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 속에 감춰진 조소
"이 나이에 회사를 그만두면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퇴사를 고민 중인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일 것이다. 집안이 유복하여 여러 도전을 해 볼 수 있는 사람과 단 한 번의 실패가 평생 돌이킬 수 없는 수렁으로 빠질 수 있는 나 같은 사람은 출발선이 다르다. 그렇기에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에선 본인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던 집안 환경, 학벌, 인맥 등이 최대한 가려져 있다. 마치 보통의 사람인 것처럼 보여야 누군가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심어주고 자신처럼 결국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믿게 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 강연을 듣다 보면 뭔가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기다가 하루 이틀이 지나면 다시 냉혹한 현실의 문턱을 넘지 못하게 되는 자신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나의 이야기는 정말 보통의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이야기이고, 그렇기에 나는 지금 성공한 삶이 아닌 10년 넘게 계속 처절하게 발버둥 치는 삶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 즉 나의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확신을 주거나 답을 제시할 수 없다. 다만, 여러분이 하지 못한 선택을 통해, 무에서 유를 창조해 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조금 더 현실적인 고민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20대엔 굳이 나를 어떻게 설명하지 않아도 어느 회사를 다닌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내가 스물여섯의 어린 나이에 대기업 직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성실하고 기본은 갖춘 사람으로 봐주었다. 그러나 30대 퇴사자가 되면, 처음에는 뭔가 목표가 있어서 대기업을 나왔겠지라는 시선으로 봐주며 향후 계획들을 물어본다. 딱히 계획도 없고, 나도 내가 뭘 해야 할지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이런 질문에 일일이 대답하는 것도 어느 순간 스트레스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 알바를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를 대하는 사람들 중엔 정말 나의 삶을 응원해 주고 기분 상하지 않게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보이는 한편, 묘한 우월감을 느끼는 사람도 보게 되고, 미소 속에 조소를 숨긴 이중성을 보게 된다.
일단 나는 엄청 예민한 성격이다. 까탈스러움을 말하는 것이 아닌 주변의 변화나 상대방의 표정 변화, 미세한 근육의 움직임, 태도의 변화등의 정보를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수집한다. 이런 성격을 예민하다고 하는지도 최근에 들어서야 알게 되었다. 어쨌든 이런 성향이다 보니 남들보다 촉이 좋고, 눈치가 굉장히 빠르다. 그렇기에 미소 속에 숨긴 조소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자기보다 능력이 좋거나 부유한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을 보면 질투심을 느끼게 되고, 자기보다 낮다고 생각되는 사람들 앞에서는 기세등등하거나 마음이 편해지는 현상을 겪게 된다. 다른 이유에서였지만 내가 손절한 절친도 이런 부류에 속했었다.
내 인생의 주요 관심사가 인간관계일 정도로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고 나름대로의 방대한 빅데이터가 쌓였기 때문에 내가 백수가 되었을 때, 최저시급을 받으며 아르바이트를 할 때 그들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의 변화를 뼈저리게 느꼈던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렇다. 여러분이 아마 퇴사를 하게 되고, 퇴사 후 명확한 목표를 두고 준비하는 과정이 아닌 일단 너무 힘들어서 그곳에서 뛰쳐나왔다면 여러분 주변에 있는 사람들 또는 사회에서 알게 될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느끼게 될 것이다. 즉, 내 말의 의미를 정확히 깨닫게 될 것이다. 나의 절친이 퇴사를 고민하고 있을 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회사를 나와서 최저시급을 받으며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주변 시선에 전혀 개의치 않거나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우울해지지 않을 자신 있으면 퇴사해도 돼"
실제로 내가 회사에 계속 다녔다면 나는 대기업에서 팀장 직을 맡아서 하고 있을 거고, 대출을 받아서 내 집 마련도 했을 것이고, 결혼도 했을 수 있다. 적어도 나와 비슷하게 또는 좀 더 늦게 회사 생활을 시작한 친구들은 다 이룬 부분들이고 이제는 어떤 차로 바꿀까를 고민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나는 저기서 단 하나도 갖은 게 없다. 즉, 이직이 아닌 일단 퇴사 후 자영업이 되었건 다른 일을 새로 시작하건 그게 잘 풀리는 경우를 제외하면 철저하게 경제적인 안정은 포기해야 한다.
회사를 다닐 때엔 이래저래 소개팅도 하고 여자친구도 사귀었지만, 퇴사 후 나의 삶은 오로지 나의 생계에 집중되어 있고, 여유로움과 안락함을 주는 나만의 공간과 결혼, 2세 계획 이런 것은 완전히 포기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비참해 보일 수 있지만, 이렇게 잃은 게 있는 것만큼 얻은 것도 많다는 것은 꼭 말해주고 싶다.
우선 자존감이 높아졌다. 이건 나중에 자세히 말할 기회가 있으면 말하겠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고 왕따를 당하거나 미움을 받는 사람도 아닌데, 그냥 사람 자체가 좋아서 주변에 사람이 끊이지 않는 그런 부류의 인간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렸을 때엔 나도 사랑을 받고 싶어서였는지 주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베풀고, 맞춰주는 삶을 살았고, 그게 잘못된 것인지 알지도 못했다. 그러나 생존 게임에 돌입한 그 순간부터 모든 기준은 내가 되고, 내가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서 나의 과거들을 회상하며 객관적인 검증 절차를 거치는 그런 과정들을 통해 타인과의 비교가 아닌 나에 대한 집중에 힘을 쏟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자존감이 높아지고, SNS에 도배된 부러운 삶을 그냥 하나의 구경거리 정도로 여겨질 뿐 나와의 비교를 통해 우울해지는 요소가 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경험의 가치를 얻게 되었다. 나의 경험은 결국 나의 자산이 되고, 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리고 별개의 경험이 결국 새로운 시작을 할 때 성공 가능성을 따져볼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즉 정보를 무분별하게 수용하는 것이 아닌 나의 성향에 맞게 선택적 수용이 가능해지고, 다양한 경험의 자산이 쌓일수록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AI가 인간을 대체하는 현실이 다가오고 있지만 나의 이야기나 가치는 AI로 대체될 수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된 것도 바로 이런 경험 때문이다.
결국, 퇴사를 선택 후 어떤 삶을 맞이할지 모르겠으나, 경제적인 여유와 안락함 그리고 물질적 만족을 통한 삶과는 좀 멀어진다고 보면 될 듯하다. 그러나 자기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은 결국 사회에 아무것도 없이 떨어졌을 때 가능한 것이라고 보기에, 자기 인생의 제2막은 거기서부터 시작할 것이다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어떤 가치에 더 비중을 두느냐는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적어도 남들과 비슷한 환경이나 남들 하는 건 어느 정도 해야 하고 여행, 쇼핑, 외식 등을 통해 얻는 만족이 좀 큰 경우는 퇴사에 대해서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길 바란다. 세상 일은 정말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말을 해주고 싶고, 잘 풀린 케이스는 극소수에 해당하며 그 극소수 중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은 평범하지 않음이 숨겨져 있다는 것도 간과하지 말길 바란다. 단, 부모님의 서포트나 인맥을 활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예외일 수 있겠다. 나는 그 두 가지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이기에 냉혹한 현실을 너무나 뼈저리게 알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정말 다행인 건 후천적 긍정주의 성향으로 인해서 이런 힘든 과정들을 나는 모험을 즐기는 일로 인식하고 재미있게 보내고 있다. 그 덕에 집도 없고, 차도 없고 정말 뭣도 없는 삶이지만 감히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친구들보다 노화가 좀 늦게 오는 것 같기도?
나는 모든 사람의 도전과 꿈을 응원한다. 그래서 주변에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는 동생들에겐 별 관심이 없지만, 뭔가 자기 손으로 뭘 해보려고 하는 동생들이나 친구들을 보면 정말 열정적으로 도와준다. 그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내 여력이 되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해 도와주고, 그러다 보니 그들도 마음으로 나를 따르게 됐던 것 같다. 일종의 전우애라고나 할까?
대한민국 어느 곳에서 남몰래 고민으로 밤을 지새우는 사람이 있다면 진심으로 응원해 준다는 말을 해주고 싶고, 내 이야기를 통해 "수심이 얼마나 깊은지 몰라서 못 들어갈 것 같은데 그래도 죽지 않을 정도는 되나 보네?" 정도의 자신감을 얻고 본인에게 맞는 결정을 할 수 있길 바란다.
이제 이어질 이야기들은 내가 실제로 했던 일들과 그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에 대한 내용들이다. 나는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해맑은 표정으로 묵묵히 걸어가는 40대 아저씨이다. 나의 도전이 당신들에게 작은 용기라는 불씨를 켜줄 수 있다면 너무 행복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