, 여러 번 퇴고한다는 건 여러 번 읽어본다는 것이며, 여러 번 읽어보는 건 오랜 시간을 글쓰기에 투자하였음을 나타낸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글쓰기 실력이 향상됨은 시간문제다.




3. 즐거움이 느껴진다.


나는 글을 예전에도 썼고, 현재도 쓰고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글쓰기에 대한 마음이 바뀌었다. 전에는 대학 수업을 들으며 과제로 리포트를 제출할 때나, 설교문을 작성할 때, 그리고 스터디 모임을 하며 발제하면서 글을 주로 썼다. 이들의 공통점은 마감기한(Deadline)이 있다는 게 특징이다. 따라서 시간에 쫓겨 글을 쓰게 되었다. 물론 나의 게으른 천성 탓도 있지만, 여하를 막론하고 결론은 글쓰기가 별로 재미없었다. 써내야만 하므로 글을 쓰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요즘은 다르다. 글쓰기가 즐거워졌다. 혹자는 '네가 군대 안에 있으니까 재미의 정의를 잊었구나'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사실인 걸 어쩌랴? 아마 그 이유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오랜 시간 글쓰기에 몰입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인간은 하라는 건 하기 싫어하고, 하지 말라는 건 즐거움을 느끼며 한다. 글쓰기도 이와 마찬가지다. 쓰지 않아도 되고,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닐 때 글은 가장 잘 써진다. 이땐 느리게 글을 쓰더라도 전혀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글쓰기 최적의 시간이란, 글을 오래 써도 될 때라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글을 오래 쓰는 게 정답은 아니다. 어쩌면 이 글을 쓰는 원인은 '내가 오래 쓰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 세상에는 위에 열거한 '느리게 글 쓰는 이점'을 갖고 있으면서도 빨리 쓰는 사람이 있다. 단지 이 글을 통해, 나처럼 글을 느리게 쓴다는 걸로 자책감에 빠진 이들에게 위로와 용기가 되었기를 바랄 뿐이다. 글을 느리게, 오래 쓴다는 사실이 결코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도 글쓰기와 힘겹게 씨름하는 당신이여, 진심으로 응원한다!




괜찮아요.

그건 정상인 걸요.

저는 이 글만 5시간째 붙들고 있는 중인데요.



(본 글은 2019. 08. 10에 작성된 글입니다. 아직 발행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제야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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