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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봉 Nov 28. 2021

너무나 행복한 순간

추억을 한 켠에 담는다는 것은

     정말 오래간만에 다시 글을 씁니다. 마지막 글이 9월이었으니, 두 달이 넘는 기간 동안 브런치에 아무런 글도 쓰지 않았네요. 대학원에 입학하고 나서 여러 해야 할 일들이 많아졌기도 하고, 학기 중이었던 탓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 오늘 다시 브런치 글들이 저장된 한글 파일을 열었습니다. 이 순간만큼은 정갈한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서였지요. 약 이틀 전부터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비록 피아노 관련 연재 글을 중단한 지 몇 달이 넘어가지만, 그 시간 동안 피아노를 아예 안 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유가 있을 때는 매일 꾸준히, 아무리 바쁜 나날을 보낸다고 하더라도 삼 일에 한 번은 피아노를 연습했지요. 진짜 정신없게 살 때는 하루에 10분 정도만 친 적도 있었습니다. 가끔 집중하느라 머리를 식혀야 할 때, 피아노 연주만한 휴식이 제게는 없는 것 같네요. 아무튼, 요즘은 다시 여유가 조금 생겨서 매일 치고 있던 터였습니다.


     평소에 저는 SNS 계정을 통해서 저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을 팔로우하고 있었습니다. 유명한 피아노 전공자들의 소식도 받아서 보긴 하지만, 저처럼 일반인인데 피아노를 연습하는 분들도 몇몇 알고 있었죠. 세계 각국에서 일반인이지만 피아노를 꾸준히 치고 그것을 SNS에 업로드하는 광경을 접하고 있던 것입니다. 그중에서 호주에 사는 어떤 대학생의 계정을 유심히 보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물리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으로서, 일반인인데도 피아노를 정말 아름답고 깔끔하게 연주했습니다. 매일 피아노를 치면서 그와 더불어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제게 참 와닿았습니다. Q&A를 기록해둔 게시물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누군가 학업과 공부를 어떻게 병행하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하루에 최소 전공 공부는 8시간 이상, 피아노 연습은 2시간 이상을 하려고 한다고 답변했습니다. 자신의 할 일을 성실하게 잘하면서 하고픈 취미도 맘껏 하는 그녀가 참 대단하게 보였습니다. 아마추어이지만, 800여 개에 달하는 영상 게시물을 꾸준히 업로드하고, 10만 명이 넘는 팔로워가 그녀와 소통하고 있었습니다.


     멋지게 느껴지기도 하고, 내심 부럽기도 해서 이참에 저도 계정을 한번 만들어 볼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진짜 만들었습니다. 물론, 매일 연습하지 못할 때도 있겠지만, 연습을 하는 날에는 최소한 하나 정도의 클립 영상을 포스팅해보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총 두 개의 SNS 계정을 만들어서 추억을 기록하려고 합니다. 하나는 인스타그램인데요. 여기에서는 매일 짧게라도 연습한 부분을 찍어 올릴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유튜브입니다. 이 플랫폼에는 완성된 곡의 전체 영상을 업로드하고자 합니다.



     SNS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어떻게 보면 제게 상당히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우선, 저는 외국의 언어로 포스팅된 게시물을 처음 보고 이를 만들고자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 또한 영어로 계정을 운영하고 싶었습니다. 제 포스팅을 보고 또 다른 외국인이 새로운 결심을 할 수도 있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일단 인스타그램에서는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서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여기에서는 제가 잘 아는 친구나 지인도 열람할 가능성이 크기에 그렇습니다. 다음으로, 유튜브 채널에서는 오로지 영어로만 포스팅하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그러한 선택을 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제가 피아노 연주 영상을 촬영해서 SNS에 올리는 것은 어떻게 보면 저의 학업에 상당히 부담을 주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하루에 최소 2~30분은 잡아먹는 일이니까요. 그러나 이 시간에 향후 계속해서 공부하려는 영어를 사용한다면, 조금이라도 학업을 보완해주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저는 영어로 포스팅하기 위해서, 문법 체크 프로그램을 돌려보고, 모르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고, 제가 쓴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하기 위해 애를 씁니다. 이 과정이 또 하나의 공부 과정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누군가는 제게 영어 공부를 할 때, 가장 흥미로워하는 소재를 통해서 하라고 조언해주었습니다. 또한, 일상적인 분야에서부터 영어를 접하는 게 좋겠다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피아노와 관련한 포스팅을 영어로 작성하는 일은 저에게 무척이나 재미있는 작업입니다. 영어로 뭔가를 써보고 싶게 만드는 기폭제와 같습니다. 외국어를 공부하는 유인으로서 관심 있는 소재는 매우 효과적일 것이라고 믿습니다. 작심삼일이 될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계속 SNS를 운영하는 동안에는 영어를 접할 수밖에 없으나, 일말의 도움이 되지 않을까 짐작해봅니다.



     하지만 이러한 채널을 운영하는 것은 영어 공부라는 기능보다 더 큰 장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피아노를 더욱 즐겁게 연주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매일, 아니면 때때로 업로드할 만한 영상을 촬영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연습해야 합니다. 제가 연습하는 모습을 누군가 본다는 건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입니다. 하나를 치더라도 좀더 심혈을 기울여 치고, 연습할 때도 최대한 틀리지 않고자 더욱 노력하는 듯싶습니다. 무엇보다도 업로드하고 싶다는 마음에 ‘완성한 곡’을 만들려는 의지가 극대화되었습니다.


     아까는 연습을 하면서,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고 싶어서 똑같은 곡을 몇 번이고 계속 쳐봤습니다. 미스터치가 나거나, 표현을 제대로 못 하면 동영상을 다시 찍습니다. 미완성된 곡을 업로드하기는 싫으니까요. 이렇게 여러 번 반복하다가 마침내 그럴싸하게 연주한 영상이 녹화되면 매우 기쁩니다. 오늘 오후에 체험했던 행복은 마치 논문 한 편을 모두 다 썼을 때처럼 속이 시원하고 설레었습니다. 이 영상을 저만 보는 게 아니라, 누군가와 공유한다고 생각하니, 더욱 내심 즐거웠습니다.


제 YouTube 채널입니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 올린 영상은 심심할 때마다 들어봅니다. 다른 전문적인 피아니스트나 제야의 일반인 아마추어 고수가 업로드한 연주 영상과는 또 다른 맛입니다. ‘저 자신이 연주한 곡’이라는 것만으로도 제게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폰으로 피아노 연주를 녹화하는데, 생각보다 화질이나 음질이 괜찮아서 놀랐습니다. 예전에 제가 한때 전공하려고 했을 때는, 터치폰이 막 나왔을 당시였거든요. 그때는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찍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는데 말입니다. 화질이나 음질은 두 말할 나위가 없고요.


     아무튼, 추억을 한 켠에 기록해서 저장한다는 일은 무척이나 즐거운 일입니다. 저도 그 영상을 보면서 힐링을 하고, 아주 가끔씩은 누군가가 접속해서 들어준다는 고마운 일이 펼쳐지니까요. 그리 대단하거나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이토록 라이프스타일의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니 기분이 새롭습니다.


바로 이런 걸 두고서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고 하나 봅니다.




*저의 유튜브 채널을 브런치 독자 여러분께도 공개합니다 :)

https://www.youtube.com/channel/UCMHY79g60d8tCY9QcxIpE4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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