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물수건 가져다 줄 사람 하나 없이 덩그러니 혼자구나 하는 외로움... 이러다 진짜 혈액 검사하기도 전에 뭔 일 나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 호랑이에 물려 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된다는데 정신줄 놓지 말고 있어야지 하는 어떻게든 살고 봐야겠다는 긴장감...
그리고 만약 온다던 의사쌤이 이번에도 혈액 채혈을 실패하면 이러다가 진짜로 목에다 관 꽂게 생긴 건가? 하는 두려움....
혹시나.., 여기서 내가 잘못되면 가족들을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걸까? 하는 공포....
이런 꼬리에 꼬리를 무는 감정 들이 열이 올라 터질 것 같은 머릿속을 떠다니느라 그 와중에도 바빴다.
그 감정의 조각들은 마치 물속을 헤엄 치는 작은 물고기 떼처럼 마음을 헤집고 다니며 나를 더 힘겹게 했다.
그중에서도...
아무도 없는 곳에서 열이 40도가 넘게 나고 있는데...당장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언제 올지 모르는 의사쌤을 기다리는 것과 직접 뒤뚱 거리며 화장실로 가서 찬물수건을 만들어 머리에 얹고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과 몇 시간째 오가는 사람 하나 없이 외딴곳에 방치되어 있는 듯한 고립감이었다.
만약....이러다가...혹시나...
로 시작되는 수많은 물음 들은 나도 모르게 눈물을 만들어 냈다.
눈물이 주르륵주르륵 쉴 새 없이 볼 위를 타고 하염없이 내려가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내 입원실 방문을 열고 들어 왔다....
누구지?
어? 그 누군가는.. 나를 처음 이 코로나 병동으로 데리고 온 간호사 쌤이였다.
"아니 코로나 테스트에서 음성이 나왔는데 내가 왜 코로나 병동으로 가야 하나요?"라는 나의 물음에 "열이 나니까요"라는 간단하고 서늘한 말로 내 말문을 닫았던 씩씩한 포스의 카리스마 넘치던 간호사 쌤 그녀였다.
그날 밤 이후... 그녀를 본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그 씩씩이 쌤은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열을 재고는 39도 7부네요 라는 말과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는 바로 다시 방문이 열렸다.
그녀는 말없이 티슈 통을 내게 건네주고는 "가족들에게 전화해 보세요"라는 말을 남긴 체 다시 사라졌다.
아마도 혼자 훌쩍 거리며 울고 있던 것을 알았나 보다.
아이처럼 훌쩍거리고 있던 것을 들킨 것에 조금 창피했지만 기대 하지 않았던 다정함...
말하지 않았어도 누군가 내 맘을 헤아려 주었다는 것이 코끝을 찡하게 했다.
마음을 다잡고 씩씩이 간호사 쌤이 권했던 것처럼..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핸디 너머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나도 모르게 폭풍 오열을 하며 지금의 상황을 이야기했다.
마치 엄마에게 이르는 아이처럼...
모르는 사람이 들었다면 어.. 어... 어... 꺼이꺼이... 흐느낌이 말을 삼킨 듯한 그 소리들을 당최 뭔 소리인지 못 알아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20년도 넘게 함께 한 남편은 그 모든 말들을 용케 알아듣고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병원 규정상 내가 가서 채혈해 줄 수도 없고 어쩌겠니 다른 방법이 없다면 목에 카테타 해야지. 위험하지 않아. 노인 분들 에게는 자주 하는 방법이야. 고생한다. 그러니 앞으로 아픈 환자 들 에게 더 잘해드려야겠지?"
평소에도 팩트 장인인 남편에게 살가움이 뚝뚝 흐르는 위로를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조금 더 안심시켜 주고 위로해 주기를 바랐던 마음에는 어느새 섭섭함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남편의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똑떨어지는 멘트와 노인이라는 단어 그리고 마지막 문장 이 나를 묘하게 자극했다.
어떻게 전화를 끊었는지 모르게 남편 과의 통화를 마무리하고는 나는 눈으로 허공에 삿대질을 하며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마치 비 오는 날 광뇬이 처럼...
"아니 50대 초반인 마누라가 목에 관 뚫게 생겼다는데 노인들에게는 자주 하는 일이야? 그게 할 소리니?"
"그래 남편의 다른 말이 남의 편 이라지... 마누라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개고생하고 있는데... 환자들에게 더 잘해드려야겠지? 지금 니 이 와중에 직원 교육하니? 퇴원만 해봐라 씨.."
어쨌거나... 힘내기를 바라서 일부러 자극하려고 한 멘트들이라면 남편... 통했다..!
남편에게 서운해서 없던 힘이 두 주먹에 그러모아지고 있을 때쯤...
씩씩이 간호사 선생님이 다시 내 입원실 안으로 들어왔다.
열이 오른 지 다섯 시간이 다 되어 가고 울고 있던 내게 그녀가 티슈 통 가져다 준지 두 시간 남짓 되었을 무렵이었다.
그녀는 내 채온을 다시 한번 재 보더니 이대로는 안 되겠다며...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조금 후....
손에 몇 가지를 들고 나타난 씩씩이 간호사 선생님은 내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지금은 코로나 병동으로 파견 나와 있지만 사실 저는 응급실 전담 간호사예요 그래서 채혈을 할 수가 있어요. 이렇게 열이 높은데... 의사 선생님이혈액검사하고 간수치를 확인해야 해열제를 드릴수 있다고 하니 제가 한번 해보려 구요.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독일의 병동 입원실 에서는 간호사 선생님들이 환자의 혈액 채혈과 정맥주사 카테터 등을 할수 없도록 되어있습니다.그병동 담당 의사 선생님들 만이 할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그와는 다르게 응급실 또는 응급센터 간호사 선생님 들은 혈액 채혈 그리고 정맥주사 카테터 등을 할 수 있도록 따로 교육받은 사람들에 한해 허가되어 있습니다.
나는 그녀가 이렇게 길게 이야기했다는 것과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자발 적으로 나를 도와주기 위해 다른 일도 많았을 텐데... 다시 와 주었다는 사실에 감동했다.
그녀는 코로나 병동의 규정에 따라 마스크뿐만 아니라 의료용 고글, 방호 가운, 등을 모두 갖춰 입고 앉았다 일어났다 이쪽으로 저쪽으로 땀을 삐질 삐질 흘리며 어떻게든 혈관을 찾아보겠다고 동분 서주 했다.
양팔, 손목, 손등, 양발 할 것 없이 혈액을 채혈할 수 있는 모든 곳을 샅샅이 훑고는 차례대로
채혈을 시도했다.
수시로 바늘에 찔리는 것은 고통스러웠으나 이렇게나 최선을 다해주는 간호사 선생님 이 너무나 고마워 얌전히 모든 것을 그녀에게 내어 맡겼다.
그러던 순간...
오른쪽 손목에 작은 혈관을 찾은 간호사 선생님은 심마니 아저씨들이 기쁜 듯이 "심봤다! " 하고 외치듯...
"찾았어요.. 여기!"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혈액 검사용 통을 채울 수 있는 적당량의 채혈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나보다 더 안타까워하던 그녀는 동료 간호사가 부르러 올 때까지 다른 곳에는 혈관이 없을까? 고민하며 살펴보아 주었다.
나는 "선생님 이제 가 보세요. 저 괜찮아요 이렇게 애써주신 것 만으로 충분해요" 했다.
씩씩이 간호사 선생님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가 없네요. 이제 곧 의사 선생님도 오실 거예요. 그분 혈관 잘 찾는 분이니 분명 성공하실 거예요"라는 말로 나를 위로하고 동료와 함께 내방을 나갔다.
나는 비록 채혈에는 성공하지 못해 혈액검사를 보낼 수 없었고 해열제 또한 받을 수 없었지만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해 주고 안타까워해 주던 간호사 선생님 덕분에...
몇 시간 전 아무도 오가지 않는 코로나 병동 입원실에서 고열로 어떻게 되어도 아무도 모르겠네... 하던 두려움에 굳어 가던 마음이 푸딩처럼 말랑해졌다.
그날...
안 그래도 힘든 코로나 병동 일을 하며 조금이라도 쉴 수 있는 시간을 내어 놓고 고열에 시달 리고 있는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해주었던 씩씩이 간호사 선생님...
카리스마 넘치던 강렬한 첫 만남과는 다르게 한없이 따뜻했던 그녀의 반전 덕분에 그날 오기로 한 의사 선생님을 몇 시간 더 기다려 혈액 채혈에 성공할 수 있었고...
고열에 시달린 지 10시간 만에 수액과 해열제를 맞을 수 있게 되었다.
다음 편 계속....
To 애정 하는 구독자님들께
이제 독일 코로나 병동 리얼 후기는 마지막 한편을 남겨 두고 있습니다.
원래 자기가 격은 일은 세상 무엇 보다 특별하지 않습니까?
제게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했던 일이었지만 다른 이야기를 기다리시는 분들은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곧 다른 이야기도 들고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