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국경도 사라지고 있다
요즘 저는 마치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 느낌입니다. 제가 피아노 학원을 중학교 3학년 때에 끊었으니, 약 10년 정도가 흐른 후이네요. 물론 대학교 4학년이 되어서 피아노 학원에 약 1~2달 정도 다시 다니기는 했지만요. 아니, 코로나19가 아직 한창인 이 상황에 학원에 어떻게 등록했냐구요? 또, 저는 시간이 그렇게 넉넉하지 않아서 (물론 돈도 별로 없습니다.. 크큭) 피아노 학원에 다닐 형편은 안 됩니다. 무엇보다도 저에게 피아노는 ‘선택사항’ 혹은 ‘기호 식품’과도 같아서 치고 싶을 때 치고, 안 치고 싶으면 안 쳐도 괜찮은 존재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피아노 학원을 다니는 건 또 하나의 의무를 만드는 것 같아서 조금 별로였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어떻게 피아노 학원에 다닌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그건 바로 온라인을 통해 피아노 레슨을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새는 YouTube 채널들이 매우 다양해져서 웬만한 영상이 다 있습니다. 몇몇 피아니스트들도 유튜브를 운영하는데, 그분들이 개설하신 채널에 가서 동영상을 보면서 피아노를 배우고 있습니다. 유튜브의 특성상, 전문성과 인지도를 갖춘 사람들이 더 잘 알려지기에, 저는 자연스럽게 전문 연주자들이 촬영한 영상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영상을 시청해보면, 곡을 해석하는 포인트나 구체적으로 연습하는 방법이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저처럼 혼자서 피아노를 연습하는 사람에게는 더없이 좋은 컨텐츠가 되어줄 수 있죠.
제가 이렇게 온라인으로 피아노를 배우려고 한 데에는 하나의 계기가 있었습니다. 최근에 저는 쇼팽에튀드 중에서도 난곡으로 꼽히는 Etude Op. 25, No. 11 (‘겨울바람’이라고도 불립니다)을 연습하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근데 아무리 오랜 시간을 붙들고 연습하려고 해봐도 제자리인 것 같았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곡은 전문적으로 레슨을 받아야만 칠 수 있는 건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만큼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으며, 곡을 완성할 수 있다는 확신도 별로 없었는데요. 그러던 차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유튜브에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쇼팽 겨울바람 연습법’이라고 말입니다.
검색한 다음에 동영상 몇 개를 찾아보니까, 이게 웬걸…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연습할 때의 꿀팁을 찍어놓은 영상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조회수가 많은 동영상을 클릭했죠. 그 영상을 처음 시청할 때는, ‘이렇게 언제 연습하나?’ 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피아노를 연습할 기회가 왔을 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한 번 그분이 알려주신 대로 연습해보았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첫 장만 말씀하신 걸 따라서 그렇게 연습했는데도, 느낌이 다르더군요. 미스터치가 현저하게 줄었고, 손은 더욱 유연하고 자유로워진 기분이었습니다. 특히, 그 선생님은 쇼팽에튀드의 전반적인 특징을 설명해주시면서, 각 곡에는 고유한 연습 기법과 익혀야 할 포인트가 있다고도 이야기하셨는데, 크게 공감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아주 그냥 속이 다 시원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건 절대로 뒷광고나 앞광고가 아닙니다만, (물론 뭔가를 지원받지도 않았습니다. 아, 한 가지 있다면 피아노 레슨을 지원받았군요..^^;) 제가 현재 구독하고 있는 유튜브는 ‘피아노 박사 샵’이라는 채널입니다. 여러 피아니스트가 함께 운영하는 채널인데요. 그분들은 실제로 해당 분야에서 화려한 경력을 쌓아오시기도 하셨으며, 예중이나 예고 혹은 음악대학에 출강을 나가는 분들이시기도 합니다. 그런 분들이 녹화한 피아노 레슨 영상을 보니까, 정말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니, 더 나아가 마치 피아노 전공생이 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전에 한때 제가 피아노를 전공하려고, 서울로 어떤 교수님께 개인레슨을 받으러 갈 때랑 크게 다르지 않았거든요.
(영상으로 도움을 받은 게 많아서, 또 컨텐츠 퀄리티가 너무 좋아서) 잠깐 채널 홍보를 하자면, ‘피아노 박사 샾’은 SYAP(Seoul Young Academic Pianists)라는 단체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소속된 피아니스트들의 경력은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놀라운데요. 일단 평균 학력이 ‘피아노 박사 졸업’입니다. 더러 몇 분은 박사 수료이시거나 재학 중이시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출중한 연주 실력을 갖고 계셨습니다. 이 단체는 피아노 전공생뿐만 아니라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도 다양한 연주나 교육을 지속해왔다고 합니다. 이런 유튜브도 그와 같은 활동의 일환이겠네요. 홈페이지를 가보면 젊은 피아니스트를 발굴하는 경연대회나 마스터클래스 등을 여는 것 같기도 하더군요.
아무튼, 저는 요새 이분들의 영상을 시청하면서, 피아노 연주와 클래식 음악에 대한 더 깊은 안목을 키우고 있습니다. 물론 이 채널 말고도 추천할 만한 음악 유튜버들이 몇 개 더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또모(TOWMOO)’ 채널이 있겠네요. 여기에도 가끔 피아니스트들이 출연해서 곡을 해석하거나 연습하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여담이지만, 편집자가 센스 넘쳐서 웬만한 예능 프로그램보다 재미있는 건 덤입니다. ‘피아니스트 유경식’이라는 채널도 제가 가끔씩 즐겨보고 있는데요. 그 피아니스트분께서는 독일에서 유학 생활을 하시면서 피아노 레슨이나 브이로그 영상을 올려주십니다. 이처럼 요즘에는 뭔가를 배우려는, 시도하려는 마음만 있다면 그 무엇도 막을 수가 없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그만큼 우리에게 배움을 전달하는 컨텐츠들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이지요.
앞으로 제가 어렸을 적과 같이 피아노 학원을 실제로 등록해서 다닐지는 의문입니다. 연습할 피아노가 마땅하지 않을 때면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얼마든지 피아노를 연습할 수 있는 환경에 있다면 따로 학원에 다니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저는 피아노를 레슨받고 있는 중입니다. 전문 연주자에게 에센셜(essential)하고 집중적인 개인레슨을 받는 것 같은 느낌이네요. 이 또한 현대 문명이 우리에게 건네준 선물이 아닐까 합니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누군가 중에서 ‘나는 피아노 학원에 다니지 않아서 피아노를 못 쳐’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나요? 이제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핸드폰, 태블릿PC, 노트북만 켜면 피아노 학원이 나오는 세상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칠 만한 피아노’ 그리고 ‘피아노를 치려는 의지’, 단지 그 두 가지만으로도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