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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그리고 시작

인생 제2막이 오르다

by 준비

대학교 4학년, 군대 2년 4개월, 그리고 26세에 입사해 서른이 조금 넘어 퇴사하기까지 내 인생은 큰 변곡점이 없었다. 물론 속을 깊이 들여다보면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주변 친구들과 비슷한 루트로 평범한 길을 걸어왔던 것이다. 학군단 지원해서 장교로 복무한건 예상치 못한 선택이긴 했지만 딱히 그것 외엔 내 인생이 재미있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은 없었던 것 같다.


30대가 되면서, 아니 내가 퇴사를 하고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회로 뛰쳐나왔을 때 나의 재미있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물론 시간이 흘렀기에 재미있다고 말하는 것이지 지금도 30대의 나는 정말 처절하고 열심히 움직이며 30대를 보냈다.


일단 퇴사 후 다시 서울로 올라오면서 본가 인테리어를 싹 바꿔드리고, 이천만 원 정도가 든 통장을 들고 새로 시작을 했다. 말이 새로운 시작이지 그냥 백수라이프의 시작이었다. 회사 다니면서 주식으로 3천만 원 정도를 잃었기에 수중에 돈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본가 인테리어를 바꾼 이유도, 당시 아버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시고 홀로 남은 어머니가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생활하시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어쨌건 나는 서른 살 백수가 되었고, 뭘 해야 하나를 정말 오랫동안 고민했던 것 같다.


오랫동안 고민했다는 말은 어떤 결정을 하기 전까지 원 없이 놀았다는 말과도 같다. 평소 지인들한테 얻어먹는 것보다 사주는 게 훨씬 많았는데 백수가 되어서도 버릇을 못 고쳤는지 백수 주제에 이리저리 밥과 술을 사주고 다녔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돈이 떨어져서 생활비를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돈도 없는데 서울에서 어떻게 생활할 수 있었는지가 궁금할 수 있는데, 마침 아는 동생이 6개월 좀 넘게 어학연수를 가는데 집이 비니까 대신 월세를 내고 살 것을 제안했고, 흔쾌히 수락했다. 그렇게 이태원에서 8개월가량 거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는 친구가 자기 아파트에 방 1개가 비는데 월 30만 원씩 내고 살면 어떻겠느냐라고 해서 이 또한 흔쾌히 허락했다. 보증금도 필요 없고, 생활비는 친구가 다 부담하는 조건이어서 정말 몸만 쏙 들어가면 됐었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그렇게 3년 정도 같이 살고 따로 나와서 지금까지 혼자 살고 있다.


퇴사 후 30대가 내 인생 2막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전까지의 삶은 어느 정도 길이 있고, 가이드라인 같은 것이 있는 삶 같았다고나 할까? 그런데 30대 나의 삶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과도 같았다. 그곳에서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에 대한 답도 찾지 못했고, 뭘 해야 하는지도, 나의 꿈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그냥 샌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에 대한 답을 무작정 이것저것 시도해 보고 주변 지인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이상과 현실의 적당한 타협점을 찾아가면서 오로지 생존을 위해 나 하나에만 에너지를 집중하고 살았던 시기였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에서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퇴사 후 현실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려줄 수 있었다. 퇴사 후 나는 카페 알바, 동대문 도매시장, 콜센터, 입시과외, 역할대행, 광고모델, 단역배우, 취업컨설팅, 편의점창업컨설팅, 유튜브 등 20대의 내가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을 해왔고, 이 모든 것들은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의 삶이다. 불안정함의 연속에서 나이는 들어가고 미래는 불투명해지면서 스스로의 멘털을 다잡아야 했다. 누구에게 의지해서가 아닌 모든 걸 내가 결정하고 선택하고 책임져야 하는 상황 속에서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니 나는 생각보다 단단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물론 아직도 물렁한 구석이 있지만 20대의 나와 30대의 나를 돌아보면 단순히 나이에서의 차이가 아닌 처한 환경이 영향으로 많은 변화와 성장이 있었다.


앞으로 내가 본격적으로 써 내려갈 이야기들은 아마 새로운 시작과 도전, 그리고 불안한 삶의 연속이었단 30대의 모습일 것 같다.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들에 국한되서가 아닌, 인생에 닥친 불행한 순간들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고 웃음을 잃지 않을 수 있는지 등을 나를 통해 배우고 위로받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본격적으로 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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