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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베네치아 당일 치기

우리가 만난 베네치아.....

by 김중희

이번 여름 우리는

온 가족 함께

크로아티아 풀라로 휴가를

떠났었다.

그 휴가의 끝머리 즈음에

잠깐의 외출 이였던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에서

생각 지도 않은 교통사고를

만났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자동차까지 수리를 해야 해서

발 이 묶였다.

그래서 원래 대로 라면

독일 집에 도착 해 마당에

물 주고 있어야 할

시간에

저 물길 따라

흘러들어오듯

운명 처럼

생각 지도

못한

베네치아로 왔다.



그러니 우리는

남들처럼

이곳에서 무언가를 꼭

보고 가자 하는 것도

딱히 정해져 있지 않았고

다른 이들이

이곳을 여행지로 정하고

계획하며 가졌을

손꼽아

이날을 기다렸노라 하는

부푼 기대감 같은 것도

품고 오지 못했다.


그저 뚝 하고 떨어지듯

너무나 뜻밖의 시간에

서 있던 베네치아

에서



우리 앞에

수없이 펼쳐지던

좁고 다양한 모습의

골목만큼이나

그동안 우리가

잊고 살았던

수많은

생각과 느낌의

단상 들과 끊임없이

마주 했다.

마치

물 위로 비치는

사람들 , 건물, 하늘, 구름,

곤돌라, 기러기 등의

또렷한 잔상 들이

햇빛 받는 방향에 따라

사라졌다 떠오르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처럼....




잊고 있던 단상 하나...

헤매고 다니던 작은 골목 어딘 가에서

누군가

집 앞에

물감의 반짝임이 이제 막 붓질을

끝냈음을 말하고 있는

커다란 캔버스를 내어 놓았다.

지금 떠올려 보면

그 그림의 형태는 정확히

떠오르지 않는다.

단지

그 물감의 반짝임이

잊고 살았던

물감 뭍은 붓이 캔버스를

가르고 지나갈 때의

그 손끝에 전해 지는 느낌을

떠오르게 했다.

마치

레몬을 쳐다보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신맛에

이마에 주름이 잡히듯...



살아가며 우리는

그날 우리가 만났던

베네치아의 단상 들을

삶의 골목 어딘가 에서

다시

마주 하게 될 것이다

그날 그 골목 에서 처럼 ....



35도를 넘나 들던

따가운 햇빛도...


한번 방향을 잃으면

돌고 돌아도

좀처럼 길을 찾지 못하던

복잡한 골목 어귀 들도...


베네치아의 물 위를 떠다니던

수상 보트 들과

곤돌라가 보이는

예쁜 카페에 앉아

분위기 있게 마셔

보겠다고 시켰던

눈이 튀어나오게

치약 맛이 나던 민트 음료수

돈이 아까워

물 타서 끝까지 마시던 일도...


사람들 사이사이에 건물

들이 들어와 있는 것처럼

길에

밀려다니게 많았던

사람들도..


곤돌라 한번 타는데

1인당 80유로 씩이나 해서

돈 없어서 안돼 라고

했더니

타고 있는 사람들을 부러운 듯

쳐다보며

"저 사람들은 부잔 가 보다"

라며 우리를 웃기던

막내의 앙징맞은 투정도...


달랑 물병 몇 개 들어 있는

막내의 배낭을 가뿐히 메고

젊을 때 이렇게 여행을

했어야 했는데

라고 아쉬워하며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당장

배낭 메고 세계일주 라도

하겠다는 기세로 서 있던

남편의 귀여운 뻥도....


며칠 있으면

교환학생으로

가는 딸내미의

그 집 엄마와 딸을 위한

선물을 함께 고르며

낯선 곳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을 향한

기대와 설렘 그리고 약간의

두려움으로

빨갛게 상기되던 두 볼도...


우리는

어느 순간 어떤 모습 으로

그날의

단상 들과 마주 할지

알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 한건

지금 이 글을 쓰며

내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머무는 것처럼

우리는 언제 어느 때

우리가 만났던

그날의 베네치아를

떠올린다 해도

모두 이렇게 웃고

있으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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