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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Feb 28. 2017

#5. 3천700년의 역사 크노스 궁전 미궁 속으로

 그리스 크레타 섬에서 다섯째 날



크레타에서 다섯 번째 날에 남편은 해수욕장이 아닌

사마리아라는 크레타를 대표하는 협곡으로

산행을 가고 싶어 했다.

그곳은 (아래 사진) 장엄한? 산중으로 무릉도원 같은 계곡들이 곳곳에 펼쳐지고 초자연의 신비를

엿볼 수 있는 기막히게 아름다운 곳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길이 자그마치 18킬로 란다. 십. 팔..

평소 걷고 산행하는 것을 좋아하는 남편 에게는 매력적인 곳임에 틀림없으나

앉거나 누워서 뒹굴 뒹굴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부담스럽기 그지없었다.

숙소에서 찔끔 거리는 인터넷으로 겨우 검색을 해보니 험난한? 산중에

인가도 없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는 터라 자칫 길을 잘못 들면

찾아 나오기도 쉽지 않으며 조난자도 종종 생겨 헬기 뜨는 그런 곳이 라고 했다....

그럼 에도 남편은 크레타에 온 사람은 꼭 한번 가봐야 할 곳이라며 사마리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엽서 사진 으로 본 사마리아 혐곡은 무척 이나 아름 다웠다.

이 무지하게 더운 날 그곳은 산중이라 시원할 거라며 강추하는 남편을 보며

이러다 진짜 18킬로미터를 걸어야 할지도 모르고 중간에 힘들어서 더 이상 못 가겠다고

돌아 나오다 길을 잃고 헤매다 조난을 당하는 우여곡절 끝에 날 조차 어두워진다면...

종종 등장하는 공포 영화의 한 장면처럼 모닥불 피워 놓고 앉았다가 늑대와 멧돼지

기타 많은 야생동물 들과 만나게 되는 납량특집 일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남편의 마음을 단박에 돌릴 수 있는 질문을 던졌다.

"근데 여보야 나랑 딸내미는 운동화도 안 가져왔는데 사마리아 에 가려면

튼튼한 트레킹화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샌들 신고 갈 수는 없잖아?

그러자 남편은 미련 없이 "그래? 그럼 우리 사마리아 가지 말고 크노스 궁전으로 갈까?"

란다. ㅎㅎㅎ 역쉬 ~예스 넘어왔어~~!

평소에도 쓸데없는? 곳에 돈 쓰는 거 싫어라 하는 남편은 내 질문이 떨어지자마자

전혀 아쉽지 않다는 듯이 바로 마음을 바꿨다.

그렇게 해서 갑자기 방향 바꿔 오게 된 크노스 궁전 아침부터 서둘러 왔건만 관광버스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로 이미 입구에 줄은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햇볕 아래 잠깐 서 있는 것도 머리가 벗어질 것 같고 숨이 턱턱 막힐 만큼 그리스의 쨍쨍한 더위는
그 놀라운 위용을 떨어 대고 있었다.


궁전 입구 매표소에서 표를 사기 위한 줄은 쉽게 줄어들지 않았다. 그늘에 앉혀 놓은 아이들이

커다란 아이스크림을 다 먹어 치우고도 한~참을 기다려서야

겨우 들어온 크노스 궁전은 뭔가 역사 적인 뭉클한 감정을 가지기에는 너무 덥고

땡볕 피할 그늘 조차 찾기 힘들었다.

기원전 1700년에 건축되어 1300여 개의 방들이 미로처럼 연결되어 있어

한번 들어오면 다시는 빠져나갈 수 없는 미궁 이라 해서 크노소스라는 이름이 붙은

크노스 궁전은 미노아 문명의 궁전 중 가장 크고 왕 테세우스가 왕비와 황소 사이에서

낳은 괴물을 가두기 위해 만든 궁전이라는 내용의 그리스 신화 또한 유명하다.

또 왕과 크레타 공주와의 사랑 이야기도.....

이 크노스 궁전은 신화 속의 판타지 한 내용뿐만 아니라 궁전에서 발굴된 유적들을 통해

그 시대의 생활상 등을 유추해 볼 수 있는 값진 역사적 자료 들을 얻어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역사 유적에도 랭크되어 있으니 세계 역사에서 볼 때도

매우 중요한 곳임에는 틀림없다.

그. 러. 나 이렇게 무더운 여름날 머리에 김 나게 생긴 따가운 볕을 이고 봐야 한다면  

그 어떤 특별한 역사적 찌르르한 감격도

그리스 신화 속의 로맨틱한 내용조차도 큰 감동으로 다가 오기 힘들었다.

무식한 내 눈엔 오로지 "오지게 덥고나 빛 피할 데가 한 개도 없네.. 그냥  뻥 뚫린 오래된 집터 여.."

뭐 이 정도의 감회였다고나 할까?

아마도 고고학자들이나 역사적 유적에 조회가 깊은 분들은 저런 무식한 아주 마이를

봤나 하고 혀를 찰지 모르나.. 그럼 에도 이 특별한 궁전은 벗겨지게 더운 한여름 불볕더위는

피해서 가는 걸로~~! 그렇지 않으면 빠져나올 길을 못 찾아 미궁이 아니라

더위 직빵으로 먹어 정신이 미궁이 되는 수가 있다.


꼭 우리 동네 정원 용품 백화점에서 파는 큰 화분 비슷하게 생긴 얘네들은

그 옛날 올리브 유등 향유와 식재료 보관함으로 사용되었다는 토기 들이다.

그 오래전에도 그릇 다운 모양의 품격 있는 그릇을 만들어 썼고 저렇게 세세한 문양을 만들 수 있었구나

싶어 감탄했지만 하필이면 지붕도 없는 곳에 떡하니 세워 두냐는 거다.

기왕이면 어디 지하 창고 같이 시원한데 두면 보는 사람도 편하고 좀 좋을까?

더우니 별걸 가지고 다 시비를 걸고 있는 아줌마 하나 헤매고 다니고 있었다.ㅋㅋㅋ


헥헥 거리며 돌아다니다가

궁전 안에 햇빛도 피할 수 있고 중간중간에 그림이 걸려 있어 이거 본다고

(사실은 빛 피하느라 개기고 있었지만.... ) 들락 날락 하며 한참을 서 있었는데

진품은 모두 박물관에 보관 중이라는 거다 갑자기 궁전 안의 그림들이 짝퉁으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그 바람에   

우리에게 큰 감흥을 이끌어 내지는 못한 그림들을 뒤로하고

어디론가 이 땡볕을 잠시 라도 피할 때가 없을까? 싶어

두리번거리던 중 딱 좋은 장소 포착.. 잽싸게 이동했다.

우와 이렇게 그늘에 앉으니 세상 좋은 것을...

평평한 돌들 위에 칠푸덕이 주저앉아 우리는 땡볕 받아 모락모락 김 나게 생긴

머리를 사뿐히 식혀 주었다. 그 후로 쭈욱~

남들은 고고학자 라도 되는 양 그 따가운 햇볕도 아랑곳하지 않고 탐사하기 바쁜데

우리는 그늘이 주는 안식에 빠져 일어날 생각을 하지 못하고 마냥 앉아 있었다.

그런 우리를 두고 혼자 한참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설명서를 읽어 보고 유적들을 살펴보고

하던 남편은 그늘에 퍼질러 앉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우리를 향해

이제 그만 갈까~? 하고 물었다. 안 그래도 유적이고 뭐시고 가네 언제 가나 ~? 하던

나와 아이들은 두 눈을 초롱초롱 반짝이며 벌떡 일어나 앞장서 걸었다. 가자~를 외치며..


사마리아 협곡 대신 선택되어 무턱대고 준비 없이 찾아온 삼천 칠백 년의 역사적인 궁전에서

뒤지게 덥기만 하다고 구시렁대던 무식한 아줌마는 이제 그만 가자는 남편의 말에

신나서 쫄랑쫄랑 나가다가 사람들이 왕창 길게 서 있는 데서

"잠깐 여보야 한 장 찍고 가자 여기 뭐 있나 봐~"했다.

무식해도 감은 있었으니...ㅋㅋㅋ

알고 보니 이곳은 그 옛날 왕좌 즉 임금님 자리가 있던 곳으로

임금님을 알현하기 위해 신하들과 기타 등등의 사람들이 찾았던 곳이 란다.  

그 안까지 들어가 보려면 또 이 긴 줄을 땡볕에 서서 기다려야 하는데... 나는

어떻게 생겼는지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남편이 혹시나 보고 가자 할까 싶어 젭 싸게 사진만 찍고

튀었다. 왕의 자리는 넘보지 않는 걸로 ~~!ㅎㅎㅎ


역사 적인 것을 느끼기에는 너무 아는 것이 없었고 판타지 스런 그리스 신화 내용을

상상 하기에는 느~무 더웠던 크노스 궁전을 벗어나?

이번엔 막내를 위해 아쿠아월드라는 인터넷 상에서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에게 1위로 강추되어 있던

수족관을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그런데 막상 가서 보니 우리가 느낄 때 가락동 수산물 시장 횟집 수족관보다 작아 보였고

그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20유로나 내고 그걸 보느니 어디 가서 맛난 밥을 먹기로 한 우리는

그 근처를 맴돌다 우연히

바이크, 해변 승마, 아기자기한 바닷가, 파티 등으로

젊은 사람들 에게 인기가 많다는 Herrosnissos 헤로 소니 소스 비치

로 흘러들어갔다.

마치 가족 들끼리 아늑하게 해수욕을 즐길 수 있게 일부러 만들어 놓은 것처럼 아기자기 한 해변을

바라보며 우리는 늦은 점심을 먹었다.

알고 보니 이 집은 2012년 그리스에서 3번째로 좋은 식당으로 선정된 곳이란다

어쩐지.... 음식이 풍성하고 깔끔한 데다가 맛도 있었지만 손님을 대하는

친절한 주인아주머니는 정말 그 일이 좋아서 하는 사람에게서만 풍겨 나오는 특별한 분위기가

있었다.

그 밝고 기분 좋은 느낌 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마법처럼

부서지며 푸른 바닷물을 가르며 햇빛에 반짝 이는 새하얀 파도보다 더 반짝 인다.  

공짜로 과일 후식까지 나와서 하는 말이

절~대 아니다. 넉넉한 인심도 마음을 푸근하게 해 주었지만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머리에 김 나게 더운 날 얼굴에서 떠나지 않는

아주머니의 햇살 같은 미소가 내겐 삼천 칠백 년 전 궁전보다 더 살아 있는 감동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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