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는 버리는 카드가 아니다
요즘 저는 한 가지 후회되는 일이 있습니다. 그건 본 글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바로 피아노를 끊었던(stopped) 저의 선택이었습니다. 계속 학원에 다니지는 않았더라도, 취미로 간간이 연주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이 듭니다. 물론 그때는 제가 가진 신념에 의하여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만두었습니다. 그만큼 저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겠다는 확고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근데 요즘 드는 생각은 그것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닐 수가 있겠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구성하는 요소는 ‘직업적 전문성’만이 다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개개인의 삶을 이루는 요소는 셀 수 없이 다양합니다. 각 사람이 가진 신념이나 경험, 습관, 체질, 선호하는 것… 등 수많은 면이 우리에게는 존재합니다. 어느 누군가가 옆 사람보다 뭔가를 잘한다고 해서, 그 사람보다 잘났거나 좋은 사람이라고는 말할 수가 없습니다. 즉, 인간은 우열을 가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물론 자신의 삶에서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욕구는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본인의 인생을 평가하는 척도가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인생의 의미가 언제라도 무너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모래성과 같이 되지 않을까요? 뭐, 요새 제게는 그런 생각이 주로 떠오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전에 제가 꿈을 바꾸고, 피아노 학원을 끊는다고 이야기했을 때, 학원 선생님께서 아쉬운 목소리로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나네요. 선생님께서는 ‘그래도 취미로라도 피아노는 계속 치지…….’라고 짧게 얘기해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그런 조언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약 7~8년간 피아노에서 손을 아예 놓았습니다. 아주 가끔씩 교회에서 찬송가 반주를 해야 하는 순간만 피아노를 쳤던 것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제가 그동안 연습해왔던 곡들도 잊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아,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생각이 결정적으로 드는 순간은, 예전에 쳤던 피아노곡을 다시 연습할 때입니다. 특히, 몇 달에 걸쳐서 완성했던 곡들을 다시금 연습하려니까 옛날에 쳤던 모습이 많이 떠오르더군요. 또 다시 그 정도 수준까지 실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이 투입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그때 피아노를 간간이 치면서 실력이라도 유지하였을 텐데 말입니다. 비록 전공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취미로 꾸준히 연습했으면 참 좋았겠다 싶습니다. 하지만 지나가 버린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저에게 남은 건 ‘이제부터’라는 오늘뿐입니다.
인생이라는 시간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게 볼 수 있을 듯합니다. 그 속에 무엇을 채워 넣느냐는 각자의 선택에 따라 달렸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다양한 것을 시도해보고, 끊임없이 무언가에 도전하는 것은 꽤 중요한 일입니다. 비단 직업적인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인생 전반적인 면에서도 말입니다. 취미와 여가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을 한다고 해서 인생을 망치거나, 살아가면서 불리하게 작용할 확률은 1%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득이 되었으면 되었지, 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가 이야기한 대로, 인간은 결국 ‘놀이하는 존재(Homo Ludens)’입니다.
앞만 보고 달려가야 할 시기도 있겠지만, 때로는 잠시 앉아서 주위의 풍경을 둘러보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쉬지 않고 끊임없이 달리기만 하는 사람은 아마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컴퓨터나 인공지능 로봇이 아닌 이상, 우리는 충분한 휴식과 적절한 스트레스 배출구가 필요한 ‘인간’입니다. 저는 그러한 쉼을 누리는 방법 중에서 ‘음악’ 그리고 ‘피아노’가 훌륭한 역할을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 피아노를 직접 연주하는 행위 등을 통해서 말이죠. 꼭 클래식과 피아노가 아니더라도 괜찮습니다. 여러분에게 가장 친숙하고 흥미가 끌리는 장르라면 충분합니다. 음악이 아니어도 크게 상관은 없습니다. 미술 활동이나 운동, 여행, 그 어떤 것이라도 가능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전달해준다면 말입니다.
이제 저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취미는 결코 버리는 카드가 아니라는 것을요. 그건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존재감도, 쓸모도 없는 그런 카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반대에 가깝습니다. 카드 게임의 판도를 완전히 뒤바꿀 수 있는 비장의 카드라고 할 수 있을까요. 마치 평소에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필요한 그런 카드라는 것이죠. 지금까지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왔다면, 단지 한 가지 목표만을 추구했었더라면, 그래도 나 자신을 위해서 취미 하나쯤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그것은 우리의 인생을 좀더 다채롭고 풍부하게 만들어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지친 마음에 편안한 위로가 되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