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니 몸이 가뿐하다.
오늘은 날씨가 좋으려나 보다.
예전에 할머니는 "비 오려나 보다 마당에 빨래 걷어라 "
라고 자주 말씀하시곤 하셨다.
어린 나는 그게 너무 신기해서 "할머니 어떻게 알아? 일기예보에서 그랬어?"
라고 물으면 할머니는 "할매는 일기예보 안 봐도 알아
무릎이 얘기해 주거든"이라고 말씀하셨었다.
어릴 때는 이해하지 못하던 무릎이 얘기해 준다는 할머니 말씀을
중년이 된 지금의 나는 확실히 이해하고 산다.
햇빛이 참 비싼 동네인 독일에서 그것도 겨울 이면
아침 인진 저녁 인진 헛갈리게 어두침침 한 회색의 하늘을
이고 사는 날들이 많다.
그것도 어쩌다 그래야 "아 오늘은 분위기 멜랑꼴리 하군" 하지
허구한 날 그러니 몸과 마음이 찌뿌둥 할 뿐이다.
그러다 가물에 콩 나듯 아침부터 햇살이 쏟아지는 날이면 몸이 저절로 안다.
오늘 날씨 겁나 좋겠군..
아니나 다를까 한가한 주말 아침 햇살이 퍼지고 있다.
그 햇살을 한 줌 머금은 덕일까?
거실 한옆에 놓아둔 작은 화분에서는
어제 까지 조롱조롱 달려 있던 초록의 꽃망울들이 분홍색 꽃을 피웠다.
"어머 예뻐라 이러다 봄 오는 거 아니야?"라며 호들갑 떨던 아줌마 무안하게
밖은 아직 추운 겨울이다.
뺨에 코에 차가운 바람이 쌩하니 와 닿으며 "아줌마 쫌만 더 기둘려~"
라고 속삭이는 것만 같다.
어두운 방안에 불을 켜듯 햇빛이 구석구석 비춰 주는 주말 아침
꽃망울은커녕 아직 메마른 나뭇가지 들 사이로
봄 찾아 날아든 작은 새들 만이 부산스레 움직이며 봄을
재촉할 뿐이지만
그래도 마음 한켠 에는 때 이른 봄을 살짝이 들여놓아 본다.
주말 아침 갗구워 낸 빵을 사러 빵가게에 가는 것은
바쁜 평일에 자주 할 수 없는 여유 로운 호사 중에 하나다.
그 호사를 누리기 위해 남편과 자주 가는 빵가게로 향했다.
집 근처 빵가게 다 놔두고 시장을 핑계로 종종 들리는 이곳에는
내가 애정해 마지않는 커피 자판기가 있다.
여기 커피는
50센트 한화로 600원 정도면 맛난 라테 한잔을 마실수
있다는 것도 매력 넘치지만
우리 동네를 다 뒤져도 한국에서 먹던 자판기 커피맛과
젤루 비슷한 맛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그리 물을 수도 있겠다.
"아니 향 좋은 원두커피 갈아서 우유 데워 라테 만들어 마시면
고급지고 맛날 터인데 웬 자판기 커피?
게다가 그 프림은 뱃속에서 녹지도 않는다는데..."
그래, 안다. 아주 건강식품은 아니라는 것을
그러나 때로는 몸이 아닌 마음의 필요를 위해 서라고 해두자...
50센트짜리 동전 한 잎 넣고 종이컵 안에 커피가 차오르기를
기다리는 동안
예전에 한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며...
도서관에서... 또는 학교에서.... 공원 벤치에서...
때로는 누군가와의 약속 시간을 기다리며
또는 공부를 하다 잠을 깨려고...
그리고 또 어느 날 인가는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그 언젠가는 등 뒤에 넘실 거리는 햇살을 받으며...
햇살 가득한 벤치에 앉아 책장을 넘기며....
커피 한잔 손에 들고 지나온 나의 또 다른 시간들이
커트 커트의 짧은 영상이 되어 지나간다.
기다렸던 커피 한 모금을 입안 가득 머금고
그 옛날 누군가 광고에서 읊조리던
말을 떠올린다.
"음 바로 이맛이야..."
어쩌면 나는 이 한국 자판기 커피 맛을 닮은 커피 맛을 통해
추억을 더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게도 있었던 스무 살의.... 또 그 이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