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惑(불혹)은 20세의 약관, 30세의 이립에 이어 40세를 뜻하는 말이다.
그 의미는 세상일에 정신을 뺴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었음을 뜻한다고 한다.
뜬금없이 무슨 말이냐 할 수 있는데, 마흔이 된 이후 나의 삶이 어떻게 바뀌고 이전의 나와 다르게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돌이켜 볼 때가 많다. 스스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질 때도 많고, 지나다니면서 보이는 풍경을 보면서 또는 사람들을 보면서 삶이란 무엇이고 죽음이란 무엇인지라는 생각을 종종 하는데, 요즘 나의 관심사는 삶과 죽음이다. 그러다 최근 운동을 하면서 문득 "염" 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되어 오래간만에 글을 적게 되었다.
나는 거의 2개월에 한 번씩은 염색(染色)을 하는데, 아무리 운동을 하고 피부에 좋은 것들을 먹고 바르고 안간힘을 써도, 흰머리는 어찌할 수가 없던 터라 지긋지긋하지만 이 염색이란 행위를 반복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것을 거스르기 위한 행위로도 볼 수 있는데, 이 染(염)이라는 글자로 세상을 바라보니 나름 재미있는 부분들이 있는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은 고유의 색을 갖게 되고, 그 색들은 자연의 섭리에 따라 또는 인위적인 행위에 의해 새로운 색들로 변화 또는 물들어 간다. 그리고 인간만이 죽음의 순간을 맞이할 때 殮(염)을 한다. 결국 "염"이라는 글자에는 삶과 죽음이 담겨 있다. 이런 언어의 유희야말로 한글이 갖는 재미이기도 하다.
染은 물들다는 뜻 외에도 전염되다는 뜻도 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라는 말들이 있듯 우리는 주변 사람들과 내가 속해 있는 조직의 영향을 강하게 받게 된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본인의 색을 잃지 않기란 사실상 쉽지 않다. 긍정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 주변 사람들은 그 영향을 받아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가진 힘이 얼마나 큰 지 알게 되고, 부정적인 삶의 태도를 가진 사람을 곁에 둔 사람들은 그것이 주변 사람을 얼마나 스트레스받게 하는지 알게 된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물들어'버리는 상황에서는 그것이 긍정인지 부정인지를 판단할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내가 그런 부류의 한 개체가 되기 때문이다. 가진 자의 권력이 당연하다는 가치관을 가진 사람의 무리나 조직에서는 그것이 잘못된 행위임을 자각하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타인에게 잔인한 권력을 휘두르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대한민국에 만연해 있는 배금주의 사상은 내가 중학교 때 경제 수업시간에 듣던 말인데, 2024년 현재 대한민국 20대들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관으로 강하게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런 사상이 자연스레 자리를 잡아가게 되면, 결국 돈이라고 하는 정량적 가치가 인생의 가치를 평가하는 척도가 되어버리는, 말 그대로 시대를 역행하는 시대가 도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흐름은 어느 누구의 작은 노력으로 쉽게 바뀌지도 않을 것이고, 결국 더욱더 깊은 세대 간의 갈등을 야기하게 될 것이다. 내가 요즘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는 부분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취업 컨설팅을 하는 입장에서 학생들 개개인의 이야기를 들어가며 각자에게 맞는 서사 라인을 잡아주며 면접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해 준다. 그런데 학생들은 눈에 보이거나 누가 봐도 내세울만한 스펙이 없는 경우에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다. 면접이란 결국 조직에서 같이 일 할 사람을 뽑는 것이기에 당연히 정량적인 부분들도 보지만 무엇보다 정성적인 부분을 굉장히 많이 본다. 특히 임원면접은 정량평가가 아닌 정성평가가 압도적으로 중요하다. 즉 스스로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들에 대한 자신감과 본인의 장단점, 스스로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얼마나 잘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데, 꽤나 많은 학생들은 이미 자신감이 결여된 상태에서 시작된다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컨설팅을 통해서 자신감을 찾아가는 학생들을 보며 꽤나 많은 보람을 느끼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 AI가 우리 일상을 얼마나 바꿀지, 얼마나 많은 인력을 대체할지 예측할 수 없지만, 그런 시대의 흐름 속에서 결국 자신만의 뚜렷한 가치관을 갖는 것은 무엇보다 강한 경쟁력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染이란 단어는 그래서 나에게 더 와닿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황금만능주의 사회로 자리잡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인문학, 예술, 종교 등을 통해 더 넓고 높은 세계를 바라보고 본인의 가치를 정량화시킬 수 있지 않게 해야 한다. 그래서 요즘 나는 매주 안국역에 있는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 미술에 대해 문외한이지만 존재하였음에도 내가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분야에 대한 접근은 좀 더 다양한 사고를 하게 하고 정서적인 안정을 주는 매력이 있다. 예술은 말 그대로 정량화할 수 없는 영역이니까...
여러 작품들을 보면서 만약 내가 예술을 하게 된다면이라는 가정을 해보니, 존재하는 다양한 사물들을 형형색색 물들이고(染), 인간만이 누리는 殮이라는 행위를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존중의 의미로 행하고 싶다...라는? 이 정도면 예술인병에 걸린 게 아닐까 싶지만 그냥 그런 상상들을 하면서 존재의 이유, 삶을 대하는 태도, 앞으로 어떻게 세상을 바라볼지에 대한 것들이 조금씩 방향성을 잡아가게 되는 신비한 매력을 느끼고 있다. 예전에 ㅅㆍ강대학교 콘텐츠 촬영 중 한 학생이 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인생의 롤모델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할 때 느꼈던 감정이 떠오른다. 나의 존재는 나에서 그치지 않고, 누군가의 삶의 방향성이 되어주는 부표처럼, 길 잃은 사람의 간절함을 해소해 줄 발자국처럼 그렇게 물들여 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 마주하게 될 끝을 걱정하고 두려워하기보다 그전까지 생명을 부여해 준 부모님의 감사함의 무게를 더욱더 절실히 느끼며 의미 있게 보낼 것이다. 이 글을 읽는 그 누군가도 오늘 내가 누리는 작은 행복에 감사함을 느끼며, 존재함으로써 존재하게 하는 영향력으로 물들일 수 있는 삶을 살길 바란다. 그러면 우리가 사는 이 사회도 갈등, 경계, 차별, 혐오가 아닌 존중, 배려, 포용, 사랑이 가득한 공간으로 바뀔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