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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앙성 산문 06화

머슴이 봄에 게으르면 가을에 편하다

전원생활 팁 Part 1- 겪어보고 터득한 나름의 지혜

by 시준

전원으로 옮겨가던 몸과 마음이 들떠있던 시절을 돌아본다. 동네 초입부터 이어지는 복숭아꽃, 뒷산에 진달래꽃이 만발한 동네에 취해 푹 꺼진 골짜기 논을 충동 쇼핑한 것부터 한겨울에 집짓기, 두서없는 조경공사까지 적당히 저지른 시행착오로 머릿속에 잡다한 팁이 적잖이 쌓였다.

집 짓고 동네 주민이 되어 살면서도, 꿈꿔왔지만 낯설던 환경에서 이런저런 시행착오는 계속된다. 혼자만의 충동적 상상에 감탄하고 무언가에 홀린 듯이 덥석 저지른다. 반대로 장고 끝에 둔 악수(惡手)도 있다.

사유재산 보호받는 영지(領地)의 영주이자 머슴으로 내 영지 내에선 내 맘대로 돈 쓰고 실험 삼아 일을 벌이고 후회하다 결국은 고치고 다시 하는 경험은 아직 진행형이다. 시간 지나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를 반복하는 것은 멍청한 것일까 자연스러운 것일까? 내 자존감을 살린 답은 ‘자연스러운 멍청한 짓’이다. 다 살아가고 있다는 반증인 셈으로 치자고 스스로를 달랜다.


이 자연스러운 멍청한 짓들이 밑천이 되었는지 전원에서의 여유로운 생활을 꿈꾸며 시작하려는 분들을 보면 뭔가 말해주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다.

전원생활에서 얻는 재미의 절반은 식물을 가꾸고 생활을 단순하게 정리하는 재미라고 생각한다. 전원에서의 소박한 일상을 지치지 않고 오래도록 즐기려면 식물에 관심을 갖고 찾아보고 느긋하게 관찰하자. 식물과 벗하며 게으른 영주가 되기를 원하는 분을 위한 전원생활 철학과 은유적인 생활팁 3가지를 Part 1으로 골랐다. 번호를 붙였다고 해서 Part 2가 꼭 이어질지는 모르겠다. 천천히 커피 한잔과 함께 읽으시길~




전원생활 팁 1: 머슴이 봄에 게으르면 가을에 편하다

잡초 뽑고 베기, 어질러진 헛간 정리, 쌓이는 낙엽 쓸기 등등 시골살이 일상 노동의 상당 부분은 들여다보면 ‘정리활동’이다.

있는 것보다는 없는 것이 좋을 때 그것을 없애는 수고, 시간 따라 계절 따라, 혹은 엔트로피의 법칙에 따라 자연히 어질러진 것을 내가 원하는 상태로 되돌리는 수고이니 땀 내고 허리 아프게 다 해 놓고 봐도 일을 몸소 행한 본인만 알 수 있을 뿐 현재의 상태만 보이는 제삼자의 눈에는 주인장이 무슨 노력을 했는지 티가 나지 않는다. 즉 일 같지 않은 일이 대부분이란 얘기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마님의 일상 활동의 상당 부분도 비슷해 보이지만 그 일이 하루라도 멈추면 재앙이니 완전히 다르다! )

씨앗을 파종하고 옮겨 심고 기르는 생산활동이나 생산물을 걷어들이는 수확활동과는 달리 결국 홀로 흡족해하며 위안 삼거나 남의 눈을 위한 일이 정리활동이다. 따라서 좀 미루거나 느긋하게 두고 봐도 될 정리 활동에 시간 배분의 우선순위를 둘 필요도, 때를 정해서 서두를 필요도 없다는 것을 깨달으니 나의 게으름에 스스로 편안해진다. (나는 불과 3년 만에 깨달았다.)

정리 활동은 눈에 띄어 마음에 내키면 천천히 나 홀로 즐기면서 할 일이다. 전원의 영지에서는 남의눈으로부터 자유로워지자.

시간 들여 정성을 쏟아 열을 내며 해야 할 일은 아니라고 강조는 하지만, 깔끔하고 부지런한 분에겐 참으로 어렵고 배우기 힘든 일이 바로 ‘게으름의 미덕’ 일 것이다.


그렇다면, 흙을 만지고 작물을 재배하는 생산 활동은 어떤가?

전원생활에서 생산활동은 다 때가 있는 것이니 때맞춰서 해야 하는 것은 맞다. 다만 꼭 필요한 것만 느긋하게 뿌리고 심기를 ~ 심는 작물의 종류도 서서히 늘려가고 심는 양도 점차 늘려간다는 마음으로 즐겨야 내년 봄에도 즐길 수 있다. 무엇이든지 조금씩 부족하다고 느끼고 아쉬워해야 오래간다.


봄이면 이것도 심고 저것도 심고 요것도 심자고 채근하는 마님을 보면서, ‘봄에 게으르면 가을에 편하다’는 진리급 요령을 알아버린 머슴은 딴청을 부린다. ‘여유로움의 미덕’이 몸에 베였다.


밭을 만들고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심는 것부터 해충의 공격과 날씨 변덕, 호시탐탐 훼방꾼을 견디고 재배하는 노고는 작물의 가짓수와 재배량에 비례한다.

농작물은 단순히 수확하는 것으로 일이 끝나지 않는다. 수확하고 다듬고 저장하고 부산물과 폐기물처리까지 일이 쌓인다. 시장에 내다 팔 수 있을 정도의 재배 기술이 없고 판매의사도 없는 대부분의 전원 생활인에겐 무엇보다 보관과 자가 수요의 예측이 중요하다. 이웃과 나눔도 이런저런 이유로 시들해지기 쉽다. 제철 혹은 한 계절의 시간이 지나면 변하고 못 먹게 되는 것이 농산물이다. 부지런히 심었다가 못 먹고 상해서 버린 식재료의 량은 딱 넘쳐난 의욕만큼이라고 보면 된다.


지피지기는 전장(戰場)의 원칙만이 아니다. 전원을 바라보며 두 팔과 삽과 호미로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를 아는 깨달음은 금방 온다.

‘제발 저것 좀 바로 치우자’고 재촉하는 마님께 ‘잊고 있으면 그대의 상상은 현실이 돼있을 거요’ 하며 염장을 지를 만한 느긋함의 도를 아는 경지에 이르렀다. 한 오 년 자연 속에 살다 보면 이렇게 속성으로 도사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전원생활의 묘미다.

길게 가려면 천천히 게으르게, 봄엔 서두르지 말고 안단테~ 안단테~



전원생활 팁 2: 적자생존 - 순응의 철학

집을 짓고 주변이 휑해 보여 나무를 욕심내어 마구 심었다. 그중에 집 뒤편에 무화과나무 묘목을 심어 동사(凍死)시킨 적이 있다. 어릴 적에 남녘 우리 집 마당에서 여름 내내 달디 단 무화과를 형제들의 입에 내어주고 넓은 이파리로 그늘을 만들어 주던 추억의 무화과나무를 상상하고 심었다.

무화과나무가 무성하게 자란 모습만 상상하고 의욕을 앞세우니 따져보지 않고 애써 묘목을 구하고 정성으로 심었지만 그해 겨울에 죽였다. 식물은 발이 없어도 불평도 하고 기쁨도 표시하고 말없이 좌절하기도 한다. 부디 사는 곳의 위도와 기후환경을 생각하고, 스스로의 관리 능력에 맞는 동식물만 그대의 영지에 들이는 것이 정신 건강에 바람직하다.

온대지방에서 멋지게 꽃 피우는 식물을 겨울이면 영하 15도 아래로 떨어지는 산골 마당에 심어 놓고 노심 초사하며, 겨울이 오기 전에 애써서 싸매 주고 구근을 땅에서 캐어내서 실내에 보관하는 수고는 권하고 싶지 않다. 물론 ‘너무나 이쁜 달리아꽃을 보는데 구근을 캐어내고 다시 심는 수고쯤이야’ 하시는 분에겐 미적 감각과 그 관리 능력치에 진심으로 박수를 쳐드린다.

게으르면서 의욕만 넘쳤던 처음 몇 년은 나무를 추위로부터 보호하는 농자재를 구입해서 배롱나무의 복잡하게 구부러진 작은 가지까지 정성스레 싸매고, 글라디올러스 구근을 캐내어 보관하는 수고를 기꺼이 했다. 매년 늦가을의 연례행사였지만, 그럼에도 봄이면 배롱나무 가지들은 동해를 입었고, 파내어 보관한 온갖 구근을 다시 심으면 심은 만큼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봄이면 땅이 녹았나 싶을 때, 심었다는 사실마저 잊고 있던 수선화가 새끼까지 데리고 일제히 푸른 싹을 내밀어 솟아 나와 노랗고 하얀 꽃을 피웠다.

‘지난겨울도 견뎠노라!’

소리치듯 활짝 인사하는 것을 보고 깨달음이 왔다.


내 영지엔 ‘적자생존의 규칙을 적용하리라.’ –


노동 품이 덜 드는 정원을 지향하면 전원에서 훨씬 더 여유로움을 즐길 수 있다. 가꾸려는 식물이 어떤 환경에서 잘 자라는지 우선 공부하여 알고 심기를 권한다. 찾아보면 자료는 인터넷에 널려 있다. 식물의 동사(凍死)는 욕심과 어리석음으로 식물을 괴롭힌 결과이다. 얼어 죽일 일 없는 남녘의 땅주인들이 부럽다.



전원생활 팁 3: 꽃을 보면 주렁주렁 열매가 보이는 상상력

나무나 화초를 심기 전에 그 식물의 자란 후의 크기를 상상하는 습관을 들이면 돈을 아낄 수 있다. 그런데 살다 보면 상식적인 상상을 제대로 하는 것이 의외로 쉽지 않다. 아마도 나무가 자라는 모습은 보지 못하고 이미 자라서 자리 잡고 있는 것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의욕이 충만할수록 더욱 그렇다.

어리고 작은 묘목이어서 집 가까이에 심었는데 이삼 년 지나자 부쩍 자라서 집에 너무 바짝 붙여 심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 이미 어쩔 수 없는 낭패다.

잘못 심었다는 것을 깨달으면 과감하게 베어내든지 가급적 서둘러 나무를 옮겨 심어야 하는데 말처럼 쉽지 않고 차일피일 계절이 지나다 보면 삽으로 파서 옮기기엔 늦을 때가 있다. 미적대다 결국 제 손으로 베어내는 가슴 아린 아픔을 겪거나 심하면 중장비를 동원해야 하는 소동을 겪게 된다. (해본 자는 그 번거로움을 알리라)

전원에 집을 짓고 정원을 가꾸어 온 지 10년이 넘다 보니 무성해진 나무를 보며 뒤늦은 반성이 지혜로 포장된다. 낭패 보기 전에는 깨닫기 어려운 것이 어처구니없게도 ‘상식’이라 불리는 팁이다. 특별히 번호를 붙여 강조해 보면,


1. 집 외벽에서 1m 이내에는 식물을 심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너무 허전하다면, 잔디류나 백리향 같은 지피식물이나 창가에 예쁜 장미 한 그루 정도가 최대 허용치이다. 다만 지피식물에도 장미에도 벌레는 꼬인다는 것을 알자.


2. 집의 기초에서 3m 이내에는 어떤 관목도 심지 않는 것이 좋다. 나뭇가지는 자랄수록 다가오고 나무뿌리는 생각보다 훨씬 넓게 뻗는다.


3. 집의 기초에서 10m 이내에는 어떤 교목(키가 8m 이상으로 크게 자라는 나무)도 심지 말라. 마당이 넓어도 교목을 심는 것은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 뿌리는 깊고 넓고 굵고, 큰 나무 그늘은 다른 식물을 괴롭힌다. 시행착오를 겪어본 사람은 공감할 것이다.


4. 이웃과의 토지 경계 가까이에 높이 자라는 나무는 심지 말라. 나라도 이웃도 모두 경계에서 탈이 나고 싸움이 붙는다. 이웃하는 밭 가까이 오직 아름다운 마음으로 5년생 은행나무, 벚나무 묘목을 심었다가 남의 밭에 드리울 나무 그늘이 무서워서 굴착기를 동원해서 개울가로 옮겨 심었다. 10년도 안되어 벚나무 한그루가 만드는 그늘이 열 평이 넘는다. 나무는 생각보다 빠르게 또 우람하게 자란다.


봄꽃을 보면서 가을 열매를 얘기하면, 김칫국마신 다는 핀잔을 들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떠올리는 것이 계절을 즐기는 자연 속의 인간이다. 하얀 사과 꽃을 보며 주렁주렁 맺힌 빨간 사과를 보고, 어린 묘목을 보면서 우람하게 자란 상록수의 숲을 떠올리는 연상(聯想)과 상상의 묘미가 해를 더하다 보면, 지나가는 어린아이를 보면서 늠름하게 자란 청년, 멋진 젊음을 보게 되어 존중하며 애정하는 마음으로 대한다.



일이 낯선 초보에겐 이마를 치면서 감탄할 만한 생활 팁들이 알고 보면 이 바닥의 너무나 빤한 상식일 때가 있다. 요긴한 생활 지식은 스마트폰 켜고 손가락으로 찾아보면 차고 넘치니 얘기하다 보면 대부분 오지랖이다.

수십 년 몸으로 터득한 프로 농부의 지나가는 말 한마디가 한 해의 농사에 얼마나 도움을 주는지는 겪어봐야 아는 것 같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천지차이다.

그동안 어쨌거나 다행스럽게도 나의 손실은 있었어도 남에게 해를 입힌 실수는 없었다. 그래서 경찰이 출동한 적도 없다. 지나 보면 다 별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려니 하면서 약간의 반성과 함께 환경에 순응하고 스스로 자리 잡아간다. 시행착오는 멍청한 듯 자연스럽게 일과 시스템을 제대로 배우는 과정이다. 해보고 실수한 걸 아는 것 (trial and error) - 인간적인 발전 모드 아닌가? 둘러보면 용의주도한 분들은 대개 전원생활을 꿈꾸지 않는다. 제법 용의주도한 편이라 믿는 이 몸도 꿈꾸니 시행착오가 습관이 되었다.

눈길을 끌도록 팁으로 포장했지만 필요한 분들의 마음에 와닿을지는 의문이다. 그래도 일단 읽어 보셨으니 세월이 지나서 이 심심한 얘기를 다시 읽어 보시면 수긍하시리라 믿는다.


사족이지만, 이글에서의 팁은 ‘은밀한 정보’를 뜻한다. (레스토랑에서 웨이터에게 건네는 Tip, To Insure Promptness가 아니니 오해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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