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 찾다 식겁했다
옛말에 든 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안다는 말이 있다.
살아 갈수록 그 옛날 인터넷도 없고 검색도 없는 세상에 살았을 우리 조상님네들은
참으로 현명했을 뿐만 아니라 비유에 천재들이 아녔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어찌나 이리 속속들이 찰떡같은 말들을 만들어 내셨는지 말이다.
딸내미를 간신히 기차 태워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니 집안이 텅 빈 것 같고 괜스레 힘이 빠졌다
역에서 스펙터클 하게 진행된 탓도 있었지만 이제 익숙해 질만 한데도 그게 잘 안된다.
직장인이 된 큰아들은 어릴 때부터도 집에 있는 시간보다 밖에서 지낸 시간이 많았고
대학교 졸업반인 딸내미도 벌써 몇 년 전부터 도시가 다른 곳에 따로 살고 있다.
지난 세월 다섯 명이 지지고 볶으며 한 지붕 아래 살았던 게 언제였던가 싶게 어쩌다 온 가족이 모두 모이는 날은 이제 일 년에 몇 번 되지 않는다.
크리스마스 같은 명절 때나 우리 부부의 생일날 정도이지 싶다.
다 자란 아이들이 각자의 곳에서 일하고 공부하며 스케줄에 맞춰 오고 가고 하는 건
이젠 우리 집에서 자연스러운 일이건만..
애들이 집으로 온다 하는 날의 설레는 기다림 보다 가고 난 후에 허전함이 내겐 더 오래 남는 것 같다.
그런 내 기분 상태를 잘 아는 남편은 어떻게든 마누라의 다운된 기분을 맞춰 주기 위해 애를 쓴다.
평소에 먼지가 쌓여도 나는 안 보여하고 모른 척하는 마누라가 여기저기 쓸고 닦고 있고
딱따구리 같이 시끄럽고 말 많은 마누라가 늘어지는 트로트를 틀어 놓고 코 막힌 소리로 "해일수 없는 수많은 밤을~~"쿵짜짝짝짝 하며 청승맞게도 따라 부르고 있다는 건 꽤나 맘이 힘들다는 시그널 이기 때문이다.
그날도 남편은 기골이 장대한 마누라의 몸과 마음을 채워 주기 위해 분위기 있는 브런치 카페를 가자고 했다.
이 브런치 카페는 이전에도 한번 언급한 적이 있다.
우리가 꽃, 나무, 모종 등의 식물과 비료 흙 등을 사러 자주 가는 정원용품 센터 우리는 여길 꽃 상가 라 부른다.
지붕과 전면이 햇빛이 골고루 들어오도록 유리로 되어 있는 이곳은 마치 온실 같기도 하고 식물원 같기도 하다.
그 안에 그리스 식당 같은 카페가 하나 있는데 여기 브런치 카페가 이런 분위기로
유명해서 예약 안 하고 가면 어느 때는 앉을자리가 없다
그날도 카페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할머니들이 계모임을 하시는지 한쪽은 단체 손님으로 꽉 차있었고 떠들썩했다.
오밀조밀 예쁜 테라스 분위기 나는 자리들은 이미 꽁냥꽁냥 하고 있는 커플들로 차 있었다.
또 예전에 앉아 보았던 자리들은 예약 푯말을 걸고 있었다.
1층에 자리가 없으면 2층으로 올라가기도 했는데 아침부터 오르락 내리락을 충분히 한 우리는 빈자리 중에 아무 곳이나 앉기로 했다.
그래서 처음으로 계단 아래 입구 쪽 테이블에 앉았다.
원래 그쪽은 계단으로 오르내리는 사람들과 화장실 가려는 사람들 그리고 입구에서 들어오는 사람들
의 동선들이 겹쳐 어수선할 때가 많아 별로 선호하지 않는 자리였다
그러나 주말에 예약도 없이 왔는데 이 자리 저 자리 가릴 처지는 아니지 않은가
자리에 앉아 우리는 표지가 두툼한 나무판으로 되어 있는 메뉴판을 펼쳐 들었다.
까끌까끌한 느낌의 진짜 나무로 만든 공책 같이 생긴 메뉴판은 오가닉 한 느낌을 준다
수많은 메뉴 중에 남편은 맛있는 브런치를 나는 시골 브런치를 골랐다.
내가 고른 브런치의 이름을 그대로 번역하면 농부의 브런치인데 나는 왠지
시골 브런치라 부르고 싶다
양이 푸지고 후한 것이 예전 우리네 시골 인심을 떠올리게 해서 그런 것 같다.
남편은 녹차를 나는 과일차를 골랐다.
원래는 남편은 크림 커피를 나는 라테마끼아또를 시키고는 했는데
아침부터 역에서 기차 기다리느라 이미 충분히 커피를 드링킹 해서 따뜻한고 포근한
느낌의 차가 마시고 싶었다.
우리가 메뉴판을 뒤적이고 있자 젊은 처자가 쪼르르 주문을 받으러 왔다
독일에서는 식사를 주문하기 전에 먼저 음료를 주문한다.
우리처럼 보리차 또는 물은 셀프 이런 게 없기 때문에 음료수는 누구나 시켜줘야 한다.
그리고 식사 메뉴는 주문한 음료가 나올 때 자연스레 시켜도 된다.
그때까지 충분히 메뉴를 고르라는 의도 도 있고 모든 게 천천히 진행되는 독일에서는
주문하고 음식 받는 시간도 하세월 일 때가 많으니 중간에 음료라도 들고 있으라는
의미도 된다 이야기할 수 있겠다.
어쨌거나 성질 급한 우리는 음료도 식사 메뉴도 이미 골라 두었고
한 번에 주문을 했다.
햇살 같이 웃으며 주문을 받던 젊은 처자는 스물하나 둘은 되었을까? 싶게
앳되어 보였다.
그녀가 가져다준 녹차와 과일차는 장난감 같이 작고 귀여운 네모난 통 안에 들어가 있었다
따뜻한 물만 담겨 왔던 유리잔 안에 차티베트를 담그니 어여쁜 주홍색으로 과일차가 우러났다.
음 향도 좋고 과일 차 중에는 신맛이 강한 것들도 많은데 신맛도 없이 부드럽다
예쁜 차의 빛깔과 맛에 빠져 있는 사이 하나 둘 브런치 메뉴들이 속속 테이블을 채워 나갔다
시골빵 같은 고소 하고 시큼 짭조름 한 브로트 호밀빵과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작은 빵 브뢰첸
두 가지가 바구니에 담겨 나왔다
그 뒤에 두 가지 종류에 햄과 살라미 오이와 토마토 삶은 계란 두 종류의 치즈와 두쪽의 버터가 한 접시에 담긴남편의 맛있는 브런치가 놓였다.
그리고 계란과 감자와 잘게 자른 베이컨 스크램블 위에 오이피클이 올려져 있는 나의 시골 브런치가
뒤이어 나왔다.
문득 지난번 한국에서 딸내미와 예쁜 브런치 카페에 갔던 날이 떠올랐다.
남편과 먹은 브런치가 한화로 4만 원 조금 넘게 나왔으니 아마도 그때 한국 브런치 카페에서 먹은
것과 얼추 가격면에서는 비슷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역시나 한국 브런치 카페의 브런치는 예술 작품처럼 오밀조밀 "아유 이거 아까워서 어떻게 먹나!"
하게 예뻤다 물론 비주얼만큼이나 맛도 훌륭했다.
단지 이렇게 푸지게 나오는 독일 브런치에 비해 양이 조금? 내게 아쉬웠다.
아마도 한국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소식하는 분들이 많아 그런 것 같다
가격대비 독일에서 브런치를 먹고 나면 저녁 먹을 때까지 든든한 편인데
한국에서는 얼마 안 가 배가 고파져서 점심으로 닭칼국수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건 나 같이 늘 입맛이 도는 사람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한참 맛나게 먹으며 남편과 한국에서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그만 내 눈을 의심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우리 테이블 맡은 편에는 2층으로 향하는 긴 계단이 있다.
그 계단에서 아까 우리 주문을 받고 우리에게 브런치를 가져다준 젊은
처자가 발을 헛디뎌 넘어지고 있었다
돌아 앉아 있는 남편은 그 모습을 볼 수 없었고 그 현장을 느리게 감기 시물레이션 하듯
목격한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어 어 할 수밖에 없었다.
계단은 많고 운동신경 없고 느린 내가 뛴다 한들 그 상황을 막을 방법은 없어 보였다
쿠당탕 소리에 다른 직원들과 사장님까지 한 팀이 뛰어나왔고
계단에 발이 걸려 있던 젊은이는 다행히 계단에서 크게 구르지 않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게다가 현명하게도 들고 있던 유리잔을 던졌다.
만약 그녀가 유리잔째 넘어졌다면 크게 다칠 수도 있었던 위험한 상황이었다
달려 나온 동료들이 그녀에게 가 보고 있는 와중에 사장님이 내게 와서 물었다.
그 직원이 넘어지는 모습을 다 보았느냐고
나는 뛰어가 도와줄 수는 없었으나 내가 본 것을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때로 너무 갑작스러운 일들은 당한 사람도 제대로 기억 못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계단에 발이 걸린 체 넘어지며 유리잔을 최대한 낮게 던지며 그대로 주저앉았기 때문에
발목과 손목에 무리가 가기는 했겠으나 머리와 허리등 주요 부위를 보호할 수 있었다는
나의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카페 사장님이 말했다
"젊어서 그래요 만약 우리였으면 저 정도로 안 끝났을 거예요"
맞는 말이다 그야말로 젊어서 순발력이 뛰어났기에 망정이지 끝없이 펼쳐진 계단을
유리잔관 함께 데굴데굴 구를 수도 있는 위험천만의 상황 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듣다 보니 기분이 묘한 것이 그 싸장님 웃기네 싶기는 했다 자기면 자기지 왜 우리라는 테두리에
나까지 친절하게 넣어 주냐는 말이다 내가 보니 언니 같더구먼.. 괜한 곳에 경쟁심 느끼는 1인..
상황이 일단락되고 직원이 무사히 일어 나서 걷는 것을 보고는 남편이 우리가 자리를 옮기자고 했다.
그때 보니 유리 파편들이 우리 테이블 아래까지 가루가 나 있었다.
우리가 다른 곳으로 옮겨야 청소를 편하게 하시지 않겠냐며 남편은 빈자리로 옮겨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사장님은 유리 파편들이 우리 테이블 밑으로 낭자한 것을 확인하고는 식사 새로 가져다
드리겠노라 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거의 다 먹고 남은 게 없는 빈접시들을 쳐다보며 괜찮다며 자리만 옮기겠노라
했다
양심이 있지 뭘 거기서 더 먹겠나 다행히 그젊은 처자가 크게 다친것 같아 보이진 않아
가슴을 쓸어 내렸지만 너무 놀라서 더이상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분위기 찾다 식겁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