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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Mar 05. 2017

수영장에서 생긴 일

하하 ..요놈들 봐라..!


오래간만에 남편이 다른 날 보다 일찍 퇴근한 평일이었다.

저녁 요리강습 도 없겠다.....

호...이때는 기회다 싶어 후다닥 수영가방 챙겨 막내와 옆 동네 수영장으로 룰루 랄라 놀러를 나왔다.

요 며칠 계속 날씨가 쌀쌀하고 비도 오다 말다 해서 영 몸이 찌부둥...했었는데

이 김에 뭉친 근육 도 풀고 신나게 노는 거야!

옆 동네 Baunatal 바우 나탈 수영장은 처음 와 보지만 가족 탈의실도 넓어 편리하고

수영장 하루 이용료도 셋이 합쳐 한국 돈으로 15000원 정도 주고 티켓을 끊었으니 이만하면 착하다. 거기까지는 딱 좋았다

그. 런. 데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으려고, 아빠 꺼...막내 꺼.. 수영복을 꺼내 주고...


내 수영복을 막 ...꺼내 려는데... 오잉...수영복이 없다 내 것만 없다. 아무리 뒤져도 없다 가방을 탈탈 털어도 없다. 이상하다...

아까 분명히 수영복을 챙겨 넣었는데....


다시 한번 가방 앞뒤를 잘 점검하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뿔싸... 막내의 잠수 안경 이랑 물총 넣고

그다음에 내 수영복 가방 안에 넣는다는 것이 그만 욕실 서랍장 위에 얌전히 얹어 놓은 체 가방을 들고 나왔나 보다.

헐...어쩌나...
수영복으로 이미 다 갈아입은 남편은 황당한 표정으로 수영장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한 체

다시 옷으로 갈아 입고는 일단, 집으로 가서 다시 내 수영복을 가져오기로 했다.

독일의 웬만한 수영장에서는 수영복을 구입할 수 있다.그러나

세일 기간에는 예쁜 것을 골라 10유로 또는 5유로에도 살 수 있는 수영복을 수영장에서 사려면 20유로는 당연히 넘게 주어야 하고 몸에 맞는 사이즈 구하기도 어려울뿐더러 모양 따지지 말고
사야 한다 한마디로 선택의 폭이 좁다.

비싸고 구린? 것을 사서 한번 입고 안 입느니 멀지 않다면 귀찮더라도 집에 다시 갔다 오는 것이 상책인 것이다.

그런데 한시라도 빨리 수영장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안달이 난 막내까지 데리고 다시 집으로 갔다

수도 없는 노릇이고 운전을 못하는 나 대신 남편이 수영복 가지러 빨리 다녀오는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옷을 입은 체 막내와 수영장 안으로 들어갔다.


수영복 입은 사람들 한가운데 떡..하니 나 혼자 옷 입고 앉아 있으려니

이거 참 ...거시기하다. 평소에 남편 이랑 수영복 안 가져왔다고 서로 장난을 치기도

했지만 진짜로 빼먹고 오기는 처음이었다.

아고~이 대책 없는 아줌마 어쩔 것이야.....

막내는 수영장 안을 바람같이 누비며 놀고 있고
나는 벤치에 앉아 하릴없이 사람 구경했다.

오가는 사람들이 쳐다보거나 말거나 옷 입은 체 꿋꿋이 두리번두리번 하면서...

그나마 오늘 입고 온 티셔츠가 꽃무늬가 아니고

흰색이라 여기 수영장 직원 유니폼 이랑 나름

비슷해 보일 수도 있다고 애써 위안을 삼으며 말이다.


넓지 않은 수영장 에는

친구들끼리 놀러 온 것으로 보이는 우리 애들 또래의 청소년 아이들... 수영 강습을 받고 있는

꼬마들... 유유히 수영을 하고 있는 노부부...
헤엄 치며 수다를 떨고 있는 동네 아줌마들...

다양한 사람들을 구경하며 남편이 수영복을 들고 오기를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고 있는데 드디어 남편이 왔다. 나는 잽싸게 일어나 나를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남편을 격하게 반가워하고는

재빨리 수영복으로 갈아입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여자 샤워실 앞으로 갔다

이 수영장은 특이하게도 샤워실 문을 지나 서만 탈의실로 들어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보통은 탈의실로 통하는 입구가 수영장 밖에서 안쪽으로 몇 개는 되는데 말이다. 드디어
여자 샤워실 문의 손잡이를 잡는 순간이었다.


순간 어디선가 쏜살같이 웬 꼬마 남자아이 두 명이 내게 달려와서는 "안돼요.. "한다.

왜? 뭐가 안돼? 깜짝 놀란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얘들아 뭐가 안된다는 거야?" 하고 물으니

"여기 여자 샤워실 아니에요" 한다

아니 얘들이 지금 자다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하나 싶어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하고 다시 물었다.
분명 내가 잡고 있는 샤워실 손잡이는 

문짝 에는 여자 라고 글씨가 쓰여있고 치마 입은 그림으로도 표시가 되어 있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 거리며

잡고 있던 손잡이에서 슬그머니 손을 내려놓고

"여기 봐 여성 용이라고 쓰여있잖아"라고 했더니
녀석 들은 조금 멍~해져 있는 내게 사뭇 진지한 얼굴로 목소리를 낮추어 조곤 조곤 이야기한다.

"누군가 문에 붙은 여성용 , 남성용 표시 스티커를 바꿔 붙여서 그래요 지금 들어가시려는 곳이 원래는 남자 샤워실이에요 "라며

은근슬쩍 내 손을 가져다 남자 샤워실이라고 붙어 있는 문짝의 손잡이에 턱 하니 어 준다.

장난이라고 보기 에는 제법 의젓하고 너무나 진지한 표정의 아이들 모습에 나는 잠시 고민했다.
어쩐다....
그러다 한쪽 옆에서 아이들 에게 수영강습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수영강사? 에게  빠르게 다가가

"저기요 얘네들이 그러는데 누군가 여자 남자 샤워실 스티커를 바꿔 붙여 놔서 치 가 바뀌었다는데요?"라고 물었다.


그 수영강사는 
그런말을 또 믿으셨쎄요...하는 표정으로 풍선 불다 바람 샐때 나는 푸시식 하는 소리를 내며 ..아마도 큰소리로 웃고 싶은걸 극강의 인내로 참으신 듯.. 웃음 섞인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설마요...쟤네들이 장난친 거예요. 어떻게 런 생각을 다 했데ㅋㅋㅋ"란다

오 마이 갓뜨.. 하하 요놈들 봐라..... 너네....
지들 끼리 키득거리고 있는
요 깜찍하고 요망한 아이들 에게 고이 속으실뻔한 나는 주먹 쥔 두 손을 부들부들 떨며 콧 평수를 넓히고는 기차 화통 같은 콧김을 날리며 열라리
째려 주었다.
나의 따가운 레이저 째림을 아랑곳하지 않고
음흠 ..하는 어깨 추스름으로 뭐 그럴 수도 있지요 아줌마 하는 표정을 지으며 유유히 사라지는
코딱지만 한 녀석들을 진정 쫓아가서 콕 쥐어박고 싶었으나.
그보다도 수영장 안에서 맹랑한 아이들 에게 휘둘린 몽롱한 아줌마로 등극한 나는

진정 쪽팔려서 수영복 들고 물속으로 그대로 다이빙하고 싶어 지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에 쪽팔림은 옅어지고
그냥 아이들 한테 속아주고 미친척 과감하게 화악...들어가 볼걸 그랬나...?

아쉬워? 하며 으흐흐 음흉한 웃음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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