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센터 직원이 만만해?
퇴사 후 투잡을 뛸 때 잠깐 맥도날드 콜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콜센터 아르바이트를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바로 집 근처에 콜센터가 있었기 때문에 야간에 일을 하더라도 걸어서 출퇴근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또, 말로만 듣던 콜센터라니 뭔가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도 있었기에 선택했지만 카페 아르바이트와는 달리 배우는 재미가 전혀 없어서 두 달을 채 못 채우고 그만뒀지만 말이다.
일단 알바몬에서 구직 공고를 보고 지원하고 바로 면접을 보러 갔다. 실무 투입 후 간단한 교육을 받는데, 딱히 어려운 부분은 없었다. 진짜 어려운 건 역시나 사람이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지만 말이다. 일단 출근을 하면 빈자리로 가서 앉아서 근무시간이 되면 아이디 입력하는데, 입력과 동시에 바로 콜이 들어온다. 전국에 있는 맥도날드 콜이 다 양평역에 있는 이 콜센터로 와서인지 전국 각지에서 새벽까지 쉬지 않고 콜이 들어온다. 사람들이 이렇게 늦은 시각에도 자지 않고 햄버거를 주문한다는 사실에 놀랐었다. 정말 쉬지 않고 계속 콜이 들어오기 때문에 화장실 가는 것도 눈치 보이고 정말 후다닥 다녀와야 한다.
콜이 들어오면 첫 주문 고객의 경우에는 기존에 주문 내역이 뜨지 않기 때문에 집 주소를 물어보는데, 나의 상식으로는 주소를 불러줄 때 상대방이 받아 적을 시간을 주면서 좀 천천히 말하는 편인데 생각 외로 사람들이 랩 하듯이 빠른 속도로 말한다는 점. 그래서 다시 물어보는 경우가 허다하고, 또 고객이 말하는 주소와 검색 시 뜨는 주소가 다른 경우도 있기 때문에 고객이 화를 내기 전에 빠르게 여러 방법으로 검색해 가야 하는 점이 좀 힘들었다.
기존 고객의 경우 집 주소가 뜨긴 하지만 개인정보를 내가 먼저 불러줄 수 없기에 고객이 주소를 불러줘야 하는 것은 똑같다. 다만 이미 입력되어 있기 때문에 고객이 불러준 정보가 맞는지 눈으로 확인만 하면 되기에 훨씬 수월하다. 그런데 진상 보존의 법칙이란 말처럼, 주소를 불러달라고 하면 화를 내는 고객도 종종 있다
"거기 안 떠요?"
"네 확인이 되긴 하지만 저희가 고객님 개인정보를 확인시켜 드릴 수 없어서 불편하시겠지만 불러주셔야 합니다"
대략 이런 식으로 안내를 해주는데 한숨 쉬면서 짜증 난다는 듯 불러주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중 소위말하는 부자 동네나 이름만 대면 알만한 곳에 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콜이 들어오는데 이름만 들어도 아는 주상복합 아파트나, 대치동, 청담동 등등 그냥 딱 봐도 잘 사는 동네는 목소리 톤부터 다르다. 정말 상냥하고 마지막에 수고하세요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그런데 그냥 건물명이 없는 번지수만 있는 주소라던지 모텔이나 빌라 같은 경우 30%가량은 소위 말하는 교양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자기들끼리 대화하면서 정한 메뉴를 나한테 말했다고 생각하고 왜 두 번 말하게 하느냐는 둥, 또는 말투 자체에 이미 날이 서 있다거나, 케첩 많이 가져다주지 않으면 가만 안 두겠다는 협박을 하는 사람도 있다.
교양 있는 수준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그냥 상식적인 기본 매너만 바라는 것인데도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감자튀김의 바삭함과 케첩 10개를 바라는 사람은 어찌나 많은지, 케첩을 5개 달라고 했는데 4개 왔다고 다시 한 개 갖다 달라고 하는 고객도 있었으니 말 다했다. 사실 주변에서 그런 사람들을 볼 기회가 많이 없었기에, 그 사람들의 삶이 어떤지 굉장히 궁금해졌다. 매사에 날이 서있고 신경질적이고 자신의 말투가 상대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 모르는 사람들인지, 이곳이 콜센터라서 뭔가 자기가 갑이라는 생각을 해서 일부러 그러는지는 모르겠다.
다행히 맥도날드 콜센터가 좋은 점은 고객이 진상을 부리면 그냥 끊으라고 교육을 하기 때문에 고객이 진상짓을 한다 싶으면 그냥 끊으면 된다. 그리고 매니저에게 말을 하면 매니저가 통화 내용 들어보고 본인이 처리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콜센터에 비해 업무 강도가 낮다고 할 수 있겠다. 나도 그런 식으로 끊은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대학시절 방학 때 카페에서 총 4개월간 일해보고, 투다리에서 2개월 일을 해 본 것 외엔 20대에 아르바이트 경험이 전무했던 나였다. 서른 살이 넘어 이것저것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해보니, 왜 서비스직이 우울증에 걸리고 대인기피증이 생기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세상에는 정말 착한 사람이 있는 만큼 정말 나쁜 사람도 있고, 보편적인 상식을 갖지 않은 사람들이 상당수 존재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생각해 보니 편의점 회사를 다니면서 1년여 남짓 편의점에서 근무하면서 봤던 진상들이 스쳐 지나갔다. 맞아 어디에나 존재하는 그 존재를 깜빡 잊고 있었던 것이다. 개 짖는 소리라고 생각하면 딱히 큰 스트레스는 받지 않을 건데 장시간 앉아서 전화만 받아야 하는 부분은 생각보다 기운 빠지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재미있거나 창의적인 발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무언가가 없었기에 두 달가량 근무하고 그만뒀다.
확실히 나는 배울 게 없으면 의욕이 사라지는 사람이어서인지 당장 돈이 필요해도 돈보다는 보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아마 이런 성향 때문에 나중에 자소서 첨삭이나 면접 컨설팅을 5년 넘게 무료로 해줬던 이유일지도? 물론 이 일도 일부 무개념 장착 인간들로 인해 접어버렸지만 말이다. 생각해 보면 브런치 카페에서 근무할 때엔 진상 손님이 단 한 명도 없었고, 맥도날드 콜센터 알바를 하면서 슬슬 인간 혐오에 대한 감정들이 시작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INFP였던 내가 INTP로 바뀌게 된 계기도 호의를 베풀면 호구로 아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인 것 같다.
GS에 다닐 때 부서 이동을 위해서 면담을 한 적이 있었는데 나의 꿈을 묻는 부장님께,
"세계평화요"
라고 했던 게 떠오른다. 그 말을 해놓고도 내가 미쳤구나 라는 생각도 했고, 이건 무조건 떨어지겠다고 확신했던 답이긴 하지만 그 순간 정말 내 꿈이 세계평화였던 건 사실이었다. 그냥 세상이 너무 시끄럽고 왜 이리 남을 속이고 괴롭히고 상처 주는지 세상사 염증을 느끼고 있었던 터였다. 10년 넘게 비정규직의 삶을 살고 있는 내가 받는 대우는 꽤나 불친절한 부분들이 많다. 친절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불친절하지만 않으면 되는 이 사소하고 간단한 걸 바라는 게 그리도 힘든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