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독일은 마치 4월 초가 아닌 6월 어느 날 같았다.
아침부터 쏟아지는 햇살 이라니...
봄은 건너뛰고 여름으로 바로 들어온 듯했다
그 덕분인지..
남편과 운동을 하러 헬스장엘 갔는데 다른 때 라면 사람들로
북적 대야 할 곳들이 텅 비어 있는 게 아닌가?
하기야 이런 날씨에 누가 갇혀? 있는 공간에서 운동을 하고 싶겠는가..
아마도 야외로 피크닉을 나가거나 데이트를 나간 사람들이 많은 듯싶었다.
우리도 다른 날 보다 운동을 빨리 끝내고 나들이를 가기로 했다.
화창한 날씨가 너무 아까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타고 달려간 곳은 다름 아닌 우리가 정원 용품 백화점이라 부르는
꽃상가였다.
이곳은 시내에서 제법 떨어진 외각에 위치한 곳이지만 꽃, 나무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연령대 상관없이 누구나 아는 곳이다.
독일 사람들이 정원 가꾸는 것에 워낙 진심 인 데다가 이곳의 식물원 같은 분위기와 브런치 카페가 유명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건물 전체가 커다란 온실 또는 식물원 같이 생긴 이곳에는 제철 꽃들과 식물들 뿐만 아니라 각종 채소 모종들과 허브 모종들..
그리고 크고 작은 정원 데코들, 종류 다양한 흙들과 비료, 크기 다양한 화분들과 다채로운 정원 용품들로 꽉 차있다.
건물 바깥쪽으로도 세워둔 과일나무 들부터 다양한 정원수 들까지 정원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이 다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정원 달린 집으로 이사를 오면서 어쩌다 보니 도시 텃밭러가 된 지도 십 년이다.
아직도 모르는 게 많고 서툴지만 그럼에도 해마다 정원 텃밭에 무엇을 심을까 즐거운
고민을 한다.
비가 많이 내린 탓에 다른 해 보다 몇 주 늦게 시작했지만 독일의 3월 4월은 명실공히 텃밭 시즌이다.
꽃 상가 안에는 카트를 밀고 오가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각각의 카트 안에는 어느 집 정원으로 또는 베란다에 심길 꽃 들과 모종들이 담겨 있다.
해마다 텃밭을 가꾸다 보니 이제는 남의 집 카트에 담겨 있는 꽃 종류 들과 채소 모종들의 양만 보아도 대략 저 집은 정원이다 또는 베란다 구나 하고 알 수가 있다.
바삐 오가는 카트 속에 담긴 초록을 흠뻑 품은 토마토, 오이, 호박 등의 채소 모종들과 바질, 파슬리, 등의 연두 연두한 허브들을 보고 있노라니 그 파릇함이 내게도 스며드는 느낌이 들었다.
심란하던 마음이 평온을 찾아오는 순간이다.
사실 요 근래 신경 쓰이는 것들이 있어 마음이 온전히 편하지는 못했다.
이 세상에 한순간도 걱정 없이 사는 사람이 있기나 하겠는가 만은..
얼마 전 대만에 지진이 났을 때 큰아들은 대만에 있었고..
작년에 한국의 대학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온 딸내미는 다니던 독일 대학이 있는 곳에서 다시 지내야 할 곳을 찾아야 했다.
또 이번 여름에 교환학생으로 미국을 가게 된 막내는 여러 가지 챙겨야 할 것이 많았다.
거기다가 병원에서 또한 서류처리 할 일이 산더미였고 집에 자동차도 문제가 생겨
고칠 것인지 이제 폐차할 것인지 또한 고민해야 했다.
사람이 살다 보면 걱정거리는 때로 순서를 정해서 찾아오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동시다발로 밀려오기도 한다.
사실, 이러나저러나 급한 것부터 순차적으로 해결해 나가면 될 터인데
차분하지 못한 내 성격이 문제다.
모든 걸 한 번에 다 해결하려다 보니 체력은 안되고 스스로를 볶더라 이거다.
나는 보기에는 꽤나 털털하고 외향적인 성격으로 보이지만 내향적인 면이 많은 사람이다.
무언가 신경 쓰이는 일이 있으면 그게 다 정리될 때까지 그 관련된 것들이 알게 모르게
계속 머릿속을 떠돌고는 한다
또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를 일까지 여행지 숙소 미리 예약하듯 당겨서 걱정하는 재주도 있다
언젠가 가족들과 이야기하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엄마는 취미가 걱정 이잖아!"라며 웃음을 터트린 적도 있으니 말 다했지 뭔가
한마디로 조금? 예민하고 피곤한 스타일이라고 하겠다.
재밌는 것은 그럼에도 mbti 검사를 해 보면 늘 I 가 아닌 E로 시작된다는 거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고는 한다 나는 어쩌면 E와 I의 경계선에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어쨌거나 날씨가 좋아도.. 맛난 걸 먹어도.. 주말이라 쉬고 있어도.. 운동을 해도.. 짬짬이 쳐들어 오는
잡생각 들로 복잡하던 머릿속들이 초록이 들로 스르륵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모종 코너 속 작은 화분들 사이에 흙을 뚫고 나온 여린 초록의 잎들이 내게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이런 작은 순간들이 모여 오늘이 되는 거야 그러니 실컷 웃고 편안해지려고 노력해 봐!”
꽃 상가에서 카트 가득 담아 온 초록의 모종 들과 꽃들을 정원 한편에 줄 세워 두었다.
미리 정리해 둔 텃밭 앞에 초록이 모종들을 줄지어 세워 두고 어디에 무얼 심을까? 하고 있자니 설렘이 밀려든다.
우리가 가져온 모종들은 종류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하나에 79센트 한화로 천 원이 살짝 넘어가는 것들이 많다.
천 원에 이런 두근 거림을 덤으로 받을 수 있다니 남는 장사다.
우리 집 텃밭에서 작년에는 노란 호박이 잘 되었다 너무 잘 되다 보니 팔뚝만 한 노란 호박들이 자리를 다 차지하는 바람에 자리 제대로 못 잡은 고구마와 양배추는 잘 자라지를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욕심부리지 않고 텃밭에 빈자리 넉넉하게 꾸려 보기로 한다.
텃밭 맨 뒤쪽에는 빨간 단호박 모종 두 개와 작은 초록색 호박 모종 두 개 그리고 중간에는 피클 오이 모종 세 개와 쪽파 모종을 각기 따로 심기로 한다.
그리고 텃밭 앞쪽으로는 민트, 바질, 파슬리, 고수 등의 허브들을 다양하게 포진시키기로 한다.
수선화 피고 있는 화단 앞쪽 토마토 미니 텃밭에는 이번엔 방울토마토만 모종 세 개를 나란히 심기로 했다.
작년에는 갑자기 찾아온 자연재해 때문에 토마토 농사? 가 망했다.
우박과 장대비를 동반한 폭풍으로 토마토 대가 모두 꺾여 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게 중에 살아남은 것들로 샐러드도 해 먹고 했지만.. 그 푸르던 텃밭은 더 이상
아니었다.
그런 자연재해 만 아니라면 심어 보니 토마토는 아주 잘 자라는 텃밭 채소 중에 하나다
때 되면 토마토는 열매가 많이 열린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 토마토는 제때 대를 세워주고 때맞춰 따주고 해야 된다.
품종 다르게 다양하게 심은 토마토에서 새들이 먼저 찜하는 걸 면하려면 욕심부리지 않고 관리 가능하게 올해는 한 가지만 심기로 한다.
또 몇 년간 일구었던 미니 딸기밭에는 딸기 잎들이 뾰족뾰족 나오고 있다.
마치 시간 약속이라도 했다는 듯이…
그 앞쪽에 색깔 다른 상추 모종 두 가지를 각각 심기로 한다.
그 옆에는 커다란 화분 두 곳에 귀하게 얻은 들깨 씨를 뿌리기로 한다.
그렇게 세 곳의 텃밭에 무엇을 심을지 정하고 삽으로 땅을 파고 모종을 심다 보니
어느새 내 맘 가운데 초록초록한 싱그러움만 가득하다
아마도 내 튼실한 팔뚝으로 깊게 판 땅속에 잡생각도 따라 묻혀 버렸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