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과 해변을 동시에
여기는 그란 카나리아 섬
남편이 반성? 의(그래서 우린 그란 카나리아로 간다 편에 자세히 나옵니다) 의미로 고르고 고른 별 다섯 개짜리 호텔은 외관뿐만 아니라 로비가 더 예배당스러웠다.
덕분에 휴가지에서는 늘 있는 비키니 바람에 얇고 샬랄라 한 천 두르고 슬러퍼 차림에 로비를 지나 가면 안 될 것 같은 매우 경건한 분위기를 품었다.
그렇다고 투숙객들이 심사숙고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처음 가본 별 다섯 개짜리는 역시나 시설이 좋았다.
방도 넓었고 드레스룸도 따로 있었고 욕조와 샤워장이 함께 있는 럭셔리 욕실이 구비되어 있었고
예쁜 발코니도 있었다.(호텔에 관한 이야기는 다른 편에 등장 예정입니다.)
그중에서도 밥에 진심인 우리에게 저녁은 정말이지 최상 이였다. 우리는 여행을 가면 언제나 조식은 꼭 호텔에서 먹고 곳에 따라 저녁까지 신청을 한다
그래야 눈떠서 밥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고 돌아다니다 저녁 먹으러 또 어딘가 가지 않아도 돼서 편하기 때문이다.
이번엔 아침저녁을 모두 포함시켰는데 그러길 정말 잘했다.
아침저녁이 뷔페였는데 특히나 저녁은 매번 테마를 달리해 메뉴가 바뀌면서 맛나고 가짓수도 풍성했다.
우리가 밖에서 그 음식들을 다 맛보려면 일주일 여행 가지고는 택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마이 먹기는 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많이 움직여서 여행 끝나고 집에 오니 그렇게 먹고도 1킬로가 빠져 있었다.
사막 같은 모래 언덕
Maspalomas dune
그란 카나리아에 도착한 첫날 김씨네는 황홀한 저녁 뷔페를 무한 리필하고 부른 배를 안고 푹잔 덕분에 여독이 풀려 아침에 일어 나니 돌아다닐 힘이 꽉꽉 재충전되어 있었다.
그래서 사막으로 가 보기로 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서아프리카에서 날아온 모래로 쌓인 언덕 사구이지만 우리는 사막이라 불렀다.
우리가 머물렀던 호텔에서 해변가를 끼고 한참 걷다 보면 자연보호구역으로 정해져 있는 사막이 나온다.
앞쪽에는 해변이 파란 바닷물에 부서지는 하얀 파도를 안고 있다면 뒤쪽에는 병풍 같은 노란 모래 언덕이 있다.
바로 그지역이 마스 팔로 마스 다.
해변가를 마스 팔로 마스 비치 (Maspalomas beach)
사막 같은 모래 언덕을 마스 팔로 마스 듄 (Maspalomas dune)이라 부른다.
사하라 사막에서 날아온 모래들이 언덕을 이루고 있는 이곳은 영화에서나 보던 사막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호텔에서 출발하기 전 로비에서 친절한 직원이 우리에게 몇 번을 당부했었다.
물을 많이 챙기라고 그 근처에는 모래 언덕뿐이 없다고.. 진짜 그랬다.
해변가를 지나 모래 언덕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우리는 이 작은 사막이 만만치 않은 코스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보기에는 말랑하고 보드라운 모래 언덕 같아 보였지만 작은 모래 알갱이가 햇빛에 달 구워져 뜨거웠다
프라이팬에 깨소금 볶을 때 무심결에 집어먹다 앗 뜨거워하는 느낌이랄까?
맨발 벗고 신발 들고 자유로운 콘셉트로다 걸어 가볼까 하다 나중에 모래가 해결이 안 될 것 같아 귀찮아서 신발 신고 걸었는데 십리도 못가 발병 날 뻔했다
때론 귀차니즘도 도움이 된다
사진 생각해서 콘셉트 잡다 발바닥 뜨거워 디질뻔한 순간이다
너튜브를 찾아보면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에서 배낭 매고 씩씩하게 정글 탐험을 하듯 걷는 이들도 있었지만
바람에 휘날리는 하늘하늘한 드레스를 입고 가늘가늘한 발목을 자랑하며 얇디얇은 끈 샌들을 신고 사막에서 화보 촬영하듯 하던 여인네들도 많이 보였다.
나도 애들처럼 반바지에 티셔츠 입고 갈까? 하다가 왠지 남들처럼 뭐라도 하나쯤 걸쳐 줘야 할 것 같았다.
짜리 몽땅한 아주 마이가 긴치마 입고 굴러 다니느니 아래는 반바지를 입더라도 위에는 바람에 팔랑이는 뭔가를 입고 가야 사진발에 도움을 주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그래서 그리스 신전에 서있는 시녀? 중에 하나가 입었을 듯한 하얗고 살랑살랑한 흰옷을 입고 모자 쓰고 선글라스 쓰고 선크림 바르고 보무도 당당히 사막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사막의 모래는 평지가 아니다 밟는 데로 쑥쑥 들어가고 발이 푹푹 빠진다
발에 힘을 줘도 자꾸 중심을 잃고 뒤뚱 거리게 되고 바람이 불고 볕가릴 야자수들이 곳곳에 있는 해변가 와는 다르게 사막은 그야말로 볕가릴 곳이 단 한 군데도 없었다
땡볕 받아 덥지~꼼꼼히 바른 선크림과 화장은 줄줄 흐르지~모래는 걷다 푹푹 빠지지~
땀과 선크림의 콤비네이션으로 먹다 녹아 흘린 하얀 아이스크림 묻은 것 같은 얼굴과 팔다리에는 모래가 인절미 콩고물 묻듯 덕지덕지 붙지~환장할 지경이였다
거기다 향료를 들어 나르던 그리스 신화의 시녀 같은 나의 패션 템은 비 오듯 흐르는 땀과 선크림에 엉겨 붙었고 바람이 불면 그체로 붕붕 떠 올랐다 마치 보자기 펼쳐지듯...
살랼라 드레스 날리는 것도 날씬한 것들이나 가능하지 우리같이 튼실한 사람들은 흡사 모래 언덕 위에서 패러 그라이딩 하려는 듯한 모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진중한 무게 덕분에 날아가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사막 한가운데서 외친 남편의 개뻥
사막은 보기에는 만만하게 나지막해 보이는 언덕과 언덕이 능선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고개를 넘듯 하나 넘어야 다른 하나와 연결이 된다. 그위에서 바다도 보고 방향 다른 모래 언덕 들도 보고 한다.
그런데 계속 모래 언덕을 기어오르다시피 걷다 보니 그게 그거 같은 언덕배기를 올라 가느라 끙끙 거리는 것이 지쳐서 중간중간에 언덕 위에 철퍼덕 주저앉아 쉬다 다시 출발하고 했다.
뭐 다리에 팩 하듯 모래 붙다 굳거나 말거나 머리가 삼발이 되거나 말거나 이미 더 이상 문제 될 게 없었다.
그래도 가방에 물을 잔뜩 담아 와서 중간중간 마시고 냉커피도 마시고 하니 탈출 하던 멘털이 돌아왔다.
언덕 위에서 가만히 바라 보니 모래 언덕 가운데 풀밭? 도 보이고 말라 보이기는 해도 나 무비스 끄리 한 것 들도 보이고 바다도 보였다. 그리고 평지로 연결되어 있는 길도 보였다.
그래서 저 길로 가면 어때?라고 김씨네들에게 물었더니 검색해 보니 그쪽 길은 오래 걸어야 한다고 했다.
아이들과 연세 있는 분들 또는 휠체어 등을 고려해 길을 내어 놓은 곳이라 넓게 뱅그르 돌아가야 해서 한참은 외곽으로 더 걸어야 하고 모래 언덕 위에서의 뷰를 놓친다고 말이다.
생각 같아서는 뷰고 나발이고 그 길로 가고 싶었지만 끝없이 걸을 힘은 남아 있지 않았기에 그냥 가던 길 가기로 했다.
그렇게 비몽사몽 간에 눈도 다리도 풀린 체 걷고 있는데 앞서 걷던 남편이 너무나 반가운 친구를 만난 것 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저기 봐봐 제이 제이 엄마랑 아빠다. 저거 내가 새벽에 해놓고 온 거다!"
모래 언덕 위에 누군가 돌멩이로 하트 안에 제이 제이를 새겨 놓은 것이 보였다.
우리 부부 이름 이니셜 에도 분명 제이가 들어가기는 한다.
그러나 남편은 우리가 묵고 있던 호텔 뒷마당에 사막이 있어도 이딴 걸 만들고 이벤트를 할 인간이 아니시다.
나는 어이없는 웃음을 베어 물고 "헐~새벽에 코 골고 자던 사람이 순간 이동해서 여기 오나 이싸람아~! 저 제이 제이는 제이크와 제니 겄지!"라고 했다
남편은 나의 핀잔과 부끄러움은 우리 몫이라는 표정으로 조금씩 뒤로 가려는 세 아이들의 문워크 사이에서도 꿋꿋하게 새벽에 지가 와서 만든 거니까 그 앞에서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개뻥을 날렸다.
그래 깐 노무 사진 돈 드는 것도 아닌데 찍어 준다 "얘들아 이쁘게 찍어줘~!" 하고 그 하트 제이제이 옆에 나란히 서서 사진 찍을 포즈를 취하며 힘들게 돌멩이로 한 땀 한 땀 예술을 했을 이름도 몰라 얼굴도 몰라 제이크와 제니 에게 쏘리를 날려 주었다.
쏘리 제이제이 숏타임 렌트 오케이?
사막의 신기루? 아님 똘아이?
남편의 애정을 가장한 주접이 비슷한 풍경을 보며 지속적인 땡볕과 뜨거운 모래의 힘듬을 조금쯤 식혀 주었다.
비몽사몽 하던 모래 언덕 가운데 틈틈이 보이는 꽃들도 이쁘고 사막에 꽃도 피네 하며 들여다볼 여유가 생겼다.
그때였다
맞은편 쪽의 모래 언덕 위를 삼각 수영 빤쥬만 입고 걷고 있는 용감한 아저씨가 보였다.
오우 대단하다 이 뜨거운 모래를 맨발로 걷다니 거기다 선크림은 발랐겠지만 수영복만 달랑 입고 말이다.
그런데 우리 집 애들이 말했다
"엄마 저 아저씨 옷 안 입은 거 같아"
어차피 대각선으로 떨어져 있는 모래 언덕이라 여기서 거기까지 말소리가 들릴 일도 만무하고 그 아저씨가 한국말을 알아들을 일도 만무한데 나는 자동으로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에이 설마 발가벗고 어떻게 다녀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데.."
그러면서 눈을 찌푸려 다시 한번 보았다 그런데 분명 삼각형 갈색의 수영 빤쥬를 입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저 아저씨 수영 빤쥬 입었어!"
그랬더니 딸내미가 "아냐 어쩜 저 아저씨 안 입었을지도 몰라 저거 테닝 자국인 거 같아!"
한참 외모 가꾸기에 진심인 딸내미가 테닝 자국을 이야기했다.
어쩜 일리가 있는데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막내가 말했다.
"핸드폰 줌으로 보면 알지!"
겁나 머리 좋은 놈! 막내의 엉뚱한 그 소리에 우리는 누구랄 것 없이 박장대소했다.
그 아저씨와 나란히 있는 모래 언덕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고 있다 보니 그 길이 끝날 때까지 의도치 않은 동행을 하게 되었다.
호기심 많은 나는 궁금했다 몹시 궁금했다
그 아저씨는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사막에서 정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자유를 부르짖고 있는 걸까?
그래서 핸드폰의 줌을 살짝 당겨 확인했다. 물론 뒤태만 보였다(남의 사생활을 보호해 주어야 하니 찍지는 않았다 아쉬워 마시기를..)
처음엔 잘 못 본건 줄 알았다 그런데 진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거리낌 없는 모습이었다.
세상에나 저렇게 자유로울 수가....
그전에는 수영복을 입었던 게 분명하다는 증거로다 수영복 입은곳에 하얗게 자국이 나서 멀리서 보기에는 마치 갈색의 수영복을 입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그갈색은 백퍼 자연산 살색 이였지만 말이다.
얼떨결에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남의 집을 망원경으로 들여다 보는 변태가 된 기분이었지만 궁금한 것은 죄가 아니다 저렇게 입었는지 벗었는지 알쏭달쏭 하게 해서는 공공장소에 돌아다니던 그 아재가 잘못이다.
그 의문의 아재를 뒤로 하고 돌아 나오는 길은 한참이나 걸렸다.
땡볕과 모래가 워낙 뜨거웠던 탓도 있었지만 사막 생긴 그대로 오르락내리락 충실하게 했던 탓에 다리에 힘이 풀리기 시작해서 빨리 걸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이제 길이 끝났나 보다 하고 있을 때쯤 이게 다가 아니라는 듯 다시 길이 이어졌다
이런 띠~!
이제 사막을 벗어났나 보다 하는 생각을 우리만 한 것이 아녔는지 뒤에서 오던 아낙네들도 오마이 갓뜨를 외쳤더랬다.
드디어 사막을 벗어난 우리에게는 해변가로 가서 놀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제일 처음 만난 해변가 카페에서 음료수와 아이스커피를 마시고 우리는 택시를 타고 다시 호텔로 향했다.
같은 해변가이지만 사막을 지나온 곳은 다른 동네 이므로 우리 호텔까지는 걸어서는 갈 수 없는 거리였다.
사막을 다녀온 것이 아니라면 몰라도 말이다.
이미 많은 투숙객들의 경험으로 인해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호텔 직원의 친절한 안내 덕분이다.
출발 전 직원이 상냥하게 말해 주었다.
"사막 갔다가 끝 지점에 도착하시면 그 동네 호텔 지역으로 들어가셔서 택시 타고 다시 돌아오시면 돼요
아마 걸어서 오시지는 못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