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럴려고 독일에서 한국요리 강사 하고 있나 자괴감 들고...
엊그제 한국요리 강습이 있었다.
여러 해 동안 독일의 문화센터에서 한국요리 강습을 해 오면서
화나고, 쪽팔리고, 슬프고 의
무한 반복이던 이렇게도 버라이어티 한 심정이던 적이 내가 있었던가?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 보아도 결단코 없었다.
정말이지 이번 강습은 내게 흑역사로 오래 기억될 것 같다.
그 흑역사의 C발점 은 이러했다.
언제 인가부터
최순실 게이트, 독일 중부, 프랑크푸르트, 헤센주, 최순실 정유라 독일 집
독일 검찰, 최씨 모녀 잠적 등...
인터넷에 독일과 그 모녀의 관한 검색어로 도배가 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최순실 국정 농단이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며
전국의 국민들과 해외의 교포들을 충격과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은
대한민국 역사상 전무후무할 믿을 수 없는 사건들이
하나 둘 파 헷쳐 지고
이제는 더 이상 놀랄 것도 없겠다 싶을 만큼 기막힌 기사들이 자고 일어나면 앞을 다투어 터지면서
별의별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검색어 들과 패러디 들이 인터넷 상에 쏟아지던 어느 날
요즘 내가 글을 올리고 있는 브런치의 글 들 중 하나에 댓글 이 달리며 알림이
들어왔다.
처음엔, 거기가 독일의 어느 지역 이냐? 는 댓글로 시작해 그 후 몇 번의
수정을 거친 것으로 보이는 그 댓글을 요약하자면
한국의 모 공영 방송팀의 막내 작가인데 케이푸드 관련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내 글을 재밌게 보고 취재를 하고 싶다며
나와 전화통화를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왜? 독일 깡촌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 한국의 공영 방송 작가가
취재를 하고 싶다는 걸까? 그것도 국제전화로?
뭔 일 이길래? 라며 슬슬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는
독일 헤센주 북쪽으로 숨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최순실이 덴마크 경유
급 한국으로 귀국해서 최순실 대리설이 나돌고 있던 때라 새삼 다시
독일 중부 북쪽에 대한 관심이 생겼을 리도 없고 그모녀가 살던 프랑크푸르트도
아니건만
도대체 특별할 것 하나 없는 독일 시골?에 살고 있는 동네 아줌마 에게 뭘 취재 해? 라며
원래도 의심이 많은 편인 나는 세상도 어수선하고
누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기도 어려운 인터넷 상에서 난데없이 전화통화를 원한다고 하니
혹시 이것이 말로만 듣던 글로벌 보이스 피싱? 뭐 이런 걸까?
라며 의심을 업그레이드시키고 있었다.
그냥 모른척 답글을 패스 해 버릴까?
뭔 일인지 궁금 한데 연락을 해 봐야 하나?
이럴까? 저럴까?
아무리 머리 싸매고 고민해도 시원한 답이 나오지 않던 나는
결국 의심보다 호기심이 더 앞서
일단 댓글에 남겨진 카톡으로 연락을 해 보기로 했다.
본인을 모 방송국의 막내 작가라고 댓글을 달으셨던 그분은
곧장 어느 방송팀의 담당 작가를 소개해 주었고
그 담당 작가라는 분과의 전화통화로
나는 그분들이
왜 내게 연락을 해 왔는지 정확히 알게 되었다.
담당 작가라는 분 은 연이은 전화 통화로
그 방송팀에서 지금 준비 중에 있다는 프로그램의 테마가
세계 속의 케이패션, 케이팝, 케이푸드 등 한류에 관한 것 이여서 인터넷으로 관련자료를 검색하다
우연한 기회에
독일 사람들 과 의 한식 강습
독일의 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한국요리와 문화에 대한 특별활동을 하는 내용의 내 글들을 접하고
이런 장면 들을 자연스레 카메라에 담는 다면 가장 평범한 독일 사람들 속의
한국적 정서인 정이 오가는 한류를 진솔하게 그려 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 들을 하셨다고 했다.
나는 그 방송팀의 참신하고 열정 적인 방송 취지를 전해 들으며
다소 갑작스러운 방송 출연 섭외였으나 흔쾌히 응하기로 했다.
때마침
그 방송팀에서 원하는 촬영 일정과 딱 맞아떨어지는 한국요리 강습 일정도
있었고
무엇보다 그분들의
세계 속에 자리 잡아 가고 있는 한류에 관해 취재하고 싶다는 열정과
그 한류 속의 한 부분으로 당당히 취재 대상이 된 한국요리 강습에 대한 자긍심에 독일의 상황에서 볼때
준비 기간이 촉박한 일정이었으매도 불구하고 기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방송 촬영 준비를 돕기로 했다.
어디나 그렇겠지만 무슨 일이던 절차상의 순서라는 것이 있다.
특히나 독일에서 무언가 일을 추진하려면 시간도 많이 들고 써서 내야 할 서류 들도 복잡 하다.
그러니
촬영 일자 까지 보름 남짓 남은 시점에서 먼저 준비되어야 할 것들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최급선무는 앞으로 촬영을 하게될 강습이 펼쳐질 문화센터인 VHS에서 촬영 허가를 받아 내는 것이었는데
그곳은 독일에서 시민대학 이라고도 불리는 곳으로 거의 독일 전역에 있는
지역별 문화센터 여서 거쳐야 하는 절차상의 단계도 많고 일처리가 까다로운 편이다.
우선 나는 급하게 마케팅 담당자와 미팅을 잡았다.
그리고
한국의 이런 공영 방송에서 세계 속의 한류라는 테마의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VHS의 한국요리 강습 중 하루를 촬영하고 싶다는 제의를 받았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라는 질문으로 담당자와의 미팅을 시작했다.
그녀는 예의 그 일목요연한 말투로 일단 한국의 그 공영 방송의 이름과
프로그램에 관한 정보를 달라 했다.
나는 내가 알고 있던 사항 들을 빠짐없이 그녀와 공유했고
담당자는 본인이 먼저 확인해 보고 이 사항을 문화센터 원장과 임원 진 들의 회의를
거쳐 다시 연락을 주겠노라 했다.
나는 다른 강습 들을 준비 해 가며 마케팅 담당자의 연락을 기다 렸다.
회의를 거친 후
드디어 문화센터에서 촬영 허가 가 떨어졌다.
그러나 이번엔 가장 중요한
수강 신청자 들의 촬영 허락이 남아 있었다.
마케팅 담당자가 한국요리 강습 수강 신청자 전원에게
한국의 공영 방송에서 그날 한국 강습 촬영 요청이
들어왔고 문화센터에서 허가 가 나서 촬영이 진행될 예정이니
혹시라도 방송 촬영이 불편하신 분들은 수강 신청을 미리 취소해 달라는
내용의 메일을 일일이 보냈다.
이미 수강 신청이 정원을 넘긴 반이라 해도 사람에 따라 사진 촬영 또는
TV 출현을 원치 않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으므로 수강 신청자들이 급 줄어들 수도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런 부담을 감수하고 촬영을 허가 해 주었던 문화센터 측에 감사하며 나 또한 강습 인원이 줄어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의 각오를 하고
수시로 한국의 방송팀과 촬영에 대한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교환 했다.그러던중
강습 외 에도 독일 사람들과 한국 음식을 만들어 나누어 먹는
자연스러운 장면 들을 더 찍고 싶다는 방송팀의 부탁으로 나는
독일 초등학교 아이들, 이웃들, 친구들, 한국요리 강습에 참여했던
케이팝 마니아들, 한국 식재료 들이 많이 준비되어 있는 아시아 식품점 등을
촬영 예정 일정에 맞추어 방송팀이 도착하면 바로 촬영에 들어갈 수 있도록 미리 섭외했다.
안 그래도 새로운 프로젝트가 하나 더 늘어 정신없는 가운데
사람들 에게 전화하고 만나러 가고 눈코 뜰 새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힘은 들어도 즐거운 마음으로 방송 촬영을 위해 하나둘씩 준비해 가고 있던 어느 날
매일 같이 카톡이 날아들고 보이스톡 이 울리던 핸디가 어느새 잠잠 해 지기
시작했다.
이제 촬영 팀이 독일로 날아온다던 그날이 그리 멀지 않았는데 말이다.
어쩐지 느낌이 썩 좋지 못했다. 아니나 다를까
촬영 예정일 이자 한국 요리 강습 일정이 며칠 남지 않은 시점에서
이곳 촬영 일정이 전면 취소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때의 어이없는 심정은 그녀가 길라임 이라는 가명을 사용했다는 기사를 읽었을 때와
거의 비슷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방송촬영이 취소된 이유는 최순실 미르 재단 인지 길라임 팔뚝에 박힌 용무늬 문신과 같은 문양의 재단 인지 간에
그곳과 케이푸드가 연관이 있다 해서 란다.
이젠 별개 다 최순실 때문이구나 싶어 기가 막혔고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작가 분과 피디 분 에게는 괜찮다 했지만( 사실 그분 들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속에서 올라오는 깊은 빡침에 며칠 잠도 이루지 못했다.
그동안 그 준비한답시고 다른 일도 미뤄 두고 매달린 것과 개인 적으로 독일의 지인 들과
기타 등등을 섭외하느라 동동 거리고 돌아 다녔던 것들은 차치하고 라도
독일에서는 촉박한 일정으로 일 이 진행되기 힘듦에도 불구하고 적극 도와준 마케팅 담당자 에게는 뭐라 이야기할 것이며 또 수강생 들 에게는 무어라 설명을 한다는 말인가?
이게 무슨 개망신 이야......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날 강습 전에
간략하게 지금 한국의 정치적 상황과 그여파로 떠밀려 취소된 방송 촬영 에 관한 이야기를 수강생들에게 전하며
쪽팔리고 화끈 거리던 것이 떠올라 얼굴이 붉어진다.
정말
내가 이럴려고 독일에서 한국요리 강사를 했나 하는 자괴감 이 들던....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