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알바 이야기
대학시절 방학 기간에 광주 시내에 있는 카페에서 일한 이후로 30대가 되어 처음으로 브런치 카페에서 일을 했다. 어떤 아르바이트를 할까 고민할 때 가장 쉽게 떠오르는 게 카페 알바이기도하지만 브런치 카페에선 홀 담당이 아닌 주방 담당이었다. 참고로 대학시절 내가 받은 시급은 1,700원이었다. 그 당시엔 최저시급이라는 개념 자체도 없던 시절이지만 내 기억으로 2천 원 초반대로 기억하는데 세월이 참 빠르다는 걸 시급을 보면서 느끼는 부분이다.
내가 일한 브런치 카페는 동네에서 나름 유명하다는 베이커리 사장님이 2호점으로 낸 곳인데, 빵은 본점에서 공수해 오고 오픈키친에서는 샐러드와 샌드위치를 직접 만들어 제공했다. 주방에서 일한 적은 한 번도 없던 터라 뭔가 배울 것들이 많아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출근을 했고, 내가 향후에 카페를 창업하게 될지 그건 모르는 일이다 보니 이런 경험을 통해 최대한 많은 정보들을 배운다는 마음으로 일했다.
원래 내 성향이 끊임없이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정체되어 있으면 금방 식어버리는 성격이다 보니 돈보다는 일하면서 얼마나 즐거운지가 제일 중요하다. 그 카페도 이제 막 오픈한 상태였고, 어떻게 하면 매출을 올릴 수 있을까 이것저것 떠올리면서 적용해 보고 싶었다. 통상 이런 알바는 요즘에 귀하다고들 하는데 매니저는 오히려 이런 걸 귀찮아하는 성격이어서인지 몇 번 제시한 아이디어를 그냥 묵살해 버렸다.
나는 그 매니저를 보고 사업을 망하는 데엔 다 이유가 있구나를 느꼈는데, 일단 본인이 여대 앞에서 샌드위치가게를 오픈해서 망하고 다시 재기하기 위해 매니저로 일하는 거라고 했다. 청결 하나만큼은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집착하는 그였지만, 그 외에 서비스 관련해서는 정말 관심이 없는 모습을 보고 여대 앞에서 저렇게 장사를 하니 망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그 카페는 김앤장 로펌 부근에 위치해 있어서 김앤장 변호사들도 종종 들렀는데, 어느 중년 신사분이 영자신문을 읽으면서 필리샌드위치를 시켜서 먹다가 살짝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미국에서 먹던 그 맛과는 좀 많이 다른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다. 솔직히 고기 질이 그렇게 좋지 않아서 내가 먹어도 좀 질긴 느낌이 없지 않았던 터라 그 고객의 피드백을 매니저에게 전달을 해주었는데 반응이 가관이었다.
"꼭 뭣도 없는 사람들이 있는 척하려고 미국에서 먹어봤느니 어쩌느니 그런 소리 하는 거야"
나는 말문이 막혔다. 누가 봐도 저 사람이 불쾌하게 말을 한 것도 아니고 주변 상권 자체가 전문직이나 회사원들이 오는 곳인데 여기 와서 뭣도 없이 허세를 떨리는 만무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손님들도 봤기 때문에 그런 반응을 했으리라 짐작하지만 일단 음식 퀄리티 관련 불만이 있으면 다시 점검해 보는 게 필수 아닌가? 심지어 내가 먹어도 별로였고, 가게에 놀러 와서 친구도 샌드위치가 맛이 없다고 했으니 분명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했다. 매니저는 자기 요리에 대한 신념과 철학이 아주 확고한 사람이었다.
그 카페에서는 수프도 판매를 했는데, 개인적으로 수프는 좀 되직한 수프가 좋아해서인지 그냥 우유를 끓인 정도의 점도를 가진 수프를 판매하는 게 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수프를 시키면 냉면 사발 절반 분량의 양이 제공되는데 수프가 나오면 손님들이 깜짝 놀라는 이유가 엄청난 양 때문이다. 근데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수프가 아닌 정말 국물 같은 점도였기에 다 먹지 못하고 남기고 가는 경우가 많았고, 그런 부분에 있어서 개선을 하면 어떨까 의견을 제시했지만 역시 매니저는 듣지도 않았다
"원래 사람들은 그런 되직한 수프보다 삼삼하면서 저렇게 국물 같은 수프를 더 좋아해"
사람마다 취향이 다를 수 있기에 그럴 수 있다 치지만 저 말의 근거는 어디서 나왔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었다. 손님들이 남기고 가면 그 이유를 생각해 볼 법 한데 그런 게 전혀 없으니 좀 답답했다.
브런치카페다 보니 아무래도 여성 고객들이 많았고, 이제 오픈한 점포이기 때문에 초반에 단골고객을 확보함과 동시에 고객의 재방문율이 얼마나 되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래서 스탬프 10번 찍으면 아메리카노 한 잔 제공 이런 식으로 회원가입이나 적립카드를 도입하자라고 제안했는데 돌아오는 답변이 가관이었다
"계절밥상이나 빕스가 왜 망했는지 알아? 다 그렇게 할인쿠폰 쓰고 서비스 제공해서 망한 거야"
와우, 이 사람은 사실과 의견을 전혀 구별을 못하고 본인의 감정이나 의견을 사실로 밀어붙이는 사람이 구 나라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었다. 10번 온 고객에게 아메리카노 한 잔 주는 것 때문에 가게가 망한다는 것도 이해가 안 되지만 매니저로써 방문 고객의 성별과 연령층 재방문율 등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에 그냥 놀랄 뿐이었다. 그러나 일개 아르바이트생인 내가 강하게 주장할 부분은 아니었기에 그 이후로 더 이상 아이디어를 내거나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가게에 들어오는 토마토나 로메인, 피망, 양파 등 재료가 입고되면 내가 직접 확인을 했는데 그 이유가 매입단가와 재고 회전율을 대충 돌려보면 혹 나중에 내가 사업을 할 때 도움이 되지 않을까여서였다. 이때가 아니면 내가 언제 직접 경험해 볼 수 있겠나. 단순히 최저시급만을 버는 걸로 만족하기에 나의 노동력은 너무 아깝다고 생각한다. 한 달 반 정도밖에 근무하지 않았지만 그 사이 정말 충격적인 모습을 본 게 있는데 일단 나는 손님이 있으면 절대 앉아있지 않는다. 그리고 손님이 들어오기 전에도 항상 서있는다. 즉 근무하는 동안은 절대 앉아있지 않는 게 내 신조이다.
그때가 추운 겨울이었는데, 전날 직원들이 술을 거하게 마셨는지 오픈을 10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전기난로를 켜고 무릎 담요로 칭칭 감고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나한테도 와서 잠깐 앉아서 쉬라고 했지만 난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고 말하며 주방에 서 있었다. 밖에서 훤히 다 보이는, 심지어 브런치 카페인데 저러고 있으면 들어올 손님도 나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중에 창업을 하게 되면 매니저나 직원을 정말 잘 둬야겠구나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일단 일하면서 서툰 칼질이 능숙해지고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빠른 속도로 당근을 채 써는 내 모습에 내가 취해서 너무 재밌게 일했고, 이 경험 덕분에 나중에 CJ에서 하는 쿠킹클래스에 참여했을 때도 강사분한테 칼질 잘한다는 칭찬도 받았다. 뭐 그건 중요한 얘긴 아니지만 짧은 기간 동안 기존에 없던 스킬이 생긴 것에 나름 만족을 했고, 한 달 반밖에 근무하지 않았던 이유는 사실 잘려서이다
나는 시간 개념에 좀 예민한 편이라 지각이나 결근은 절대 하지 않는 편인데, 몸살이 심하게 걸려서 몇 번을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출근시간이 지나서 눈을 떴다. 아차 싶어서 아픈 것도 잊고 바로 매니저에게 전화해서 너무 죄송하다고 바로 가겠다고 했는데 매니저가 오늘은 그냥 푹 쉬고 내일 출근하라고 해서 감사하다고는 했지만 나이 먹고 내가 뭐 하는 짓인지 엄청나게 자책했었다. 아픈 건 어쨌건 내 사정이기 때문에 출근을 제시간에 하지 못한 건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렇게 다음날 출근해서 다시 한번 사과드리고 입고된 물건들 정리하고 있는데 매니저가 조용히 오더니
"준비씨 오늘까지만 일하고 내일부터는 출근 안 해도 됩니다"
아.. 매니저는 어제 내가 안 아픈데 아프다고 거짓말했다고 생각하는구나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부분이고 굳이 그 말까지 들었는데 이유를 묻거나 따지고 싶지도 않았다. 왜냐면 이미 이 카페에서는 더 이상 배울 것도 없고, 열심히 아이디어 내고 매출이 오르는 재미를 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 MZ세대 근무태도에 대한 말들이 많은데 내가 젊은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돈을 받은 만큼 일하는 것이 절대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냥 동일한 시간이 주어졌을 때 돈만 버는 노동을 하는 것보다, 내가 나중에 어떤 식으로든 활용할 수 있는 경험들을 쌓아가는 게 미래에 본인의 자산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을 위해서 좀 더 알아가고 배우려는 자세로 근무를 하면 본인에게도 좋고, 그런 근무자를 사장도 마음에 들어 해서 시급을 올려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 지인은 카페에서 일하는데 기업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워낙에 친절했고, 얼굴도 훈훈해서인지 모 기업 내에서 소문이 자자했고, 해당 인사팀 과장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서 이례적으로 면접을 진행해서 기업에 입사했다. 처음엔 사기인 줄 알았는데 다행히 그 기업 인사팀에 내 지인이 있어서 그 과장 이름을 물어보니 맞다고 확인해 주었다. 자기 회사에서도 그런 케이스가 없는데 그 과장이 워낙 강하게 밀어붙이고 회사에서 인정을 받는 사람이어서 면접 기회를 주기로 했단다.
사람 일이라는 건 이렇듯 정말 모르는 것이고 내가 어디에서 일하든 나를 보는 사람들은 나를 기억하고 기회를 줄 수도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열심히 일 할수록 시간은 빨리 가고, 그 일을 통해서 얻는 보람도 크다는 것을 경험을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있는 것보다 귀찮더라도 일어나서 헬스장에 나가 러닝머신 위에서 땀 흘리며 뛰면 그날 하루 컨디션이 오히려 좋아지는 것처럼 말이다. 타인을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서 그런 자세로 일을 하면 차곡차곡 나의 자산이 쌓일 거라는 건 정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