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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Jul 18. 2024

독일 한여름밤의 납량특집

어둠 속에 초인종이 울릴 때...


들쑥날쑥 하기는 하지만 독일도 무더위가 찾아와 제대로 여름 날씨를 만끽하고 있다.

지난주는 낮최고 온도 20도 에서 22도로 선선한 것이 어느 가을날 같았다.

그런데 주말 지나고 나니 온도가 쭉쭉 올라가 오후가 되면 28도 에서 30도 사이가 된다.

이미 체감온도 30도를 웃돌아 장 보러 가는일도 미루고 미루다 저녁 먹고 움직일 지경이 되었다.

독일의 무더위는 한국처럼 습하게 더운 것은 아니지만 짱짱한 햇빛이

이글이글 살갗을 태울 듯이 덥다.


그 햇빛이 저녁 9시까지 머물다 간다. 물론 같은 온도를 품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이렇게 여름엔 햇빛이 오래 있다 보니 햇빛량이 쏟아지는 정오 에는 커튼, 블라인드 등의 창문 가리개로 볕을 가려 두는 곳들이 많다.

평소 그렇게 환기에 진심인 독일 사람들이 창문도 꼭꼭 닫아 둔 체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안 그래도 올라간 집안의 온도를 사정없이 올려 주기 때문이다.

우리 집도 창문마다 커튼을 내려 두고 햇빛의 영향을 가장 적게 받는 위층 베란다 창문과 아래층 주방 끝에 창문만 환기용으로 살짝  열어 둔 체 햇빛 차단에 나선다.


그러면...

하루 종일 햇빛 받으며 병원 앞 주차장에 세워둔 자동차 안은

계란찜은 너끈이 될 듯 뜨거워도 집 현관문을 열면

"아우 그래도 우리 집이 제일 시원해!"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렇게 퇴근해서 찬물로 씻고 냉장고 안에 있던 차가운 수박 꺼내 먹고 누우면

휴가가 따로 없다.


그렇게 쉬고 있던 어느 저녁.. 8시가 넘어가고 있던 시간에 누군가 초인종을 눌렀다.

사람 사는 집에 초인종 소리가 들리는 건 이상할 게 없지만 시간이 좀 거시기했다.

그 시간은 남의 집 벨 누르고 도망가는 장난을 칠 수 있는 동네 꼬마들도 저녁 먹고 잠자리에 들어갈 시간이고 우체국 택배도 다니지 않을 시간인데 말이다

물론 가끔 그 시간에 아마존 택배가 오기는 하지만 때마다 핸드폰 엡에서

어디쯤 오고 있다고 알림이 오기 때문에 미리 대략 언제쯤 도착할지 알게 된다


나는 혹시나 하고 소파와 한 몸이 되신 지 오래인 남편에게 물었다.

"혹시 약 시킨 거 있어?" 새로운 약 테스트 해 보는 걸 좋아하는 남편이

또 뭘 시켰나 하고 말이다.

남편은 눈도 뜨지 않고 영혼이 가출한 말투로 잠꼬대하듯 "없어!"라고 중얼 댔고

그사이 두 번째 초인종 소리가 딩동하고 들려왔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열쇠를 찾아들고 현관 앞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아닌 밤중에 웬 열쇠 인가 하면..

독일집의 문들은 도어록이 아닌 열쇠로 열고 잠그는 집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많은 부분에서 최첨단 기술을 자랑하는 독일이지만 일상은 아날로그 스러운게 많다.

어떤 것은 내가 한국에서 살았던 1990년대일상의 모습들과 닮아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30년 전 우리도 집 열쇠를 들고 다녔고 무더운 여름을 에어컨 없이 부채나 선풍기 앞에서 났다.

또 지금은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CCTV 가 그 시절에는 없는 곳이 많았다 마치 지금의 독일처럼...


독일에서는 개인의 사생활 보호 때문에 거리뿐만이 아니라 가정에서 방범용 CCTV를 다는 것도 따로 허가를 받아야 한다.

거기다 현관문 앞에 누가 왔는지 확인할 수 있는 인터폰도 마찬가지! 목소리가 들리는 것은 상관없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이 내다 보이는 화면이 나오는 것은 허가 없이 마음대로 달수가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독일 일반 가정 주택 들은 우리 집처럼 그냥 벨 소리만 장착한 초인종이고 여러 사람이 드나드는 주상복합 건물이나 아파트, 빌라 같은 곳은 목소리만 들리는 인터폰을 설치해 둔 곳이 많다.



현관 앞에 멈춰 선 나는 곧바로 누구세요? 했다. 아무 대답도 없고 인기척이 나지 않았다.

분명 조금 전 열쇠를 꺼내 들 때 세 번째로 딩동하고 초인종 소리가 들렸는데 말이다.

만약, 택배 아저씨나 우편배달부였을 경우 부스럭 거리는 우편물 소리가 들렸을 것이고 이웃에 누군가였다면 누구라고 이야기했을 것이며 종종 집집마다 방문 하는 좋은 소식 전하려고 왔다는 이단 옆차기 들도 공손한 목소리로 본인들이 누구인지 밝힌다.


그래서 수상 했다. 초인종 소리 외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게 그랬고 무엇보다 그 모든 경우의 수가 일어날 시간이 아니라는 게 괜스레 신경이 쓰였다

나리 자리 (현관 앞 우리 집 멍뭉이 지정석 )에서 쪼그려 앉아 밖을 내다

보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는 누군가 우리 집 현관 앞에 있다면 최소한 누군가의 발 정도는 보이기 마련인데 말이다.


뭐지? 누구지?

열쇠를 돌려 문을 열었는데 역시나 문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쪽저쪽 둘러보아도 그 길 앞엔 사람이 지나간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세 번째 초인종 소리를 들으며 열쇠로 현관문을 연 시간은 30초 남짓 걸렸을까?

그사이 누군가 초인종을 누르고 기다리다 돌아갔다 해도 최소한 뒷모습이라도

보여야 할 테다. 벨 누르고 공중부양을 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또 뭔가 볼일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안에서 여러 소리가 들렸을 텐데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지 않았을까?

하여튼 기분이 묘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수상한 초인종 소리를 들었던 그저녁은 그렇게 지나가고…

다른 날 저녁 막내는 3층 형아 방에 남편은 2층 욕실에 있었고 나 홀로 아래층 주방에서 저녁준비를 하다가 또 울려 대는 초인종 소리에 후다닥 현관 앞으로 나갔다

그날도 그전과 다르지 않았다 도대체 어떤 놈이 장난질 인가 싶어 약이 올랐다. 초인종앞에 장난치지 마시오!

라도 써 붙여 놓을까? 고민될 정도로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의문의 초인종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번엔 저녁 먹고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드라마를 보고 있던 밤 10시가 다 되어 가는 제법 늦은 시간이었다



이번엔 남편에게 나가 보라고 했다. 그리고 뭔가 무기가 될만한 것을 찾다 바닥 닦는 용긴 막대를 손에 들고 남편 뒤쪽에 섰다.

뒤에 섰다고 가려 질리 만무했고 우리 집 멍뭉이 나리도 불러다 옆에 앉혀 놨다.

왠지 기분이 이상 해서…

현관문이 열리고 나온 남자 그리고 그 뒤에 막대기 든 싸나움이 줄줄 흐르는 떡대의 아줌마와 제법 험상궂어 보이는 큰 개는

위협적으로 보일 수 있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실상은 흡사 동화 브레멘의 음악대처럼 오합지졸의 꼬라지로 보일 지라도 말이다.


그런데 현관문을 열던 남편이 말했다 "아무도 없는데!"

그날도 초인종 소리만 연거푸 세 번 들려오고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괜한 오버를 떨었나?

“뭐야 도대체 어떤 새끼야?”소리가 저절로 튀어나왔다.

이쯤 되면 누가 작정하고 장난을 치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그러다... 우리 동네에서…

그 이상한 기분의 이유를 확인하게 된 사건이 터졌다


우리 병원 환자 중에 80대의 게하트 할아버지는 몇 년 전 부인과 사별을 하시고 혼자 살고 계신다.

아직 정정하시지만 연세도 있고 자식들도 다 멀리 살고 있으니 갑자기 편찮으셔도

돌봐줄 사람도 없고 혼자 계시기에 외로우실 수 있으니 양로원이나 요양원 쪽을

알아보시면 어떠냐고 지난번에 남편이 말씀드렸다.

그 댁에 몇 번 왕진을 갔던 적도 있고 병원과도 멀지 않아 지나다니다 보면

노인 혼자 사시기에는 너무 덩그러니 집이 커 보였기 때문이다.


우선 시설로 가시면 돌보아 줄 사람들도 늘 상주하고 있고 또래 들과 같이 어울려 지내실 수 있어 덜 외롭지 않으실까 해 서였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그 집에서 50년 넘게 살고 계시고 곳곳에 부인과 아이 둘을 키웠던 소중한 추억들이 남아 있어 쉽게 그 집을 떠날 수 없노라 하셨다.


그런데 얼마 전 동네 지역 신문 사회면에 크게 실릴 만큼 떠들썩한 사건이 터져 버렸다.

바로 그 집에서..


신문기사에서는 88세의 노인이 복면을 쓴 세명의 강도에게 집에서 묶이고

폭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쓰여 있었다.


독일도 좀도둑도 있고 여름휴가철이면 빈집털이 도둑들도 기승을 부린다.

그러나 이번 강도 사건처럼 집에 혼자 사는 힘없는 노인을 칼로 위협하고 묶고 폭행을 저지른 경우는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사건은 이러했다.

월요일밤 누군가 할아버지댁 초인종을 세 번가량 눌렀고 게하트 할아버지는 우리처럼 누구세요? 라며 문을 열었다.


그렇게 할아버지가 문을 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복면을 쓴 세명의 남자가 집으로 들이닥쳤다

그놈들은 칼을 들고 위협하며 순식간에 할아버지 집으로 들어와 할아버지를 의자에 묶고 폭행을 가하며 집에 있던 현금 등을 빠르게 털어 담고 사라졌다.

그 후 할아버지는 묶인 것을 간신히 풀고 이웃집의 도움으로 경찰에 신고하실 수 있었다.

다행히 생명의 지장은 없었지만 정신적 충격 등으로 며칠 종합병원에 입원하셔야 했다

그리고 경찰에서는 목격자를 찾는 다며 범인들의 수배전단지를 내다 걸었다.

수배 전단지 에는..

동네에 CCTV도 없으니 당연히 사진도 없고 복면을 쓰고 왔던 범인들은 제대로 된 몽타주도 없다.


그저 막연하게 할아버지가 그날 목격한 추정 나이와 체격 등으로

대략적인 나잇대와 인상착의 등이 간략하게 나와 있을 뿐이다.

경찰의 수배전단지에는 범인들에 관한 것 외에도 밤에 울리는 수상한 초인종 소리에 주의를 요한다고 적혀 있었다

요즘 도둑들의 신종 수법일 가능성이 높은 몇 차례 초인종 누르고 그 집에서 나오는 사람을 확인하고 범행을 준비했을 것이라고 말이다.


머리카락이 쭈뼛해지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우리 집에서도 여러 차례 울렸던 그 의문의 초인종... 문 열고 나가 보면 아무도 없었던

그 수상한 초인종 소리들..

마지막 퍼즐이 맞춰진 것처럼 확연해지는 순간이었다.


우리 집 초인종을 누르고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었을지 모를 누군가가..

어쩌면 보기에만 험상궂고 실제로는 사람만 보면 낯선 사람도 상관없이 꼬리를 흔들며 반가워하는 우리 집 강아지를 보고 무서운 개 있음으로 포기?했을 수도 있고 남편 뒤에 서 있던 기골이 장대하고 무서븐 인상의 나를 보고 식겁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앞으로는 밤에 낯선 초인종이 울리면 절대 함부로 문을 열어서는 안 되겠다.

한여름에 납량특집 전설의 고향 보다 더 섬뜩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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