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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Oct 20. 2021

여기는 크레타 섬의 아기오스 니콜라오스

겁나 한적 한 곳 이랄때 알아봤어야 했다.


우리가 가을 휴가를 정하고 달려간 곳은 동네에 있는 작은 공항이었다.

그 공항 안에 여행사 두 곳이 있는데 그중 더 작은 곳에서 우리 휴가 기간에 맞는 여행지를 문의했다.

요즘 우리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안 되는 게 없는 세상에 산다.

넷상에는 여행 예약에 관한 기차, 비행기 교통편부터 다양한 숙소들을 찾을 수 있는 사이트들이 많다.

우리 큰아들과 딸내미 만 해도 핸드폰으로 거의 모든 걸 해결한다.

그럼에도 남편과 나는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 굳이 마스크 쓰고 여행사 사무실 찾아가 설명 듣고

직접 예약하고 종이 받아 들고 오는 게 왠지 더 마음이 편하다.

손가락 하나 들고 몇 번의 클릭으로 끝나는 것이 훨씬 편리하고 경제 적이며 안전한데도 말이다.

그러고 나면 어쩐지 허전하고 이거 잘 된 건가 불안하기도 하고 하여간 세련되지 못해서 그렇다.


여행사에서 긴 금발머리에 안경을 쓰고 마스크 너머 로도 선한 인상을 풍기던 여행사 직원은 우리의 조건에 맞는 휴가지를 물색해 주었다.

우리의 조건은 10월 1주일간 네 명이서 그리스로 요공항에서 출발하고 요공항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 조건에 부합하는 곳이 그 여행사에서는 그리스 크레타와 로도스였다.

두 군데 모두 이미 다녀온 곳이고 로도스는 2019년 여름에 다녀온 곳이라 최근? 인 데다가 크레타 보다 작다. 크레타는 2015년 여름에 다녀왔고 2018년에도 다녀왔다. 그러나 아직 섬 전체를 보지는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 휴가를 그리스 크레타 섬 우리가 아직 다녀오지 못한 북동쪽으로 가기로 했다.

그렇게 여행사에서 추천해준 다섯 군데 숙소 중에 가족회의를 통해 한 곳을 정했다.

그곳은 그리스 크레타 섬 북동쪽 끝에 위치하는 아기오스 니콜라오스 라는 동네에 있는 곳으로 매우 한적해서 독일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했다.

특히나 우리가 정한 호텔 리조트는 아주 한적하며 걷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최적이라고 했다.

그 말의 의미를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바로 알 수가 있었다.

우리를 싣고 온 것이 아닌 짐가방과 함께 그야말로 들어 나르듯 했던 봉고는 그 많고 많던 산길을 지나 어느 꼬불 꼬불 올라온 곳에 우리를 턱 하니 내려 주었다.


독일의 이른 아침 긴 후드티에 잠바를 입고도 추웠던 바람과 그리스 공항에서 시원스러운 그들의 인사만큼이나 마빡을 후리던 한낮의 강렬한 햇빛 사이에서 몸이 적응하기도 전에 산길을 날듯이 차를 타고 오느라 내속이 속이 아니었다.

나는 그야말로 속이 뒤집히다 못해 뿜기 직전이어서 간신히 로비 밖에 쪼그리고 앉아서 바람을 쐬며 속을 달랬다.

그렇지 않으면 그전날 저녁부터 그날 낮에 먹었던 그리스 빵까지 한눈에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식구들이 체크인하는 동안 한참을 속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려니 서서히 눈앞에 바다도 보이고 산도 보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보통은 바다도 산도 멀리 보이기 마련인데 한참이나 아래로 보이고 있었다.

그렇다는 말은 이 눔의 산동네에서도(산 타고 오느라 심기 불편 ㅎㅎ) 우리 숙소가 제대로 높은 곳에 위치한다는 이야기다.

"흐미 호텔이 한적 하다 더만 산 중턱에 있는갑네..!"

하고 있는데 체크인을 마친 식구들이 줄줄이 가방을 끌고 다시 로비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중에 호텔 직원으로 보이는 키 큰 아저씨가 예의 그 시원스러운 그리스 인사말 칼리 매라~~를 외치며 우리 가방들을 들어주고 계셨다.

체크인이 끝나면 방 열쇠던 카드던 받아 엘레 베이터 타고 그 건물 어디로 올라가면 되겠거니 생각했던 나는 순간 당황했다.

내가 어어 하고 있는 동안 큰 키의 칼리 매라 아저씨는 우리 집 짐 가방들을 대기하고 있던 작은 차에 척척 싣었다.

그 차는 마치 공항에서 직원들이 타고 다니던 차 같기도 하고 동물원 사파리 차 같기도 하고 영화나 드라마에서 골프장 장면 나올 때 등장하는 차 같기도 했다.

아무리 아담하고 툭트인 차 라지만 이제 겨우 속을 가라 앉혔는데 또 뭔가를 타야 한다는 게 영 거시기했다.

거기다 아니 방이 월매나 멀길래 이런 걸 타고 가야 하느냔 말이다.

차가 출발하고 월매나 멀길래가 아니라 월매나

높길래 였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했다.

가파른 길을 집 앞에서 자전거 타듯 자연스레 운전하던 그리스 아저씨는 연신 어디서 왔냐? 크레타는 처음이냐? 등등 밝게 떠들어 댔다.

아저씨는 우리가 독일에서 왔다 하니 고향이 어디냐 물었다.

우리는 독일에 살지만 한국 사람들이라고 하니 아저씨는 너무 잘 안다는 듯이 반가움과 친근함을 도배한 목소리로 외쳤다.

"아 꼬레아~!"

아따 아자씨 넷플릭스 좀 보시는 갑소.

나는 아저씨의 경쾌하고 신바람 나는 음성에도 안전벨트 없이 놀이기구 타는 것 같은 이 짜릿하고 징헌 느낌을 언제까지 느끼고 있어야 하나 고민스러웠다.


"얘들아 꽉 잡고 있어야 해!"라는 말을 세 번쯤 하고

손바닥에 고인 땀을 닦아낸 휴지가 촉촉해졌을 때쯤 우리는 673번 방 앞에 무사히 안착했다.

이 험한 비탈길을 안전? 하게 데려와준 아저씨께 감사해서 눈가에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을 매단 체 5유로짜리 종이돈을 척하니 내어드리며 땡큐 베리 마치 를 외쳤다.


우리 방은 돌로 만든 산장 또는 돌집 같았다.

산을 깎아 그위에 만들었다기보다 마치 산의 일부인 듯 그렇게 앞산을 마주 하며 쟁반 만한 해가 지는 것이 바로 눈앞에 보이고 동네 집들과 해수욕장 그리고 도로가 저 멀리 아래로 조그맣게 내려다 보였다.

우리는 그렇게 그리스 크레타 섬의 이름도 양복 이름 같은 아기오스 니콜라오스 라는 지역의 어느 산 꼭대기에 올라와 있었다.

독일에서 오기 전 이미 조식과 저녁을 호텔에서 먹는 것으로 예약을 했다.

식당은 저 아래 우리가 차로 올라왔던 호텔 로비가 있던 건물 2층에 있었다.

밥 한번 먹으러 내려가려면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왔고 밥 먹고 방으로 등산하듯 올라오면 어느새 배가 쑤욱 꺼져 있었다.

하루에도 그 안에서 만보가 넘게 찍으며 동네 이름을 아기오스 니콜라오스가 아니라 아이고 뒤질라스로 바꿔야 한다며 우리는 달콤 쌀벌 했던 우리의 가을 휴가를 보내기 시작했다.


다음 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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