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군대에서 차량의 '호수'는 곧 '서열'을 의미한다. 즉, 각 부대의 최고지휘관이 1호차를 사용하고 그 뒤로는 계급에 따라 차량을 배정받는다. 어느 부대냐에 따라서 1호차주(主)의 직책은 바뀔 수 있는데, 내가 속한 부대는 '사단 본부'이기 때문에상당히 직급이 높은 분들이 차량을 이용한다. 내가 운행하는 3호차에는 대령 계급장을 가진 분이 탑승한다. 편의와 보안상, 이 분을 Y대령이라고 지칭하겠다.
Y대령은 사단 내에서 서열이 세 번째다. 게다가 소위 '짬'으로는 가장 높다. 이 말인즉슨, 어느 누구 하나 건드릴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운행을 하다보면, 각 부대의 상급자들과 Y대령이 대화하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그러면 백이면 백, Y대령의 말에 찬성을 한다. '내용 추가'나 '덧붙임'은 있어도 '부정-No-'의 대답은 결코 나오지 않는다. 이야기하는 걸 들어보면, 항상 "예!" 혹은 "맞습니다."를 연발하며 맞장구만 친다. 지금까지 Y대령의 말에 입장을 달리했던 사람을 단 한번 보았는데, 그는 사단 주임원사였다. (저녁식사를 같이 하자고 제안했을 때인데, 그조차도 죄송하다는 표현을 연발하며 정중히 거절했다.)
나조차 예외는 아니었다. 보통 간부들 사회에서는 진급이나 고과 등 밥줄이 걸려있기에 상급자에게 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군복을 벗을 병사다. 오히려 집에 가기를 희망한다. 그러기에 편하게,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하며 지내면 좋겠는데,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는 것 같다. 전용 운전병인 나에게 잘해주려고 하실 때도 있고, 편하게 있으라고 말씀을 하시지만, 좀처럼 긴장이 풀어지지 않는다. 마치 생존에 대한 본능이 무의식을 지배한 느낌이다.
대령과 상병, 이 둘은 '하늘과 땅' 차이다.
따라서 Y대령과 운행 중에 대화를 하면 일방적인 방향으로 전개되기 십상이다. 일상적인 소재부터 정치적인 현안, 사회 문제 등을 논하면 자연스럽게 나는 맞장구만 친다. 설사 그와는 다른 입장을 가지더라도 잠자코 침묵한다. 괜히 이의를 제기하였다가 피 보는 일(?)을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 또한 여타 간부들처럼 "예", "맞습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를 제창한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했으니깐.
그런데 요즘 들어 상황이 난처하게 됐다. Y대령이 자꾸 등산 얘기를 언급하기 시작하였다. 초반에는 그냥 "등산이나 해야겠다"면서 가볍게 던지듯이 말했다. 나는 그때도 "좋은 생각이십니다. 등산하면 건강에 좋지 않습니까?" 이렇게 대답하면서 장단을 맞추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운행을 나가자고 하셨다. 아뿔싸, 행선지는 산이었다! 드디어 올 게 왔구나 생각했다.
마침 태풍이 북상하고 있었던 터라, 국지성 호우가 내리는 중이었다. 그날도 비가 오다말다를 반복했기 때문에, 운행을 나가기 바로 전에,"지금 비가 조금 내리는데 등산하기 괜찮으시겠습니까?"라며 가고 싶지 않다는 언질을 주었다. 그랬더니, 비가 너무 많이 오면 그냥 둘러만 보고 오자면서 기어코 산으로 출발했다. 산에 도착했는데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우산을 쓰고 산행을 감행하였다.
복계산, 해발 1057.2m를 자랑하는 산이다.
내가 복무하는 지역은 강원도 철원이다. 그래서 그런지 산이 정말 더럽게 가팔랐다. 이게 등산로인가 싶을 만큼, 길이 험했다. 한참을 등반하고 있는데 갑자기 큰 구덩이가 보였다. Y대령이 그건 멧돼지가 파놓은 흔적이라고 이야기했다. 걱정 회로가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지금 '아프리카 돼지열병' 경고장이 부대 주변에 덕지덕지 붙어있는데, 이거 감염되는 거 아냐? 아니, 멧돼지를 만나면 그냥 죽는 거 아냐? 만약에 만나면 굴러 떨어져야 하나? 그렇게 걱정과 함께 결국 산 정상 밑까지 도착했다.
드디어 내려가겠구나 싶었는데 갑자기 Y대령이 전망 좋은 곳을 찾아 나섰다. 당연히 나는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약 10분 정도 '등산로가 아닌 장소'를 헤치고 다녔다. 결국 전망 좋은 곳은 찾지 못했다. 그제서야 Y대령이 내려가자고 한다. 원래 왔던 곳을 향해 돌아갈 줄 알았다. 근데 Y대령은 그냥 내려가기 시작했다! 길도 없는데 무작정 내려가는 것이다. 나야 별 수 있는가? Y대령을 따라가야만 했다. 와.. 내 평생 등산로 없이 산을 타보기는 처음이었다.
등산로도 험한데, 등산로가 아닌 길(?)로 내려가려니까 훨씬 위험했다. 곳곳에는 나무와 낙엽, 흙과 돌, 이끼 등이 전부였다. 게다가 비는 추적추적 오고, 경사는 가파르지, 발을 조금만 헛디디면 그대로 굴러 떨어질 판이었다. 내려가는 시간은 올라올 때보다 약 3배가 더 소요되었다. 아니, 시간은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길을 찾으면 내려갈 수 있으니까. 중요한 건 다시 등산로를 찾는 일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 가량 아무런 방향도 모른 채 내려가기만 했다. Y대령은 좀 전까지 자기가 KCTC 훈련을 할 때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이제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왜 길이 안 나오지? 라며 혼잣말을 했다.
계속 나무를 잡으면서 내려가다가, 어떤 줄을 발견했다. 그 줄에는 이런 문구가 적힌 띠지가 걸려있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습니다. - OO산악팀' 그렇다! 등산로를 안내하는 표지였다. 천만다행이었다. 그 길을 따라 우리는 쭉 내려왔다. 30분도 안 걸려 처음 등산했던 곳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생전 처음으로 등산을 하면서 공포를 느낀 날이었다.
"... 또한 언어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발화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보면 발화 현상이 언제나 언어에 선행합니다." - 페르디낭 드 소쉬르, <일반언어학 강의>
그런데 엊그저께 Y대령이 나에게 이야기한다. "다음 주에도 등산을 갈까 하는데 너는 어떠냐?"라고 물어본다. 말에는 의도가 담겨있다. 그가 내 의중을 묻는 의문사라는 형식을 사용하였지만, 이는 기표(Signifiant)였을 뿐 기의(Signifié)가 될 수는 없었다. 만약 내가 직설적으로 받아들여 "저는 가지 않겠습니다"라고 이야기했다면 어땠을까? 결국, 난 "하하.. OO님께서 가신다면.. 저 또한 가도.. 괜찮습니다"라고 답했다. 그 말이 끝나자, Y대령은 가볍게 "그럼 너도 가자"고 말하며 대화가 종결됐다.
일과를 마치고 주차시키기 위해 차에 올라타면서 이러한 생각이 교차했다. '과연 그는 내가 원하는 바를 파악하지 못했을까?', '진짜 말 그대로 들은 걸까?' 나는 항상 Y대령의 명령 혹은 부탁에 대해 힘차게 대답한다. 한 치의 거리낌도 없이 말이다. 하지만 아까는 달랐다.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솔직히 다시는 그곳에 등산하러 가고 싶지 않았다. 단지 완곡하게 돌려 표현하였을 뿐이었다.
한편, 말하고자 하는 바를 속 시원하게 말하지 못했던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왜 난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표현하지 않았을까?', '지난 박찬주 대장 사건 이후로 위계에 의한 압력은 이제 힘을 잃었는데', '어차피 전역하는데 할 말은 해야지'라며 생각하지만 나의 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말을 혀로만 하지 말고 눈과 표정으로 해라." - 유재석
아마도 이 두 가지, '듣는 귀'와 '말하는 입'이 필요했을 것이다. 적당한 디테일(Detail)함과 눈치가 요구되고, 때로는 뒤를 보지 않는 용기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이 두 가지 요소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반드시 내장(內藏)되어야만 한다. 첫 번째는 나를 대하는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서, 그리고 두 번째는 상대방을 대하는 내가 편하기 위해서 말이다.
진정한 소통은 서로가 만족하고 불편하지 않을 때에 비로소 이루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에 Y대령이 등산을 가자고 하면 어떻게 대답할지 미리 생각해놓아야겠다. 아, 다시는 그곳으로 등산 가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