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습이 없던 날 초등학교를 다니는 막내까지 방과 후에 바로 친구네로 놀러 가기로 약속이 잡혀 있고 오후 늦게 문화센터에서 회의 하나만 하고 나면 일정이 모두 끝나는 날이었다.
그야말로 혼자 만의 자유 시간이 생긴 땡잡은 날 뭘 할까? 뭘 하고 놀면 혼자 잘 놀았다고 소문이 나려나.. 고민하다 나는 이 귀한 혼자 만의 시간을 제대로 만끽해 보기로 했다.
우선 몇 년 전 여름 이사 오기 전까지 살았던 예전 동네를 걸어서 한 바퀴 돌며 설레 이다 못해 멜랑꼴리 해진 마음으로 평소 시간이 없어 못해본 혼자 만의 느긋한 산책을 즐겼다.
몇 시간 째 동네 구석구석을 누비 다가 예쁜 카페에 들어가서 우아하게 앉아 커피도 마시고 맛난 점심도 요즘 말 대로 혼밥 하고 또 한참을 걷다가.... 전부터 꼭 한번 들어 가 보고 싶었던 영화관을 들어가 보기로 했다. 시간이 맞으면 영화도 한편 보고 말이다.
처음 이 작은 영화관을 발견? 했을 때에는 이름도 필름 가게라고 되어 있고 주택가 한적한 곳에 작게 자리하고 있어서 독일 에는 아직까지도 있는 DVD 대여 가게 인가? 했다.
그런데 이곳은 아주 작고 오래된 영화관이었다
이름은 필름 가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내가 상상했던 것처럼 한 번 휙 둘러보면 다 보이는 작고 아늑한
마치 가정집 같은 편안하고 아기자기한 분위기의 미니 영화관이었다.
벽에 붙어 있는 포스터 들을 둘러보아도 이곳에서 상영하는 영화는 우리가 보통 극장에서 볼 수 있는
블록버스터 급 영화들이 아니라 기억도 가물가물 한 오래된 클래식 한 영화 거나 작은 배급소의 독립 영화 들로 개성 넘치는 영화들이 대부분 이였다.
그런데
영화 포스터에서 풍기는 그 아날로그 한 느낌이 탁자와 의자 몇 개가 전부인 영화관 내부와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 마치 떡볶이에 어묵 국물처럼...
오후 두 시 삼십 분이 넘어간 시간... 이미 영화 상영이 시작되었는지 극장 안은 텅 비어 있고
직원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 한 명 만 덩그러니 보였다.
손님이 없어 심심하던 차였던지 그 젊은 남자 직원과 서로 건넨 인사를 시작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게 되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의 어머니가 나와 같은 시기에 카셀 미대에서 공부를 했었단다.
순간 이 친구가 수염 때문에 약간? 더 돼 보여도 거의 우리 아들 또래 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어머니의 이름을 들어 보니 굉장히 어쩐지 익숙하다.
클라우디아....
만나서 얼굴을 보게 된다면 어쩌면 금방 기억해 낼지도 모르겠다.
반가운 옛 친구? 의 아들 일지도 모르는 젊은 친구는 엄마의 동창 일지도 모르는
한국 아줌마 가 나란히 서서 극장에 대해 이것저것 묻고 사진 찍어도 되냐고 귀찮게? 굴어도
친절하게 포즈도 취해 주고 아예 영사실 안 까지 구경시켜 주었다.
지금 영화가 상영 중이라 영사실 안에 불을 켜 줄 수 없노라며 사진 어둡게 나와서 어쩌냐? 는 걱정까지 두루 해 주며 말이다.
이 미니 영화관에서는 영사실 끝에 배치되어 있는 컴퓨터를 통해 디지털 방식으로
잘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작품성 있는 현대 독립 영화 들을 상영 하고 또 어느 때는 저 위의 사진에서 직접 펴서 보여준 오래된 필름 들을 자동차 바퀴처럼 생긴 커다란 판에 감아
영사기로 돌려서 진짜 예전 방식 그대로 옛날 영화를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수요일 에는 독일어 자막이 있는 각 나라별 원어 영화들이 상영된다고 한다.
한국 에서야 당연한 일이지만 독일의 일반 영화관에서는 모든 영화가 독일어 더빙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즐겨 보시던 주말의 명화라는 티브이 프로그램처럼 말이다.
브루스 윌리스나 톰 크루즈처럼 우리에게 비교적 익숙한 유명 할리우드 배우 들의 목소리를 독일 성우 들의 목소리로 듣는다는 것이 처음엔 낯설고 이상 했지만 이젠 그것도 익숙하다
그래서 이렇게 원어로 지원되는 영화를 보는 것은 독일에서는 아주 특별한 일인 셈이다.
이번 수요일 은 프랑스 영화를 상영한다는데 이런... 프랑스 말이 짧아 서리...!
영화 프로그램 편성표를 보니"수요일 은 오리지널 영화"라는 타이틀과 함께 그동안
상영되었던 나라별 국기가 그려져 있다.
그 안에 태극기도 있다. 언젠가 한국 영화도 원어로 상영되었었다는 이야기인데 이 미니 영화관에서
한국 영화 그것도 원어 그대로 볼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마냥 설렌다.
친절한 젊은이에게 (벌써 마음으로는 동창의 아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어머니에게 내 이야기도 해 주라며... 길을 나서려던 나는 아무리 봐도 영화 상영 만으로는 유지되기가 쉽지 않아 보이는 이 작은 영화관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새삼 궁금해졌다.
그래서 그 젊은 친구 에게 이 작은 영화관이 어떻게 운영되는 지를 물었더니 영화관 동우회와 후원자 들 후원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며 아주 재미난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내가 들은 그 스토리는 지금 으로부터 약 30년 전에 카셀 부근에서 개인이 하던 동네 사랑방 같던 작은 영화관들이 경영난으로 허덕이다 하나 둘 문을 닫았다고 했다. 사람들은 너무나 아쉬워했고 아지트처럼 자주 갔던 작은 영화관 에서의
잊지 못할 추억이 많았던 그 당시 대학생 이였던 지금 이 영화관의 사장 님이
안타까워하는 친구들에게 "길 이 없다면 우리가 만들어 보는 거야, 우리가 이 작은 영화관을 지켜 내 보자 "
라고 해서 작은 영화관 동우회를 설립하고 후원자 들을 모아 지금의 이 작은 영화관 "필름 가게"를 만들었다고 했다.
30년 전 그때 당시 젊은 학생 이였을 작은 영화관 "필름 가게" 사장님의 무언가 의미 있는 일에는 남들이 포기한 일일 지라도 멋지게 도전해 보겠다는 뚝심 있는 열정이
나른한 오후 내게 잔잔한 감동으로 몽글몽글 다가왔다.
눈 오는 날 마시는 입안 가득 퍼지는 향긋하고 쌉싸름한 한모금의 카푸치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