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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앞에 양심을 버린 의사

법이 정의는 아니

by 준비

주 4회 운동을 실천하기 위해 시간 나는 대로 열심히 헬스장으로 출근하는데, 어떤 할머니가 치과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불현듯 27살 즈음 치과에서 의료사고를 당했던 그때가 떠오르면서 남 일 같이 느껴지지가 않았다. 전역 후 군대 동기들과 낙성대에 있는 동기 집에 모여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2박 3일간 거하게 술을 마시며 놀았다. 우연히 낙성대 역 앞에 치과를 보고, 미루고 미뤘던 신경 치료를 받기로 하고 들어갔다. 치과란 본디 미루고 미루다 결국엔 갈 수밖에 없는 곳이 아닌가. 나만 그런가?


여하튼 신경 치료를 받고 나중에 한 번 더 방문해서 치료를 받은 후, 낙성대까지 다시 가기 귀찮아서 동네 치과로 가서 신경치료를 받는데 첫 방문이어서 그런지 엑스레이를 찍었다. 근데 의사분이 "어? 잇몸에 뭐가 박혀 있네요?"라는 것이었다. 무슨 영문인가 싶어 엑스레이를 봤더니 실처럼 가느다란 무언가가 오른쪽 어금니 밑 잇몸에 자리하고 있었다. 의사 말로는 이전 치과에서 치료하다가 파일이라고 하는 신경치료 기계 일부가 끊어져서 박힌 것 같다고 한다.


"어? 그럼 거기서도 끊어진 거 알았을 텐데 일부러 말을 안 한 거네요?"


같은 치과의 사여서였을까? 말을 최대한 아끼길래 일단 알았다고 하고 낙성대 역 앞에 있는 해당 치과로 향했다. 인포데스크에 해당 상황을 말했고 그 부분 관련 보상이나 해결해 준다는 얘길 듣고 화난 마음을 좀 가라앉히고 잠시 기다린 후 의사와 면담을 했다. 근데 이 의사는 자기가 무슨 잘못한 것처럼 따지는 것이 불쾌하다는 반응이었다. 자기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어차피 이건 의료사고도 아니다는 말이었다. 그 순간 피가 거꾸로 솟아서 앞에 놓인 명패로 머리를 찍을 뻔했으나 다행히 마지막 한 가닥 이성이 붙잡아 논리 정연하게 말했다.


"의료사고이건 아니건 그건 본인이 결정할 문제는 아니고 무엇보다 이게 끊어진 걸 알았을 텐데 모른 척 넘어간 건 어떻게 생각해요?"


이 놈의 치과의사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당장 이 사람을 팰 수도 없고, 치과에서 난동을 피울 수도 없는 노릇이라 결국 엄청 분개한 상태에서 치과를 나와 소비자 보호원에 연락을 했다. 힘들게 힘들게 전화 연결이 되어 상담을 하는데 그 파일이라는 의료기구 특성상 얇고 가느다랗기 때문에 부러질 수 있고, 의료사고로 보기엔 어렵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냥 치료받기 위해 치과를 갔고, 나의 과실이 전혀 없는 상태임에도 내 잇몸에 그 파익 조각이 박혀있는 것에 대해 누구에게도 따질 수 없는 게 우리나라 법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 당시 변호사를 찾아가서 상담을 받았다면 다른 결론이 나왔을지 모르지만 왜 그랬는지 나는 소비자 보호원에서의 답변만 가지고 넘어간 게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리석었다.


잇몸에 이 파일 조각이 박혀있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를 모르고, 또 빼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서 치과가 아닌 신촌에 있는 세브란스 병원으로 향했다. 내 상태를 진찰하던 교수님께서는 이게 신경 부근에 자리 잡고 있어서 자칫 빼려고 수술을 하다가 혹 신경을 건드리면 마비가 올 수도 있다고 했다. 그게 상반신인지 하반신인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어찌 되었건 수술을 하기엔 리스크가 있으니 경과를 지켜보자고 했다. 의료기구라서 위생 상태는 문제가 없을 것이니 혹 저대로 두어서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으면 그냥 그대로 사는 게 맞고 혹 문제가 생기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눈앞이 막막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잇몸에 품고 사는 느낌이랄까. 일단은 아무 일 없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불행 중 다행히도 15년간 특별한 징후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끔씩 이게 안에서 움직여서 신경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 거지 라는 두려움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세상살이에 바빠 그 존재를 잊고 살다가 오늘 그 할머니를 보고 잠시 묻어두었던 걱정과 공포심이 엄습해 왔다.


작년 한 해 의료사고 손배소송이 사상 최대치인 1,100건을 기록했다고 한다. 매년 증가해오고 있고, 천 백 명이나 되는 사람이 의료사고로 피해를 입었지만 과연 이 중 몇 건이 우리의 손을 들어줄까. 의료사고 관련 소송은 대부분 의사의 승리로 끝나는 것이 현실이다. 나 같은 경우도 그냥 재수가 없던 걸로 쳐야 하는 어처구니가 없는 현실이고, 법은 나의 억울함을 해결해 주지 못한다.


그래서 양심이 중요하다. 세상 모든 일을 법이 해결해 줄 수 없기 때문에, 비단 의사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양심과 책임감이 중요하다. 눈앞에 놓인 책임을 뒤로하고 양심을 묻어버리는 이유는 단 하나다. 돈! 모든 비리와 권력 남용의 시작은 결국 돈과 함께이다. 그래서 부정부패가 끊이지 않고, 돈이나 권력이 없는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은 법적인 문제가 발생되었을 때 높은 확률로 패자가 된다. 돈이 많은 사람은 비싼 변호사를 고용하고, 비싼 변호사들은 승소를 보장하니, 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법은 가진 자가 계속해서 가질 수 있게 만든 부자들을 위한 장치라는 말이 도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무엇보다 개개인의 양심이 중요한 게 아닐까.


비단 가진 자가 아닌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얼마나 비양심적인 행태들을 많이 볼 수 있나. 휴대폰 대리점, 중고차 시장, 광장시장 등등 이제는 무조건 깎고 시작하지 않으면 손해 보는 세상이다. 개인적으로 흥정하는 걸 극도로 싫어하기도 하고, 세상 물정을 몰랐을 때는 부르는 값 그대로 주고 휴대폰을 구매했다. 친구는 내게 "네 덕분에 저 대리점 오늘 회식했겠다"며 혀를 찼는데, 왜 사람들은 그렇게 다른 사람을 속이며 사는지 참 답답할 노릇이다. 만약 그런 일을 겪으면서 내가 "그래 이게 생존 전략이면 나도 그냥 내 이익만 챙기면 되는 거지"라고 생각했다면, 아마 편의점 회사 다니면서 여럿 피눈물 흘리게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엄청 양심적인 사람이라고 자부하진 않지만, 그런 일련의 상황들을 지켜보거나 겪게 되면 머리가 참 복잡해진다. 그런 답답한 마음들을 요즘은 글을 씀으로 인해 많이 해소되는 것 같아서 일기를 쓰듯 자주 글을 쓰게 되는 것 같다.


모두가 평범하게 보통의 하루를 보낼 수 있는 날은 절대 오지 않겠지만, 그런 날이 오지 않기에 나까지 진흙탕 속으로 뛰어들 필요는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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