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남편이 종합병원에서 일할 때는 동료 들과 서로 겹치지 않게 휴가 날짜를 맞춰야 했고 입원 환자들의 상태와 병원의 상황 또한 고려해야 했다.
한마디로 쓰고 싶은 시간에 휴가를 얻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남편이 개원을 하면 언제든 우리가 원하는 시간에 휴가를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말 그대로 셔터만 내리면 끝일 줄 알았다. 뭘 한참 모를 때의 꿈이었다.
나의 깻몽을 두고 친한 친구 크리스텔은 이미 경고했었다.
자영업자는 독일어로 Selbst und Ständich인데 그녀는 독일어 글자그대로를 가지고 하는 우스개 소리를 빗대어 말했다. 우리말로 의역하자면
" 자영업자는 원래 시도 때도 없이 뺑이 치는 거야! "라고 (*어쩌다 병원 매니저 프롤로그)
시간이 흐르고 나니 그녀의 우스개 소리가 뼈 때리는 농담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사실은 그 농담 이 가장 현실을 반영한 말이 었다는 것을 아는데 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고 말이다.
독일에서 개인병원이 휴가를 가려면 우선 휴가 기간을 정하고 직원들에게 휴가 기간과 계획 등을 의논하는 것을 시작으로 우리가 휴가 기간 동안 우리 병원 환자들이 의사가 필요할 때 진료해줄 동료 병원 들을 알아보고 우리도 그 병원들을 땜빵 해 줄 기간을 정해서 맞바꾸는 것부터가 개인병원의 휴가 준비 일 차전이다.
그리고 왕진 환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로 그 기간 동안 처방전과 소견서 등이 필요한 것이 없는지 확인해 주고 휴가 끝나고 왕진 계획을 알려 준다.
또 작성해야 할 서류들 중에 휴가 기간에 겹치는 서류 들을 미리 작성해서 해당 관청 등에 보내는 일들을 미리 해야 한다.
그 외에도 우리 병원 환자들의 혈액검사 들을 전담 해 주는 연구소와 우리 병원 환자들의 처방전 들을 맡아해 주고 있는 약국들에 차례로 연락을 해둔다.
그중에 한두 군데 약국에는 혹시라도 우리가 휴가 기간 동안에 우리 병원 환자들 중에 늘 복용하는 약의 처방전이 필요 한 환자들에게 약을 선지급하고 후에 처방전을 받을 수 있도록 연계해 두었다.
그렇게 환자들을 위한 이런저런 만반의 준비를 해 두고 나면..
병원 문 앞에 휴가 기간과 그 기간 대신 진료를 담당해 줄 병원들의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를 걸어 두고 병원전화 에도 그내용을 녹음해 둔다.
누구든 병원에 전화 했을때 알수 있도록...
그 일들을 끝으로 크고 작은 휴가 전 일들을 마무리하기 위해 그 주 금요일은 진료 시간 이외에도 한참을 병원에 남아 일해야 했다. 휴가 전 연장근무는 필수인 셈이다.
그런데, 병원 일은 그렇다 쳐도 집에는 휴가 전 할 일이 없던가? 휴가라고 가방 하나 달랑 싸서 문 열고 후딱 하니 뛰어 나갈 수 있는 것은 영화 에나 나올 일이었다.
휴가 전 화려한 금요일을 보내고 일요일 아침 비행기로 그리스 크레타를 가기로 되어 있던 우리에게 남은 날은 토요일 하루.
아침 일찍 우리 집 멍뭉이 나리 일주일 간 먹을 양식을 포장해서 잘 담아 이름표를 붙여서 강아지 호텔에 서류와 함께 맡겨 두었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놔두면 상하게 될지도 모를 채소 나 과일 들을 먹어 치우거나 냉장고에 보관할 것 등을 나누어 정리했다.
다음은 집안에 각종 분리수거된 쓰레기통 들을 미리 비워 두고 설거지 그릇 들을 정리해 두었다.
일주일 집을 비웠다고 다녀와서 너무 심란하면 안 되므로 간단한 청소를 해두고 짐가방을 싸야 하는데 이것이 만만치 않았다.
왜냐하면 그 주의 그리스 크레타의 일기 예보에서는 이삼일은 27도 에서 28도 여름 같은 날이었고 또 다른 날은 비가 오며 온도가 내려갔다.
이렇게 여름과 봄가을 날씨가 섞여 있을 때는 옷을 준비해 가기가 쉽지가 않았다.
거기에 날 맞춰 우리 집 세탁기가 고장이 났다.
하다 하다 휴가 전에 빨래방까지 다녀왔다 (요 이야기는 다음번에..)
우쨋거나 휴가 전에 난리 부르스를 지나 우리는 일요일 아침 6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동네 공항으로 이웃집들 모두가 잠들어 있는 새벽 4시에 야반도주하는 사람들처럼 짐가방을 차로 옮기고 출발했다.
독일에서 출발하는 대부분의 유럽 내 휴가지로 가는 비행기들은 이른 아침 또는 새벽 시간이 많았다.
다른 해 여름이나 봄에 그리스나 스페인의 섬으로 휴가를 갔을 때는 프랑크푸르트 또는 담슈타트, 뉘른베르크 등 큰 공항들이 있는 다른 도시들로 가야 해서 미리 그전날 공항에 가서 밤을 새우고는 했다.
공항 노숙 전문 이라고나 할까? 떠나자, 그리스 로도스 섬으로! 그런데 가장 휴가객이 많은 여름을 지나 가을이기도 했고 코시국이라 백신 접종이 모두 끝이 난 사람들 또는 PCR 검사표가 있어야 해서 인원이 줄은 탓인지 우리 동네 작은 공항에서 그리스로 출발하는 비행기에 좌석이 남아 있었다.
집에서 자다가 비행기를 타러 갈 수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감격했다.
그런데 비행기 출발 시간인 6시가 다 되어 가자 공항 안에 안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
지난밤 안개로 늦게 도착한 기장과 스튜어디스들이 2시간밖에 쉬지를 못해서
부득이 한 시간을 더 쉬고 출발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즉 6시 가 아니라 7시 출발이라는 안내 방송이었다.
그 안내 방송을 끝으로 여기저기서 한숨 쉬는 소리와 한 시간 더 잘 수 있었는데..라는 투덜 거림이 들려왔다.
나는 속으로 "이 싸람 들이 몇 시간씩 운전해서 다른 도시의 큰 공항에서 밤새 이것저것 하다 더 이상 할 게 없고 딱딱한 벤치에 누워도 누운 게 아니요 자도 잔 게 아닌 공항 노숙을 해봐야 아 한 시간 정도는 괜찮사오니 소리가 나오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집 가까운 공항에서 휴가를 떠나 보기는 처음이라 이런저런 불편쯤이야
그전에 비하면 암시롱도 않다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7시가 훨씬 넘은 시간이어도 살짝 얼은 기체를 녹여 야 한다며 세차장 소리 같은 소리를 들으며 비행기 안에 앉아 있을 때도 다른 이들처럼 투덜 대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드디어 세 시간을 날아 그리스 크레타에 도착하고 나서 생기기 시작했다.
한 시간 넘게 비행이 늦춰지다 보니 우리를 공항에서 호텔로 픽업하기로 되어 있던 버스는 이미 가고 없었다. 언제 올지 모르는 16번 버스를 기다리며 29도의 땡볕에 서 있다 보니 머리가 벗겨질 지경에 이르렀다.
현지에서 호텔로 픽업하는 일을 맡고 있던 그리스의 여행사 직원에게 우리는 그늘에서 기다리고 있겠다는 이야기를 해 두고 짐가방을 들고 쪼로미 공항 밖 그늘에 서서 물도 마시고 피자를 닮은그리스 빵도 사다 먹으며 한 시간 반 정도를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16번 버스는 흔히 호텔과 공항을 오가는 관광버스가 아니라 봉고였다.
우리는 그 16번 을 달고 있던 봉고에 우리네식구 까지 세 팀만 데리고 출발한다고 할 때 까지도 금세 호텔로 데려다주겠구나 했다.
아뿔싸!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은 크레타는 옆으로 길고 긴 섬이요 우리가 예약해 둔 호텔 겸 리조트는 섬의 동쪽 맨끝에 위치하는 곳이었다
한마디로 산 넘고 물 건너 쎠쎠 ~! 해야 간신히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으며 지도상의 거리와 시간은 전혀 무관 했다.
지도에서는 헤라클리온 공항에서 그렇게 멀지 않았건만 우리는 마치 놀이동산의 탬버린을 타고 있는 것 처럼 이리저리 흔들어 대는 자동차를 타고 산을 넘어 멀미가 나서 돌아 버리기 직전에야 도착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