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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봉 Feb 15. 2022

실패, 실패, 그리고 또 실패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더라도 걸어야 한다

     오늘 오후에는 한 편의 이메일을 받았다. 약 2주 전에 지원했던 연구 단체로부터 온 메일이었다. 대학 부설 연구소에서 주최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소정의 지원금을 주면서 연구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공지를 접하여 신청했었다. 사실, 이번에 지원한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작년에도, 심지어 재작년에도 지원을 했다. 하지만 번번이 떨어지고 말았다. 아마 이번이 세 번째인가 네 번째로 지원한 듯싶은데, 역시나 또 떨어진 것이다.


비슷한 메일들이 메일함에 점점 쌓여 갑니다..ㅎ


     흡사 브런치 작가 신청했을 때가 떠오른다. 지금은 시간이 오래 흘러, ‘브런치 작가’라는 칭호가 별 감흥이 와닿지 않지만, 약 3년 전까지만 해도 이 지위는 나에겐 상당한 특권이자 영예와도 같았다. 자그마치 작가 신청을 6번이나 해서 간신히 얻어낸 수락이었으니까 말이다. 심사 기간도 일주일 정도 걸렸던 터라, 두어 달가량 브런치 작가가 되고자 바둥바둥했다.


     당시 내 전략은 ‘될 때까지 지원하기’였다. 맨 처음 지원했을 시에는 호기롭게, ‘뭐 나 정도면~’ 하고 신청했는데 떨어져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아무나 통과시키지는 않는 곳이구나 하며 신중을 기하여 재차 지원했지만, 계속 낙방하였다. 그러자 모종의 오기가 생겼다. 아니,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도 합격해서 버젓이 글을 쓰고 있는데, 나라고 못할 게 뭐가 있겠어? 라는 반문과 함께 말이다. 결국, 여섯 번의 지원 끝에 ‘브런치 작가’라는 타이틀을 당당하게 거머쥐었다(^^;).


     이러한 일이 어디 브런치 뿐이겠으랴. 인생을 통틀어 실패하는 순간은 아마도 성공하는 순간보다 더 많지 않을까 싶다. 세상의 모든 경쟁률은 2:1을 훌쩍 뛰어넘기 때문이다. 물론, 괴수 같은 역량을 지닌 이들은 종종 성공 가도만을 달리기도 한다. 그러나 주관적으로나 객관적으로나 나는 그러한 천재의 범주에 들지 못한다. 잠시 잠깐이나마 들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나, 그것도 이내 깨끗이 포기했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아예 쳐다보지 않는 편이 낫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이리라.



     아무튼, 공들여 작성한 연구 계획서가 또 다시 물거품으로 돌아갔다는 점을 생각하니, 헛헛한 마음을 피할 수는 없었다. 한편으로는, 애초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기에 무덤덤한 기분도 들었다. 메일을 받고 읽는 그 순간에 여러 감정이 들었지만, 약 1분 정도만 만감이 교차했지,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였다. 과연 나는 다음 기회에도, 내년에도 지원을 할까? 아마 이러한 류의 글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아, 지원할 게 뻔하다. 결과도 대충 머릿속에 그려지지만 말이다.


     가시적인 결과적으로는 남는 게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렇게 거듭해서 지원하는 이유가 있다. 우선, 연구 계획서를 준비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려보고 그간 잘 몰랐던 연구 분야를 찾을 수 있었다. 실제로 연구 계획서를 쓰기 위해서는 나름의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 선행 연구가 얼마나 진행되어 있는지를 파악해야 하며, 내가 기여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연구를 어떠한 순서에 따라 진척시킬 것인지 등을 개괄적으로 작성해야 한다. 어찌 보면 연구물의 개요를 미리 짜보는 행위와도 같다. 비록 이번 프로그램 시즌에 지원을 받지는 못하지만, 훗날 언제든지 그것을 수정 및 보완하여 다른 곳에 넣어볼 수 있다.


     두 번째 콩고물은 바로 ‘자기소개서 업데이트’에 있다. 대부분의 연구비 지원 프로그램이나 연수 인턴 모집 등에는 필수 서류로 ‘자기소개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는 학업 계획서와는 엄연히 다른 문서다. 외국의 경우에는 CV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동안 내가 아카데믹한 삶을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자유롭게 기술하는 문서라고 할 수 있다. 국내에서 지원할 때는 한국어로, 국외에 지원할 땐 당연히 영어로 작성한다. 나는 국문 버전과 영어 버전을 두 개 만들어 놓았다. 약 2년 전에 처음 작성하였을 시점의 문서를 보고 있노라면, 상당히 허접스럽게[1] 만들었음을 단번에 느낄 수가 있다.



     하지만 연구 프로그램에 지원할 때마다 자기소개서를 수정해야 하니, 나는 자연스럽게 업데이트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뭔가를 계속 채워 넣고, 양식을 바꿔 보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했는지를 살펴보니까, 점점 나만의 무언가가 완성되었다. 현재 내가 작성한 문서들도 10년 후에 다시 본다면, 폭소를 금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현재 발휘할 수 있는 최대의 결과물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걷다 보면 나중에는 원하는 학술 연구 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되는 날이 오리라고 굳게 믿는다.


     마지막으로 연속되는 실패는 나의 ‘맷집력’을 강화시켜 준다. 사실, 나는 ‘아프니까 청춘이다’ 류의 레토릭에 적극적으로 찬성하지는 않는 편이다. 실패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고, 아픔은 반드시 겪어야만 하는 의무적인 사항이 아니다. 피하면 좋겠고, 겪지 않을수록 다행이라는 생각이 솔직히 든다. 그러나 나의, 우리의 인생은 실패와 아픔, 상처를 경험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재벌 집에서 태어나든, 행복 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라는 핀란드(OECD 2018~2020년 평균값 기준)[2]에서 출생하든, 일정한 ‘모진 순간’을 맞닥뜨릴 때가 온다.


     연구자이자 학생이라는 입장에서 나에겐 이와 같은 결과 통보가 하나의 실패이자 허탈함,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실패를 받아들이는 태도와 자세,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 또한 배워야 할 중요한 과제들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큰 실패와 탈락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 경험들을 통해서 나의 맷집은 점차 강력해질 것이다. 지금처럼 실패를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마음의 여유도, 이전에 수없이 탈락한 체험이 선행하였기에 나올 수 있었다.



     아주 어렸을 때(초등학교 3학년인가 4학년 즈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제목으로 어떤 수기를 작성한 적이 있었다. 리틀팍스라는 영어 교육 플랫폼이었는데, 그때 하라는 영어공부는 잘 안 하고, 커뮤니티 활동에 더욱 열을 내었다. 수기 글을 올려서 추천수를 많이 받으면, 무슨 혜택을 준다고 해서 열심히 썼었다.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고, 제목만 기억에 남는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옛 격언 그대로이다. 이 문장은 근 20년이 지난 오늘에도 나에게 유효한 말이다.


     실패, 실패, 그리고 또 실패를 겪는다. 하지만 나는 기대한다. 실패가 없다면 성공도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에. 고로 오늘도 내일도 실패하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주-


[1] 허접스럽다: “허름하고 잡스럽다”라는 뜻의 형용사 (국립국어원)

[2] 손해용, "일에 치이고, 공기까지 최악…韓 행복지수, 37개국 중 35위," 「중앙일보」, 2021년 5월 19일 발행, https://www.joongang.co.kr/article/24061474#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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