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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Aug 22. 2021

남편 머리 감겨 주기 대작전


매일 머리를 감는 남편이 벌써 며칠째 제대로 물구경을 하지 못했다.

눈 수술을 하고 퇴원한 지 사흘이 된 남편은 도저히 못 견디겠던지 머리 빼고 샤워만 간단히 하고 오겠다며 3층으로 올라갔다.

나는 어느새 가볍게 샤워만 하고 오겠다던 남편을 따라 3층 욕실로 향했다.

막 샤워를 끝낸 남편은 그래도 조금 개운해졌다며 지난번에 이 동네에서 사다 둔  난닝구를 끼어 입었다. 고민하며 들었다 놨다 하다 사온 엑스라지 사이즈가 딱 맞는다. 라지 샀으면 쫄티에 배꼽티 될 뻔했다.

나는 남편이 샤워를 하며 얼마나 머리에 물이 대고 싶었을까 싶어 물었다

"내가 머리 감겨 줄까?"

남편은 아직 아물지 않은 토끼눈처럼 빨간 눈을 한 체 빙그레 웃는다.

"그래 주면 좋지!"

오케이~! 나는 다시 거실로 내려가며 전투 준비를 시작한다. 가운데는 폭신한 거즈가 들어가 있고 사방으로 짱짱하게 테이프가 붙어 있는 반창고와 의료용 하얀 테이프를 챙기고 의자에 씌울 쓰레기 봉지를 들고 2층 욕실로 갔다.

수건들도 크기별로 챙겨 한아름의 짐을 들고 3층으로 올라가며 어떻게 할지에 대해 머리를 굴렸다.

남편은 머리를 앞으로 숙여도 안되고 수술한 눈에 물이나 샴푸가 들어 가도 안된다.

그런 남편의 머리를  안 튀고 무사히 감겨 주려면 나름의 전략이 필요하다.


2층에도 욕실이 있지만 세탁기와 건조기가 들어가 있어 좁기도 하고 그쪽 수로관이 공사해야 할 수로관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해서 우리는 요즘 온 가족이 3층 욕실을 사용하고 있다.

독일의 욕실은 바닥에 수채 구멍 즉 배수구가 따로 나있지 않다. 욕조 또는 두쉬바드 라고 하는 샤워부스의 바닥에만 배수구가 뚫려 있다.

즉 샤워기 달려 있는 곳에서만 물을 틀고 씻어야지 욕실에서 물 버려 대며 "흐미 시원한 !" 하면 한강 된다는 이야기다.


우리 집 3층 욕실은 두쉬바 샤워부스 .하얀색 네모난 바닥에 배수구가 하나 나 있고 사면이 유리문으로 되어 있다. 이 탈의실 만한 곳에서 문을 닫고 들어 가서 샤워를 하면 물이 빠져나가는 구조다.

남편은 머리를 빼고 이미 샤워를 했고 머리만 따로 감기기 위해서는 물 샐 틈 없는 전략이 있어야 한다.

우선 수술한 눈에 샴푸가 들어가면 절대 안 되기 때문에 물에 젖지 않는 반창고와 테이프로 한쪽 얼굴을 완전 봉쇄했다. 혹시라도 물줄기가 이마나 코를 통해 흘러내려갈 때를 대비해서다.

그리고 샤워실 앞에 커다란 쓰레기봉투로 비닐 커버를 씌워 가져다 둔 의자를 놓고 양옆으로 수건들을 깔았다.

아무리 조심해서 한다 해도 샤워부스 앞 의자에 남편을 앉혀 두고 내가 샤워장 안으로 들어가 머리를 감기려면 그 앞쪽으로 물줄기가 퍼지며 물바다 가될게 뻔하기 때문이다.


꼼꼼하게 모든 준비가 끝나고 나는 남편을 불렀다.

"자 손님 머리 감으실게요!"

가벼운 전투복? 차림으로 샤워부스 안에 서서 한 손에 샤워기 한 손에 샴푸를 든 내 모습은 어릴 때 종종 보았던 때밀이 이모다.


우리 어렸을 때는 목욕 가방 들고 엄마를 따라 목욕탕을 다니고는 했다.

동네마다 공중목욕탕이 있었고 우리 동네의 목욕탕 이름은 거북탕이었다.

아기였던 막내와 둘째 그리고 나까지 삼 남매를 데리고 목욕탕을 다녀야 했던 엄마에게 목욕 가는 날 자체가 행사였을 것이다.

동생들 씻기느라 셀프로 하고 있는 큰아이가 대강 닦고 있는 것 같아 안심이 되지 않던 엄마는 종종 나를 때밀이 이모에게 맡기고는 했다.

요즘은 세신사라는 어엿한 직업명이 있지만 내겐 왠지 때밀이 이모가 더 정겹다.


커다란 침대 같은 미끌미끌하고 딱딱한 곳에 누워 있으면 이모는 현란한 손길로 나를 씻겨 주었고 가끔 껍질이 벗겨지는 것 같이 따갑기도 했다. 그러나 손가락이 찌들 찌들 주름이 생길 때까지 앉아서 뜨거운 물세례를 받으며 나오지도 않는 를 밀고 있어야 하거나 한증막이라고 쓰여있던 겁나 더워 환장할 것 같은 곳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니 내겐 참을만한 특혜였다.

때밀이 이모에게 맡겨진 나는 언제나 동생들보다 빨리 씻고 이 무더운 곳에서 탈출해 동네 아줌마들이 고돌이 치며 놀고 계신 밖에서 사탕을 얻어먹고 시원한 음료수도 마시며 기다릴 수 있는 특권도 주어 졌다.

때밀이 이모는 시원스러운 손길과 물세례를 끝으로 내게 시크한 한마디를 날리시고는 했다.

"아가 뒤집으!" 그 소리에 나는 이제 조금만 있으면 나가서 삼강사와 를 마실수 있겠구나 싶어 저절로 웃음 걸린 얼굴을 들어 돌아 눕고는 했다.



나는 오늘 그 거북탕 때밀이 이모와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남편의 머리에 샴푸를 묻혔다.

의자에 앉은 남편이 고개를 살며시 뒤로 젖히고 있는 동안 나는 조심조심 남편의 머리카락 사이사이에 비누 거품을 내고 그동안 몹시도 간지러웠을 두피를 살살 긁어 준다.

남편은 그것도 성에 차지 않았던지 "그 앞쪽에 조금 더 빡빡해줘!" 하고 주문을 한다.

나는 손톱이 아닌 손가락을 세워 남편의 머리를 속속들이 골고루 문지른다.

혹시라도 거품이 튈세라 남편의 얼굴에 수건까지 얹어 둔 채로...

물에 젖고 거품이 은 남편의 몇 가닥 없어 보이는 머리카락이 강바람 맞은 갈대처럼 흔들거린다.

남편의 군데군데 하얗게 쉔 머리카락보다 듬성듬성 보이는 머리카락과 훤한 두피가 마른 밭고랑에 물 길난 것 같아 왠지 더 짠하다.

20년도 넘게 같이 살고 있는 우리에겐 20대의 젊은 연인들에게 있는 심쿵은 없지만 이렇게 때때로 심짠은 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한다 "아버님도 대머리는 아니셨지 아마?."


마지막으로 남편의 앞머리와 옆머리에 골고루 물을 뿌려 헹궈

물은 이미 배수구 없는 욕실 바닥까지 흥건하게 흘러내렸다.

남편이 앉아 있던 의자 양 옆으로 욕실바닥에 깔려 있던 수건도 이미 찰방 하게 젖어 짙은 수박색이 되었다.

나는 " 자 손님 이제 됐슈!" 하고 남편의 이마에서 눈으로 물이 흘러들어 갈세라 빠른 손놀림으로 수건으로 물을 찍어 냈다.

수건 감아 남편을 밖으로 내 보내고 나는 한강이 된 욕실을 정리했다.

내친김에 구석구석 닦아 내면서....

비록 여러 장의 수건이 희생되었지만 덕분에 욕실 바닥도 때 빼고 광냈다.


나는 세탁기 앞에 젖은 수건 무더기를 내려놓으며

반창고를 떼고 있는 남편에게 물었다 "혹시 물 샜어?" 하고 남편은 나른한 미소를 머금고 "아니 한 방울도 안 묻었어 되게 시원해"라고 했다.

그 모습이 마치 만화 영화에 나오는 포만감 곰돌이와 닮았다. 꿀단지에서 맘껏 꿀을 퍼먹고 난 다음의 곰돌이 푸우. 딱 그 표정이다.

남편 머리 감겨 주기 대작전은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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