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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Jul 22. 2024

고기코너 싸가지와 돌아온 파이터

독일 마트에서....


바깥 기온이 32도가 훌쩍 넘어가고 집안 온도계가 26도를 넘어 서던 날이었다.

여름방학이 시작된 막내가 동글동글한 웃음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엄마 이런 날씨엔 냉면을 먹어야 되지 않아?"

냉면이 먹고 싶다는 말을 제법 돌려 말할 줄아는 막내가 귀엽기도 하고 재밌어서

웃음이 났다.

독일은 여름이 짧아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이 여름을 나는 집들이 많다.


이렇게 덥다가도 며칠 비 오고 언제 더웠남? 하듯 온도 뚝 떨어져 10도 이상 차이 나는 게 독일 여름 날씨 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대충 참으면 이 또한 지나가리 뭐 하러 전기세 들여!“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게 여름이면 독일 전자상가에 에어컨과 선풍기가 줄지어 나와 있어도 불티 나게 팔리지는 않는 이유 이기도 하다.


물론 요즘은 해를 거듭할수록 더위가 업그레이드 되고 있어서 예전에 비해 에어컨과 선풍기 사용량이 늘고 있지만 말이다.

우리도 각방에 선풍기를 사용 중이다

아침저녁 충분한 시간으로 집안 전체를 환기시키고 한낮에는 햇빛을 가려 두고

선풍기에서 미지근 한 바람 나올 때까지 틀어 대도..

한번 올라간 집안의 온도는 쉽사리 내려가 주지 않는다.


일기예보에서 주말에 32도까지 올라간다고 하더니 체감 온도는 그 이상이었다.

"요즘 일기 예보 정말 잘 맞아!" 하며 얼음물을 연거푸 마셔도 그때뿐 계속 더웠다.

습도마저 올라가서 마치 작년 여름 우리가 만난 한국여름을 연상케 하는

날씨였다.

자동으로 살얼음 동동 뜬 물냉면이 먹고 싶어 졌다.

한국 같았으면 “냉명 먹으러 가자!” 한마디면 되었겠지만 이 동네 에서야 먹고 싶으면…

한식당이 많은 대도시 프랑크푸르트 또는베를린 으로 차를 타고 몇시간씩 달려 가던가 자급자족 해야 한다.  

독일 마트의 튼실한 콜라비

이른 아침 커피 한잔 마시고 곧장 마트로 향했다

날 더워지기 전에 빨리 장 봐다가 육수부터 내어 놓아야 냉면을 먹지 않겠는가.


아침 일찍이라 그런지 아니면 아이들 여름 방학이 시작되어 본격적인 여름휴가철이라어디론가 휴가 떠난 사람들이 많아 그런지 마트 안은 다른때 보다 한가 로웠다.

우선 채소 칸에서 콜라비 세 개와 오이를 골라 담았다.


이 동네 에는 마트에 무가 없을 때도 많고 있어도 너무 짜리 몽땅 하고 찌들 쌔들 하거나 심이 박혀 있어 니맛도내맛도 없을 때가 많아서 콜라비가 싱싱하고 좋아 보이면 무 대용으로 자주 사용 한다.

평소에 채소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막내도 무와 오이 양파를 식초, 설탕, 소금으로

새콤 달콤하게 양념해 두었다가 냉면 고명으로 얹어 주면 고기 고명만큼 이나 맛나게

먹기 때문이다.


그다음은 고기칸 쪽으로 이동 …이쪽 마트는 그래도 고기 코너가 따로 있어서 작은 마트들 에 비해 선택의 폭이 넓은 편이다.

우리처럼 정육점 가면 요리에 맞춰 부위 별로 알아서 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만은

이 동네 고깃간은 알아서 찾아야 한다.


이것저것 육수를 내어 보니 깊은 맛을 내려면 갈비탕 끓일 때 사용하는 소갈비로 Querrippe 내면 좋고 간단하게 육수를 내려면 이 동네 국물용 고기를  Suppenfleisch 사용해도 무방 하다.

국물 내기 좋은 소갈비를 마트마다 구비해 놓고 있는 게 아니고 Suppenfleisch 중에는 양지머리가 Beef Brisket 있기 때문이다.


요즘 독일의 정육점 또는 마트 고기 코너에서는 주로 그릴 용 양념 고기들이 많이 나와 있다.

아무도 없는 고기 코너에서 요런조런 양념들에 재워진 고기들을 눈으로 훑고 있었다.

고기 코너에서는 수시로 안쪽 냉장칸 쪽에 있는 고기들을 손질 해서 밖의 냉장칸으로

이동해 오기 때문에 종종 직원들이 아무도 안 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 울리라고 초인종 같은 것을 가져도 둔 마트도 여러 군데 있는데 이것저것 구경

하고 있으면 누군가 나오는데 굳이 뭘 누르나 싶어 진짜 급할 때 아니면 기다릴 때가 많다

기다리다 보니 이윽고 마트 유니폼 입은 누군가 나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포장된 독일 고기칸의 양지머리
그릴용으로 여러가지 양념이 되어 있는 서로 다른 고기들

그런데 그 직원은 나올 때부터 뭔가 남달랐다.

누구나 더 힘든 날이 있기 마련이고 날씨가 더운 날이 계속되니 지칠 만도 하다

그런데 20대 중반? 우리 딸내미 보다 한두 살이나 더 먹었을까? 정도로 보이는

젊은 직원은 왠지 억지로 끌려 나온 사람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트 유니폼과 앞치마 그리고 그녀는 긴 생머리를 하나로 묶고 위생모까지 착실히 쓰고 있었지만 그녀의 어디에도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의료도 일종의 서비스직이다 보니 사람 상대하는 일의 힘듦을 안다.

병원에서 별의별 환자들과 보호자들 간병인들 기타 등등을 만나다 보면 지칠 때가 허다하다.

세상엔 참 별사람이 다 있구나 싶은 날도 많고 일중에 제일 힘든 일이 사람 상대 하는 일이지 싶다.


그래서 마트에 오면 웬만해서는 기다리고 별로 좋지 못한 성격임에도 성질내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들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 그녀는 조금 유별났다. 아무리 이런저런 걸 다 감안한다고 해도 말이다.

독일 고깃간에는 위로 아래로 이름표가 붙어 있다 거기엔 g당 또는 kg당 가격표도

나란히 적혀 있다.

그런데 고기가 덩어리째 크게 나뉘어 있기도 하고 같은 부위라도 용도가 다를 수 있어

가끔은 물어보아야 할 때가 있다.

같은 부위라 해도 어떤 건 굽거나 그릴용으로 나온 게 있고 또 다른 건 오븐이나 냄비에 익혀야 할 찜이나 말이 용으로 나온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국물용 소고기가 필요하다는 설명과 함께 기왕이면 가슴 부위를 찾고 있다고 했다

국물용 고기들로 나와 있는 것 중에 어느 것이냐 물었다.

그랬더니 이 젊은 처자가 왼쪽 맨 아래쪽은 턱짓으로 중간 위쪽에 있던 것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게 아닌가?

아니 뭐 하자는 시추에이션?

슬슬 빡치기 시작했다. 아무리 기분 나쁜 일이 있었다 해도 이른 아침이요 손님 앞이 아닌가

생글생글 웃으며 친절 까지는 독일에서 바라지도 않는다. 그러나 손님이 묻는 말에 턱짓에 손짓 이라니?


예전 같았으면 송곳 같은 말들이 바로 튀어나왔을 거인데...

얼마나 힘이 들면.. 말할 힘도 제대로 없나 보다.. 이해해 주기로

했다.


나는 국물용 고기 중에 제법 큰 덩어리를 골랐다

그녀가 가리킨 왼쪽 하단에 포장되어 누워 있는 고기를 보고는 이게 대체 몇 그램이나 되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직원이 낮은 한숨을 쉬더니 고깃덩어리를 저울 위에 내동댕이 치듯 던져 놓고는

"800 그램 조금 넘네요!" 했다.

거기서 나의 인내심은 바닥이 났다.

나는 예의 그 흰 눈동자가 더 보이는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

"어디 아프세요?" 그랬더니 그 직원은 너무나 뜻밖이라는 표정을 숨기지 않은 채

내게 말했다" 아니요!"


조금 벙쩌 있던 직원에게 틈을 주지 않고 물었다

"그럼 아침부터 누구랑 대판 싸웠어요?"

당황한 얼굴에 직원은 말까지 더듬으며 "아아 닌데요!" 했다

나는 많이 참았다 아이가 하는 뜻을 가득 담은 한숨을 푹 내쉬며

"그런데 왜 그래요?" 했다.

그랬더니..

그녀는 동공이 흔들리며 어쩔 줄 몰라하는 얼굴로 "제가 뭐를 요?" 했다.


나는 차가운 어투로 따박따박 따져 댔다.

"아까부터 계속 뭘 물어도 대답도 제대로 안 하고 고기도 던지듯 저울에 달고 당신 여기 직원 아니에요?"

그랬더니 " 저 안 그랬는데요?"라며 얼굴이 빨개졌다.

양심은 있는지 볼 빨간 얼굴을 보며 그녀의 가슴팍에 딱 적혀 있는 이름까지 불러 주며 말했다.


"누구누구 씨 사람이 살다 보면 더 힘든 날도 있고 기분 나쁜 날도 있겠죠

그렇다고 손님한테 기분 내키는 대로 신경질 부리는건 말이 안 되죠!"

그랬더니 다급한 목소리로 그녀는 말했다

"저 신경질 안 냈어요 말투가 원래 이래요!"

어이없는 변명을 계속해 대는 직원에게 말했다.


"말투가 원래 그런 사람이 어딨 어요? 손님이 물으면 안내해 주는 것도 담당 직원의 일이죠

내가 고기에 대해 물었지 화장품에 대해 물었던 게 아니잖아요?

그렇게 손짓, 턱짓으로 끝낼 것 같으면 직원이 왜 필요해요?

잘라서 팩에 담아 놓고 가지고 가라고 하면 되지 안 그래요?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세요 누구누구 씨!"

라며 그녀의 이름을 한 번 더 불러 주며 쇠기를 박아 주었다.


안 그래도 말이 빠른 편에 속하는 나는 화가나면 속사포가 된다.

나의 융단폭격 같은 주댕이 공격에 넋이 빠져 있던 직원은 내게 떨리는 손으로 공손히 고기를 건네주며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고 했다.

나는"네 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라며 돌아서 나왔다.


끝까지 입으로는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고 온몸으로 민망함과 죄송스러움을

뿜어 대는 직원이 안쓰럽기도 하고 기가 막히기도 해서 헛웃음이 터졌다.

독일에서는 다툼이나 싸움이 생겼을때 먼저 미안하다는 말을 내뱉는 순간 법적 책임의 소지가 갈린다

때문에 사람들이 미안하다는 말을 여간 해서는 잘하지 않는다

그래서 미안하다는 말을 받아 내려면 얼마든지 다음 단계를 취할 수 있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러나 그렇게 까지 해서 얻어지는 게 무엇인가 이 정도 했으면 그 젊은 직원도 이제는

쉽사리 손님에게 멋대로 굴지는 못하리라

더운 날 끓는 물에 고기 넣고 냉면 육수 내기도 전에 싸가지 직원 덕분에 빡쳐서 머리로 국 끓일뻔 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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